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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레폴레 아프리카
김수진 지음 / 샘터사 / 2018년 4월
평점 :
아프리카에서의 새로운 도전으로
조금은 더 자란 내 앞에
또 어떤 여정이 펼쳐질지
궁금해졌다.

아프리카
나라의 이름이 아닌, 대륙의 이름으로 더 많이 기억되는 땅. 아프리카다. 그곳에 6개월간 머물며,
8개 나라를 취재로, 여행으로 다녔던 김수진 기자의 이야기, 《폴레폴레 아프리카》. 나에게 아프리카는 이중성을 가진 대륙이었다. 세렝게티와 같은
광활한 초원, 그냥 자연이 아닌 '대자연'을 품은 대륙이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야생동물의 보고라고 불릴 만큼, 기린, 하마, 악어,
사자, 하이에나, 치타, 물소, 코끼리까지 좀처럼 보기 힘든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끝없이 광활한 땅이 이어지는 아프리카는 여느 대륙과
다른 자신만의 빛깔을 과시하는 대륙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의 커다란 눈망울에 슬픔과 고단함이 묻어있는 아픈 대륙이다. 식민지 역사 뒤에
따라온 부족 간 갈등 그리고 내전, 에이즈, 말라리아, 기아, 빈곤한 아프리카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먹먹하게 든다. 그래서 아프리카는 가보고
싶은 땅이면서 동시에, 선뜻 가기 미안하고 또 두려운 곳이다. 두 가지 이미지가 공존해서 일까. 아프리카는 나에게 느낌만 남은 미지의 땅이
되었다.
탐구심
강한 난, 아프리카 관련 여행서가 보이면, 바로 읽는다. 아프리카 역사에 대한 책에 비해 여행서를 읽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거대한 대륙의
모습을 한 사람의 시선과 감정을 따라 알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거대한 땅 아프리카는 커다란 주제를 가지고 만나면, 먹먹함이 많이 남지만 여행서로
만나면 먹먹함 뒤에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폴레폴레 아프리카》도 그런 책이었다. 아프리카 순회 특파원으로 갔지만, 생물학적으로 여성 혼자서
여행하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다. 위험한 곳이고, 저자가 글로 남기지 않았지만 아마 겁이 났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 곁에는
아프리카에서 만난 귀인들, 소중한 친구, 든든한 보디가드 그리고 스스로를 믿는 '나'가 동행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여자
혼자서 여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이라는 '아프리카'라는 이미지가 흐릿해져간다. 그리고 수많은 만남이 존재하는 그곳으로 가고 싶어진다.
폴레폴레. 누비고 싶어진다.
"폴레폴레!"
폴레폴레는 동아프리카에서 널리 사용하는 스와힐리어로 '천천히'라는
뜻이다. 이전에도 한국인 등반객을 만나본 아민은 "빨리빨리 노(No), 폴레폴레 예스(Yes)"라고
말했다.
《폴레폴레 아프리카》는 특파원이 쓴 여행기입니다. 위험천만한 순간보다 행운 같은 만남이 더 많이
존재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작가 혼자서 사색에 잠기기보다 누군가와 함께 한 이야기가 더 많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케이팝 팬들이나 아프리카에서
사귄 친구들과 함께 떠난 카로족, 하메르족과 같은 아프리카 소수민족과의 만남, 두바이까지 날아온 남동생을 꼬셔서 탄자니아를 여행하다가 고산병에
걸린 동생을 걱정하기까지. 아프리카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도 있고, 아프리카가 아닌 여행이어서 가능한 이야기 그리고 김수진이라는 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골고루 담겨 있다.
사람과
교감하고, 동물과 교감하고, 땅과 교감하는 저자의 시선은 참 따뜻했다. 6개월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만 6달 동안 8개 나라를 오가던
그녀에게 한순간 한순간은 참 소중했다는 게 글에서 느껴졌다. 폴레폴레 지나가길 바랐지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 마음에 담은 이야기들 가운데
'르완다'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많이 남았다. 중학교 때, '호텔 르완다'를 본 적이 있었다. 참혹했던 르완다 내전을 보고 나서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고, 그 어떤 무서운 영화보다 더 심한 공포를 느꼈었다. 이웃이 한순간 적이 되고, 가족이 흩어져야 했고, 바퀴벌레를 청소하듯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약 20년 전에 벌어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르완다에 대한 이야기가 더 궁금했다.
다행히 저자의 글을 통해서 확인한 르완다는 과거의 그늘을 기억하며,
내일을 기약하는 나라로 성장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숙소 때문에 고생했던 저자에게 '즐거운 우리 집'이라는 수식어를 붙게 만든 포근한 집이
있던 곳이 르완다였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르완다의 달라진 모습과 그 모습 이전에 가슴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현재를 적절하게 담아내,
어느 부분보다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6만 5천 명 가운데 30명만 살아남았던 그 일을 기억하기 위해 "르완다 정부는 그 끔찍한 역사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학교를 추모관"으로 만든 곳에서 어떻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사람들의 입에서 바퀴벌레란 단어가 나오지 않고, 네버
어게인이라고 지나간 역사를 단호하게 말하는 르완다 사람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글이었다.
실제로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보면 이런 순간을 맞닥뜨릴 때가 있기는 하지만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언제 어디를 가느냐에 따라 다르다. 나 역시 아프리카에
온 지 수개월이 됐지만 에티오피아, 남수단, 우간다, 르완다를 다니며 상상했던 장면을 현실로 마주친 적이 없었다. 대신 소 떼, 양 떼와 같은
가축들이 길을 막아서는 바람에 차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참을 기다린 경험을 몇 차례 했다.
아프리카의 광활한 초지에서 빅 파이브와 고릴라를 만난 이야기 역시 재미있었다. 사진이나 동물원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아프리카는 동물들의 공간에 인간이 들어가 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물론 그 경험이 동물을 보다 동물답게 바라볼
수 있지만, 동시에 관광객들에게 보다 많은 동물을 보여주기 위해 무전기를 들고 동분서주하는 초원 가이드의 모습은 씁쓸하게 보인다. 그래도 드넓은
자연 속에서 동물과 마주했을 때, 인간과 동물이라고 구분 짓지 않고 생명과 생명으로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로 향하는 게
아닐까. 이 복잡한 감정을 무겁지 않게 저자는 담아냈다. 그 순간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담으며, 찰나의 순간에 드는 깨달음은 모순적인 감정을
담고 있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을 가리켜 생각의 산파라고 하였다.
낯선 경험이 주는 충격 속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발전한다. 어쩌면 인공적인 문명에서 가장 멀리 있고, 대한민국에서 평범하게 자란 사람이라면 가장
낯선 땅인 아프리카에서 보낸 6개월의 기록은 생생한 생각이 많이 담겨 있었다. 물론, 어떤 것들은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익숙함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그보다 낯설고 생소한 이야기들이 더 많이 담겨 있었다. 글을 읽다가 마음을 찌릿 울리는 '어린 엄마'(조혼, 여성 할례 등), '생리대가
소중한 이유'와 같이 인간으로서 존엄한 권리가 무너진 현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또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아, 여기가 아프리카의 끝이로구나.'
나는 왜 이곳까지 왔을까. 대륙 끝까지 와서도 그 답은 알 수 없었다.
아니 답 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내가 30년 동안 만들어둔 내 마음속 G. P. S.가 "아는 길로만 가면
재미없잖아. 한번 가봐"라고 말해준 덕분이다. 이는 미국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2013년 5월 하버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한 말이기도
하다.
"인생의 비결은 당신이 어디로 갈지를
말해주는 내적, 도덕적, 정서적 G.P.S.를 개발해나가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이야기는 6개월의 여정과 함께 끝난다. 아쉬운 느낌보다 곧 다음이 올 것 같은 기대감처럼
글이 끝났다. 역설적이게도 끝난 것이 끝이 아니란 느낌이 든다. 나도 그녀처럼 아프리카 땅에 서보고 싶어졌다. 그녀가 마음에 했던 말과 오프라
윈프리가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한 말이기도 한 그 말을 따라 폴레폴레 아프리카로 가보고 싶어지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