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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내가 오늘 삼킨 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말들을 생각한다."
"이게 엔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야기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다."
불편하다. 작가 조남주의 소설은 나에게 '불편함'을 안겨준다. 그런데, 그 불편함을 놓고 싶지 않다.
나에게 필요한 '불편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그녀의 글을 읽었다. 불편함과 마주하기 위해서, 일상에 무뎌져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을 위해서 말이다. 어쩌면 내 이야기일 수도 있는, 혹은 내 친구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녀의 소설을 펼쳤다. 《그녀
이름은》은 조남주의 첫 소설집이다. 이야기 27편과 한편의 에필로그 한 편이 합쳐져 총 28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있다. 이야기 하나하나는
소설보다 인터뷰를 소설의 형태로 옮겨 놓은 글이란 인상을 준다. 실제로 몇몇 이야기는 인터뷰를 그래도 옮긴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가지게 되는 명칭이 있다. 딸, 엄마, 며느리, 아내, 아줌마, 임산부,
할머니... 물론 이 안에 혐오가 뒤엉킨 단어도 있고, 직장의 속성에 따라붙은 표현이 있고, 상대가 느끼는 감정에 따라 또 붙는 말이 있다. 그
'언어' 속에 살아가는 '그녀'라는 존재에 집중한 소설이다. 지난 소설들이 특정한 '그녀' 혹은 '그'에게 집중한 소설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많은 '그녀'들의 삶을 글로 비추었다. 마치 스탠드 조명을 조금 더 위로 올려 부드러운 밝기로 넓은 공간을 비추는 것 같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 언저리에 이 이야기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녀 이름은》은 《82년생 김지영》이나 《현남 오빠에게》와 같은 불편함과 다른 결의 불편함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조남주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매번 하는 생각인데, 꼭 《그녀 이름은》을 보고, "언제 적 이야기야."나 "그땐 그랬지."라고 평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다음 세대가 아닌 내 입에서 나오길 말이다.
전보다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면 됐다고 만족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는 더 힘들고 누구는 덜 힘들고 하는 것 없이 공평하게 일하면 좋겠다. 손주들 봐야 할
때, 남편이 아플 때처럼 급할 때 한 번씩은 조금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오래 일하고 싶다. 진순은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할 것이다.
작년
내내 캠퍼스에서 용역 업체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시위를 하는 것을 보았다. 더운 여름에 햇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피켓을 들었고, 옷 하나라도 덜
입고 싶은 날에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은 조끼와 띠를 두르고 일하시는 모습도 보았다. 계절은 빠르게 바뀌었지만 그분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캠퍼스 거리에서만 울릴 뿐 직접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어느새 내 기억 속에서 잊혔다. 무감각해진 것이다.
그러다 올봄에 신문을 통해 반가운 소식을 보았다. 드디어 학교에서 청소하는 분들을 정식 노동자로, 학교의 학내 구성원을 인정했다는 소식이었다.
<20년을 일했습니다>를 읽는 데 이 사건이 떠올랐다. 국회 청소 노동자나 우리 학교 청소 노동자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정식 노동자로
인정받고, 노동자로써 권리와 의무를 가지게 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렇게 할 수 없는데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놓여있다는 걸 안다. 저임금 노동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던 구조, 저임금을 받으면서 일할 수 밖에 없었던 구조, 그 구조적 약자가 중년 여성이
많았던 이유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구조 분석에서 해결까지 나아갈 수 없었던 사정들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대한민국 정도면, 그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분들의 삶이 '드디어
늦었지만 우리 모두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라는 인정을 받기를 원한다. 바란다. 그리고
응원한다.
"그래도 너는 딸이잖아."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구구절절 속마음을
털어놓고 하소연하고 용서받을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딸이다. 그래서 뭐 어쨌는데.
딸과
엄마 사이.. 참 어렵다.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아가사 크리스티가 쓴 《딸은 딸이다》에서 쓴 것처럼, 딸과 엄마 사이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감정이 흐른다. 가족이기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느낄 수 있는 가족애로도, 같은 여성으로써 느끼는 동질감 뿐만 아니라
감사(고마움) ,기대, 애착, 시기, 질투, 실망, 분노, 원망, 피해 의식 등의 감정들이 얽히고설킨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알렉산더 대왕)처럼 단번에 끊을 수도 없다. 이따금 체념으로 감정을 갈무리하기도 하고, 웃음으로 포장하며 순간순간을 넘기기도 하고, 혹은
작은 공감을 주고받기도 하고, 혹은 아무 문제를 느끼지 못하는 정말 행복한 모녀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엄마와 딸이지만, 동시에 한 사람과
(닮은 점이 있지만) 또 다른 한 사람이기 때문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또 부모와 자식이라는 특수한 관계이기에 오는 다양한 고민 혹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알지만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있고, 알지만 공감할 수 없는 감정이 있기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관계다. 이
소설에서 딸과 엄마의 관계를 밀도 있게 다루지 않아 깊이 생각할 수 없었지만, 쉽지 않은 그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 엄마와 나. 내가 엄마에게 기대하는 바와 엄마가 딸인
나에게 기대하는 바 사이의 틈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참 어렵다. 이건, 엄마랑 이야기해봐야겠다.
'나는 강하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더 강하다.'
《그녀
이름은》을 읽고 마지막은 이 문장으로 끝내고 싶다. 《그녀 이름은》에서 가장 기억하고 싶고, 잊지 않고 싶은 문장이기에. 이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그녀 이름은》의 주인공들과 그 주인공일 수 있는 나에게 필요한 건 강한 연대라고 생각한다.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있을 때 정말 더 강하니까 말이다. 단지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 사이의 연대뿐만 아니라, 세대를 넘나드는 연대, 조금 다른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 사이의 연대가 필요하다. 엄마와 딸, 직장 선후배 또 동료,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등... 그녀들의 이야기가
'혐오의 대상'이나 '무관심의 대상' 혹은 '가십의 일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
"특별하지 않고 별일도 아닌 여성들의 삶이 더 많이 드러나고 기록되면
좋겠습니다.
책을 펼치며 여러분의 이야기도
시작되리라 믿습니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분명 낯설지 않다. 분명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 혹은 당장 내 옆에서,
곧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녀들의 경험은 비슷한 듯 다른 형태로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한다. 아마 이 일들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소설을 읽으며 비슷한 상황, 생각을 한 적이 있었고, 젠더 수업 시간에 친구들의 입에서 들은
이야기를 통해 확인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물론, 누군가 매우 특수한 일이나 유별난 일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한
번만 시간을 내서 깊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 생각 뒤에 묻혀 있는 다른 사회적 함축 의미로 인해 공론화되지 못한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말이다.
난 《그녀 이름은》에 대한 이야기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일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정도,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 생각하는 바는 모두 다를 테니까. 아니, 달라야 한다. 동일한 것이 이상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르기에, 그 생각들은 모두 다를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 다른 사람들 중에 작가 조남주가 선택해 그린 인물이 완전한
보편성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 다르게 생각하고 반응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 조남주가 그 인물들을 선택해 그녀들의 이야기로 묶어 표현한
'(문제) 의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녀 이름은》의 그녀들의
이야기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그녀들의 이야기로 구분 짓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바뀔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