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셀러 -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 읽는 남자의 반짝이는 사랑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3
아리카와 히로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작가야. 이야기를 만들어 파는 작가라고.

 


 

 

image_2120655771528816930930.jpg


 

 

소설 《스토리셀러》는 "소설 쓰는 여자와 소설 읽는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아릿한 연애 소설이다. side A와 side B로 나누어진 두 이야기의 화자도, 사건도 같지만 결말와 두 사람의 관계는 달라지지 않아계속 아릿한 감정을 남기는 소설이다. 통증이 느껴지지만, 딱 견딜 수 있을 만큼 느껴지는 정도. 그 정도를 나타내는 '아릿함'이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소설을 읽다 보면 점점 독자들에게도 그 아픔이 살짝 전해지는 소설이다.

그. 그녀. 인칭 대명사로 이름이 없이 등장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존재였다. 두 사람은 인테리어 회사에서 처음 만난다.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지만, 서로를 깊이 알아볼 기회를 가지지 못하던 어느 날. 그가 그녀의 소설을 읽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바뀐다. (대학에서 사귀었던 연인을 제외하고) 누구에게도 자신의 소설을 보여주지 않았던 그녀의 소설을 그가 읽고, 그녀에게 반한다. 그녀 역시 호감을 가지고 있던 그가 자신의 소설을 인정해주는 걸 계기로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두 사람은 회사에서 처음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다.

그리고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죽음을 맞이한 채 이야기가 끝이 난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순간에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상시 자신과 다른 짓도 하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 독특하다. 여느 소설이 사랑을 그리는 방식과 다르다. '그녀'가 쓴 이야기에 매료되어, 소설로써 가치를 발견한 '그'는 '그녀'의 하나뿐인 날개가 되고자 굳게 다짐한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인정해주는 하나뿐인 독자인 그를 위해 죽는 순간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이상하게 낯설었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이며 소설가과 독자 사이를 유지한다. A와 B 둘 중 하나가 그녀가 쓴 소설과 그 소설 밖의 세계를 바라보는 나라는 독자와 《스토리셀러》의 저자 아리카와 히로의 관계와 닮았다. 과연 그녀가 쓴 소설은 어떤 것일까? 두 사람의 사랑 중심에 '글', '이야기'가 놓여 있고, 그 글을 두고 어느 글에선 '그'가 살아있고, 어느 글에선 '그녀'가 살아 있다. 두 개의 글을 두고 어느 쪽이 이야기 속의 소설인지 생각해보는 과정에서 생각할 거리를 더 많이 주는 소설이다.

 

나는 처음에 두 편 가운데 A가 진실이고, B가 그녀가 쓴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두 에피소드가 전하는 이야기의 감촉은 다르다. A는 그(남편)의 입장에서 굉장히 섬세하게 쓰인 이야기였고, B는 굉장히 급박하고 속도감 있는 이야기였다. 읽는 순간, B가 바로, 그가 단번에 매료되었던 그녀의 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A를 두고 그녀의 글이라고 하기에, 너무 밋밋하다.

 

"그때 알았어. 세상에는 쓸 수 있는 사람과 쓸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걸.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쓸 수 없는 사람은 절대로 쓸 수 없고, 쓸 수 있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써봤어요' 하는 글로도 작가가 된다는걸.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취미 수준이든 뭐든 '쓸 수 있는 사람'을 알지 못해서 '쓸 수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 미칠 뻔했어. 게다가 그 사람이 너였기 때문에 엄청나게 흥분하고 만 거야. '쓸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됐으니까. 프로가 아닌데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 게다가 바로 그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야 단숨에 푹 빠지지 않고서야……."

 

그를 흥분하게 만들고, 단숨에 푹 빠지게 한 이야기에 어울리는 건 B다. '역몽'이라는 독특한 소재까지. 짧은 기간에 많은 독자들을 매혹하기에 당연한 B인데, 그런데도 한참을 망설였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글이 A였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독특하고 개성이 눈에 확 들어오지만  다 읽고 나서 자꾸 떠오르는 글은 A였다. 섬세한 문장들이 촘촘히 만든 두 사람의 관계 그리고 그의 생각과 말은 두 사람의 관계 속에 점점 빠져들게 만들었다. 치밀한 이야기의 완성도를 생각해보면, B에서 그녀가 보인 행동들을 토대로 볼 때 그녀가 완성한 소설은 A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제 이야기 속에서는 엄청나게 무방비한걸요. 글에는 기술적인 것뿐만 아니라 당연히 제 마음도 담겨 있어서……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가장 약한 부분까지 들어가 있기 때문에…… 만약 누가 그 글을 읽는다고 한다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고치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이 정도면 보여줘도 되겠다고 스스로 결심하고 나서 보여줄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절대로."

 

남들에게 좀처럼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의 감정이 들어 있는 이야기. 그렇기에 그 이야기를 몇 번이고 고치고 또 고친 이야기는 A 일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온 마음과 전부를 쏟아 쓴 이야기를 내놓았을 것이다. 역몽을 꿈꾸며, 이미 떠난 자신의 사랑을 기다리며 말이다.

 

그렇다면, 《스토리셀러》는 그녀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소설로 표현한 소설이 된다. (물론 독자에 따라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녀에게 자신의 남편 '그'는 자신의 글을 자신보다 더 가치 있게 인정해준 사람 이상이었다. 그녀의 전부였다. 그녀는 자신의 상상을 동원해 소설을 만들었지만, 그 소설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깊이 있게 공감했던 사람은 '그'였다. 자신이 만든 세계 혹은 자신 안의 세계"사랑"이라는 말 안에 담긴 의미는 연인마다 다를 것이다. 각자의 관계에 따라 사랑은 다른 이야기로 단단해져 간다. 그와 그녀가 삶 속에서 순간순간 어떻게 단단해져 갔는지를 사랑 이야기로 확인할 수 없다.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녀가 완성한 소설과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그에 대해 이야기 나눈 기록이다. 하지만 그 기록에서 유추할 수 있는 건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다 받쳤다는 것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가 되었다. 그런 두 사람이 '죽음'으로 점점 멀어져 가고 그 마지막을 부여잡는 과정이 참 아릿했다. 이야기를 파는 그녀의 행동이 몹시 슬퍼 보이는 건, 더는 함께 사랑을 할 수 없는 그 사실을 이야기의 힘에 기대어 버틸 수밖에 없는 그녀의 간절함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젠더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대목이 많았다. 많은 독자들이 2010년에 나온 《스토리셀러》 속 성별에 따른 묘사, 연애, 결혼 이야기 등에 대한 부분을 젠더 감수성을 세우고 읽으리라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