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동서대전 - 이덕무에서 쇼펜하우어까지 최고 문장가들의 핵심 전략과 글쓰기 인문학
한정주 지음 / 김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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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한 번도 글쓰기가 쉬웠던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 글을 읽는 것에 비해 글 쓰는 것은 참 어려웠다. 나만 읽고 보는 일기를 제외하고 독후감, 숙제, 과제는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편지를 쓰는 것까지 글쓰기 앞에 고민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글은 대학에 입학할 때 '논술 시험'을 준비했을 때였다. 그때는 이 시험만 끝나면 글쓰기의 어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대입 논술'은 글쓰기 세계의 서막이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에 대학생활 내내 리포트 걱정을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과목마다, 교수님마다 다른 방법으로 글을 썼지만, 쓰면 쓸수록 자신감보다 요령만 점점 늘어났다. 리포트라는 험준한 벽을 넘고 나니, 요즘엔 "자기소개서"의 세계 앞에 서있다. 나와 같이 느끼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인지, 중고등학생을 위한 논술학원, 대학교에선 글쓰기 수업, 사설 학원에서 자기소개서를 봐준다고 한다. 10년도 넘게 글쓰기를 해왔음에도 글쓰기 앞에서 막막해진다.

 

왜 이렇게 글쓰기가 어려운 것일까?

 

그냥 '글쓰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참 어렵다. 좋은 글은 나의 생각을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된 글이다. 좋은 글은 마음에 와닿는 글이다. 좋은 글은 논리가 탄탄한 글이다. 좋은 글은 하나의 선율처럼 읽히는 글이다. 좋은 글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생각들도 많고,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잘 알지만, 막상 글쓰기 앞에만 서면 자신이 없어진다. 그럴 땐 글 잘 쓰는 사람에게 한 수 배우는 게 필요하다. 좋은 글이란 글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니, 글쓰기 스타일마다 스승을 두면 더없이 완벽하다.

 

"이 책은 18세기를 중심으로 멀게는 14세기부터 가깝게는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을 비롯해 중국, 일본 그리고 서양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장가 혹은 작가들이 선보인 글쓰기의 미학과 방법을 교차 비교해 살펴보면서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라는 문제에 대해 필자 나름대로 접근해 본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박지원, 이덕무, 니체, 나쓰메 소세키, 박제가, 괴테, 볼테르, 조너선 스위프트, 심노승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시대를 넘나드는 글쓰기 천재를 단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 바로, 『글쓰기 동서대전』에서.  글쓰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빠지지 않는 것이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고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만큼 글쓰기 실력을 키워주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 동서대전』은 다작을 제외한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는 책이다. 동서양의 지식인의 글을 모았을 뿐만 아니라, 그 글 속에 숨은 의미를 저자 나름대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또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이끌어낸다. 막상 그 결과물을 책에서 확인해보면, 뻔한 내용이라며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글쓰기 천재들은 말한다. 글쓰기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글을 쓰는 것이고 그 글을 쓰기 위해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이다. 어느 하나가 빠지면, 좋은 글쓰기 자체는 나올 수 없다고 말이다.

 

이탁오는 동심이란 곧 진심이라고 말한다.
동심을 잃게 되면 진심을 잃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말과 글은
이미 순수함과 진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거짓일 뿐이다.


『글쓰기 동서대전』은 총 9개 주제마다 동양과 서양의 지식인 4명을 선정해 주제를 관통하는 글쓰기 철학을 풀어내고 있다. 36명의 동서양 지식인들의 글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저자는 오랜 연구를 바탕으로 각각의 주제에 부합하는 저서에서 글쓰기를 하는 와중에 마주했던 고민까지 유추해낸다. 이 책에는 논술을 잘하는 비법, 리포트를 잘 쓸 수 있는 방법, 뽑히는 자기소개서와 같은 비결은 없다. 오히려 글쓰기의 기술적인 면모보다,  글쓰기의 미학을 다루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간직한 글쓰기, 정치적 사회적 목적의 글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글쓰기, 나를 탐구해나가는 글쓰기, 정치적 신념을 표현한 글쓰기 등. 각 글마다 동서양 지식인들은 비슷한 듯, 다른 자신의 글쓰기 결과물이다. 이 사실은 역사적 사실로 두고, 저자는 이 글들과 동시대에 비슷한 글에서 주제 의식을 찾아낸다.

 

예를 들어  "17~18세기에 만약 극도로 압축적인 묘사와 함축적인 표현 속에 자신의 감성과 생각과 마음과 뜻을 담았던 '하이쿠'라는 시의 미학이 일본에 있었다면, 조선에는 극도로 간략한 묘사와 절제된 표현 속에 자신의 감성과 생각과 마음과 뜻을 담았던 '소품문'이라는 산문의 미학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라는 말처럼. 우리나라와 일본 모두 풍미했던 소품문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하 구체적인 예시와 저자의 깊은 분석을 통해 집어준다. 그 외에도 풍자 문학에 있어서 조선의 '박지원',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 영국의 '조나선 스위프트'의 글을 통해 풍자 문학이 왜 그 시대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 시대가 역사상 그 어떤 시대보다 이중적인 시대, 곧  '위선의 시대'"라는  사실을 함께 말한다.

 

대작과 걸작은 그러한 담대한 정신과 거대한 열정이 있어야
비로소 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니체는 더 이상 진리를 '인식'하는 자에 머무르지 않는다.


『글쓰기 동서대전』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자의식의 글쓰기' 부분이었다. 자의식의 글쓰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 외에 낯선 이름들이었기에 어려웠던 탓도 있지만 그보다 '나'란 존재에 대한 깊은 고민과 사유가 녹아진 글들을 읽는 과정이 어려워서 더 기억에 남았다. 나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난 뒤에 적은 글들은 꼼꼼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었고, 천천히 생각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었다. 자신의 삶과 그 순간순간의 궤적을 스스로 돌아보고 기록하는 자서전은 특별하다. 일기나, 평전과 달리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그 인식의 변화까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서전은 다른 사람은 결코 쓸 수 없는 내용을 담을 수 있지만 동시에 왜곡될 여지가 많다. 이에 대해 "'진실성'과 '진정성'이야말로 '글은 나의 삶이자 나 자신'이라는 자의식의 미학에서 가장 중시해야 할 가치다. 만약 이 두 가지가 빠져 있다면 그러한 글은 자기 포장이자 자기 홍보 일 뿐이다."라는 당부도 빠트리지 않는다.


진실로 나의 영혼을 처음으로 뒤흔들어놓은 것은 두려움이나 고통도 아니었고, 쾌락과 오락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자유를 향한 갈망이었다. 나는 자유를 쟁취해야 했다. 그러나 무엇으로부터 그리고 누구로부터 자유를 찾는다는 것인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나는 거칠고 불친절한 자유의 오르막길에 천천히 올라갔다.


36명의 지식인들의 글이 모두 좋은 건 아니다. 나 역시 어떤 작가의 글은 내 마음에 쏙 들었지만, 어떤 작가의 글은 읽어도 읽어도 어렵기만 했다. 『글쓰기 동서대전』을 통해 36명의 작가를 읽고 나서도 여전히 난 글쓰기가 어렵다. 36명의 비결 아닌 비결을, 그들의 글쓰기 통찰력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글쓰기 동서대전』을 통해서 배운 건 글쓰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필연적인 사실을 받아들이는 방법이었다. 모든 글이 어려웠다. 특히 시대가 급격하게 바뀌는 시대에 글을 쓴다는 건 쉽지만 동시에 쉬울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치 윤동주 시인의 시가 쉽게 쓰일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36명의 글과 그 글들이 만들어졌던 시대상을 함께 배우며 18세기 이후로 전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였고 글도 그 변화의 흐름 속에서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새로운 글이 태어나는 건 어떤 천재의 선구안과 같은 판단력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당대에 필요한 글을 용기 있게 쓴 지식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9개의 글의 갈래의 중심에는 시대의 변화가 놓여 있었고, 글에 대한 새로운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18세기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글쓰기가 어려운 건 당연하다. 우리 시대에도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글쓰기 동서대전』 속 36명의 동서양 지식인을 만난 건 잘한 선택이었다. 홍길주의 글에서 배울 수 있듯이 "글쓰기에서 자득의 묘리란 다양한 길과 방법을 통해 찾을 수 있고 또한 구할 수 있다." 36명 모두에게 혹은 몇 명에게 혹은 책이 아닌 다른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독자적이고 개성적인 나만의 좋은 글'을 위해선 결국 다독, 다상량, 다작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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