세계 도서관 기행 - 오래된 서가에 기대앉아 시대의 지성과 호흡하다, 개정증보3판
유종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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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속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도서관들에 대하여

 

내가 꿈꾸는 여행 중 하나다. 서점 기행과 도서관 기행. 여행지에서 만난 책은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든다. 이미 알고 있는 책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새로움과 난생처음 보는 책을 발견할 수 있는  만남이 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 기행이 특별한 건, 누군가의 손길이 지나갔던 책을 만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오래된 도서관일수록 고서를 많이 소장하고 있고, 그 컬렉션을 손으로 만질 수는 없지만, 눈으로 오랜 세월의 흔적을 담을 수 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여행에 가서 도서관에 가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내가 갔었던 도서관을 떠올려보면. 규슈의 규슈 대학교 도서관, 런던의 대영 도서관, 런던의 크릭 센터 내의 의학도서관, 폴리머스의 공공 도서관, 세인트 아이브스의 공공 도서관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도서관을 거닐 때면 말로 다할 수 없는 설렘을 느꼈다. 직접 도서관을 거니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통해 그 느낌을 다시 되새기고픈 마음에 《세계 도서관 기행》이 기록한 도서관 세계를 열었다.

 

 《세계 도서관 기행》은 도서관을 사랑하는 사람이 세계 곳곳의 50개 도서관을 누빈 기록이다. 그 아름다운 공간을 그는 "내게 불멸의 로망"이라고 극찬한다. 글을 읽다 보면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된다. 그의 기록은 도서관을 언젠가 가보고 싶은 공간으로 바꾼다. 뻔한 관광지가 아니라 오래된 책 냄새가 코끝을 감싸고 장대한 지식의 숲을 헤매고 싶은 마음을 부른다. 관광지가 된 보들레르 도서관부터 공공 도서관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는 미국의 수많은 공공 도서관, 그리고 가까이 있지만 찾아가지 않았던 우리나라의 수많은 도서관들은 그의 글과 사진으로 한번 보고, 나의 글과 사진으로 담아내고픈 마음을 부른다. 책을 사랑하고 책 읽기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소개한 도서관 탐방을 몹시 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그가 아직 가보지 않은 나만의 도서관을 내놓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최고'는 바뀔 수 있지만 '최초'는 영원하다는 자신감의 발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인류 최초의 도서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70만 권의 장서(돌판)를 소장했던 그곳은 지금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도 인연이 있을 만큼 오래되었지만, 소실되어버렸다. 지금의 도서관은 새롭게 지어진 도서관이다. 하지만 최초의 도서관이란 타이틀에 걸맞게,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세계 언어문화를 지키는 도서관으로 만들어졌다.
저자는 자신의 도서관에 대한 감상을 조금 덜어내고 도서관 이야기에 집중한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서관에 주목한다. 과거의 이야기와 지금의 이야기가 함께 써 내려간다. 마치 그의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그 공간에 한번 찾아가 보고 싶게끔 만드는 것 같다. (사실 그가 가보라고 해서 하게 되는 건지 내가 가고 싶은 곳이라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는 불분명하다.)

 

자유는 평등을 이루기 위한 행위이며,
평등은 자유를 이루기 위한 기회다.


독일 하원 도서관의 로텐더 상단의 네온 조형물에 독일어로 적힌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독일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이 함축적으로 나타난 문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독일의 도서관 세 곳을 설명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그 설명에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 도서관이 지금까지 쌓아온 이야기가 적어서인지, 혹은 저자가 갔을 때 독일 하원 도서관의 꼭대기 층 관광을 놓친 것처럼. 놓친 이야기가 더 있지는 않을까 궁금해졌다. 마르크스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독일 하면 괴테, 칸트 등 수많은 지성인들의 고향이니까.

 

책에 담긴 도서관들이 있는 나라 가운데 가보고 싶은 나라를 고르라고 한다면, 난 주저 없이 "러시아"를 꼽을 것이다. 가장 많은 도서관이 소개된 나라이기 때문도 있고, 러시아의 대문호 두 사람의 이야기가 몹시 궁금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인당 장서 수도 세계 최고 수준인 러시아의 도서관은 어떤 곳일지 궁금하다. 예전에 <러시아 문화와 예술> 시간에 봤던 드라마에서,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장대한 규모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러시아 도서관은, 러시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표트르 대제와 함께 시작한다. 유럽에서 직접 공부했던 그는 러시아를 계몽하겠다는 일념으로 다양한 정책을 수행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러시아 최초로 세워진 도서관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다. 18세기 과학의 시대였던 때이기에 가능했던 도서관이다. 푸쉬킨이 더 빨리 태어나 러시아 언어로 아름다운 시와 소설을 남겼다면 러시아에는 과학 도서관이 아닌 다른 도서관이 세워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8세기 말에 태어난 푸쉬킨은 러시아 문학의 시작을 열었지만,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립 도서관' 앞에 세워진 사람은 러시아의 대문호 중 한 사람인 도스토옙스키다. 저자는 러시아의 정서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답을 찾았다. 그의 설명에 나의 해석을 조금 더해보자면. 푸쉬킨과 톨스토이와 달리 러시아 민중과 가장 닮은 삶을 살았던 그가 썼던 인간에 대한 깊은 고뇌와 삶의 아이러니는 푸쉬킨과 톨스토이의 주제의식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푸쉬킨의 아름다운 문장을 찾기는 어렵고, 저자의 강력한 목소리도 들을 수 없지만 그의 글에는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고민 그리고 사랑이 담겨 있다. 그런 그를 러시아를 대표하는 도서관 앞에 세운 건 당연한 일 같다. 사진 속 고민에 찬 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칠 순간이 얼른 다가오면 좋겠다.

 

세계 최초의 공공 도서관이자, 세계 최초의 시민 대학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세계 최초의 도서관이라면, 보스턴 공공 도서관은 세계 최초의 공공 도서관이다. 1848년. 보스턴에는 시민을 위한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그것도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을 말이다. 이후 보스턴 공공 도서관이 가지고 간 타이틀은 더 있다. 대출을 처음으로 해주었고, 어린이를 위한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처음 한 곳 역시 이곳이다.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분리 독립한 미국은 도서관의 정체성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성격을 잘 쌓은 지점이다. 영국의 보들레르 도서관은 제임스 1세 왕이 대출을 하고 싶었으나, 거절당한 곳으로 유명하고 대영 도서관 역시 지금까지 책 대출은 제한되어 있다. 영국의 유명 도서관이 엄격하게 대출을 금했고, 이를 지금까지 유지한 것과 다른 행보는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도서관이 대출을 금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서민과 빈민이 거주하는 변두리 지역에
50여 개가 산재해 있는 지식의 등대는
지식과 정보에서 소외되기 쉬운 사람들에게
햇볕처럼 차별 없는 지식의 빛을 고루 뿌려주고
교육과 문화, 인터넷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꿈꾸는 도시 쿠리치바의 사람 중심 철학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환경도시로 유명한 쿠리치바를 지탱하는 축 중에 하나인 도서관은 지속 가능한 도시의 조건이 환경 외에 사람에게도 있음을 보여준다. 아메리카 대륙의 거대한 나라, 브라질의 쿠리치바 '지식의 등대'의 철학까지 읽고 나니. 대륙마다 대표하는 도서관이 가진 철학이 다른 모습이 다 다른 듯싶었다. (캐나다에는 어떤 도서관이 있을지 궁금했는데. 그 이야기는 내가 확인해보면 어떨까.)

세계 곳곳을 누빈 다음에  《세계 도서관 기행》의 마지막 종착역은 우리나라 도서관이었다. 상징적인 도서관 뿐만 아니라,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도서관까지. 저자는 익히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의미를 다 알지 못했던 도서관의 모습이 그의 글 속에 담겨있다.

 

"한국점자도서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한 해 출판되는 5만 종의 책 중 2퍼센트 정도를 점자책으로 만들고 있다."

 

이 문장이 지금은 달라져있으리라고 믿는다. 전자책, 오디오북 등 기술발전과 함께 책의 형태가 다양해진 만큼, 도서관에서 책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도 더 많아졌으리라 기대해본다.

 


세계 도서관을 누비고 난 뒤 나에게 도서관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았다. 영화 <귀를 기울이면>(1995) 시즈쿠와 같이 친구와 경쟁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공간이었고, 도서부 친구들과 수많은 활동을 했던 추억이 깃든 장소이기도 하고, 대학교 때 시험 기간에 초조함과 첫사랑과 마주치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부른 곳이기도 했다. 한 사람이 도서관에서 쌓은 이야기가 이렇게나 많은데,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갔던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 그 많은 이야기 중에 저자가 《세계 도서관 기행》에 담은 이야기는 기초 중에 기초적인 이야기다. 마치, 도서관 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몸풀기 책이라고나 할까. 그가 소개한 도서관을 가서 나만의 이야기를 하나 둘 만들어오고 싶게 만든 책이었다. 《세계 도서관 기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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