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그림 엽서북 : 옐로우 에디션 - 마음 가는 대로 상상해 그려보는 손그림 엽서북
공혜진 지음 / 인디고(글담) / 2018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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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 대로 상상해 그린다.
그린다는 동사는 머릿속 상상을 나타내는 말이지, 내 손에서 그리려는 걸 나타내는 말이 아닌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고등학교 2학년 미술 시간 이후로 그림을 그린적이 없는 것 같다. 그림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민망한 낙서를 한 적은 많지만. 왠지 그림이라고 하면 어렵게 느껴진다.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기보다, 어떻게 그리세요.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그리기에 익숙해져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런 내가 《손그림 엽서북》이라니. 도전이었다. 나에게 《손그림 엽서북》은 말이다. 하지만 막상 한두 개 그리고 나니 생각보다 쉬웠다. 나를 위한 그림이라, 나를 잘 아는 내가 그린 손그림 엽서를 뜻깊게 받아줄 상대를 생각하니 말이다.

 

 

 

 

캘리그래피나 그림 그리는 책과 친하지 않은 나에게 그림 그리기 좋은 펜과 종이에 대한 정보는 꽤 유용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참 오랜만에 큰 문구점에 가서 펜 앞에서 이것저것 써보았다. 이 펜 저 펜 써보며 내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을 느끼며 고른 펜은 결국 네임펜이었다. 익숙하기도 했고 얇은 펜과 보통 굵기의 펜이 합쳐진 형태가 신기해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손그림 엽서북》의 저자가 "적당한 굵기라서 어떤 그림을 그리기에 적당하다"라는 말이 나의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책을 펼친 여러분과 마음껏 끄적이는 즐거움을 나누고 싶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편안함을 나누고 싶습니다.
하루 중 한 시간이라도 '손그림 그리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작가의 따뜻한 당부에 처음으로 책장을 열고 펜을 꺼냈다. 혼자만의 시간을 끄적이며 보내길 권하는 그 마음 뒤에는 작게 보이는 그림 그리기가 우리 마음에 주는 위로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오로지 그림 그리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을 생각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난 손 엽서 그리는 과정이 엽서를 쓰는 과정과 닮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것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엽서도 쓸 때 그 사람만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오로지 하나의 일에만 몰두하는 순간. 시시콜콜 잡생각은 멀리 달아나며 느낄 수 있는 편안함. 이 편안함을 《손그림 엽서북》의 작가이자 그림 가이드 공혜진씨가 추구했던 바가 아닐까.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펜을 손에 쥐는데 자꾸만 힘이 들어가서. 결국 제대로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책을 덮었다. 자꾸 옆에 있는 그림에 시선이 가서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려웠다. 따라 그려볼까 싶었지만, 아직 준비가 안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결국 나의 첫 손그림 엽서 도전은 '유보' 되었다. 만약에 성공을 거두었다면 아드만 편지지와 나의 아드만 손그림 엽서가 함께 봉투에 담겨 소중한 사람의 우편함에 들어갔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나의 첫 손그림 엽서

 

 

 

첫 손그림 엽서다. 결국 첫 '작품'은 나에게 주기로 했지만. 막상 그려보니 별거 아니었다. 산타 할아버지를 그릴까 하다가 결국 책 읽는 두더지로 바뀌었지만. 그리고 나니 자꾸만 애착이 갔다. 아무에게도 줄 수 없는 나만의 손그림 엽서가 태어난 거다. 진짜 처음으로 도전했을 때와 달리, 그냥 수염을 그렸고 그러고 나니 꽤 그럴싸한 그림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펜을 들고 엽서에 툭하고 점을 하나 찍고, 선을 하나 그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무언가 완성되어가는 게 신기했다. 새하얀 백지가 아니라 이미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작은 소재가 중간에 놓여 있어서  그런지 더 자신감 있게 그림을 그렸다. 따라 그려볼까 생각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책 읽는 두더지 그림이 완성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난, 책이 머리에 떠올라 책을 그렸다.
그런데...
뭔가 바쁜 두더지보다 책 읽는 두더지의 등이 더 곧아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삐뚤삐뚤한 점 하나, 선 하나로 누구도 따라 그릴 수 없는 세상에

하나뿐인 그림을 완성할 수 있어요.
마음 가는 대로 즐겁게 그려보세요!

 

저자의 말은 진짜다. 내 그림은 누구도 따라 그릴 수 없기보다 누구도 따라 그리지 않을 그림이지만. 나만의 그림을 완성해나가는 즐거움은 크다. 그리고 그 즐거움의 크기는 경험해본 사람만 안다. 다음에 친구에게 편지를 쓸 때는 내 손그림 엽서를 함께 보내주어야겠다. 다음엔 좀 더 나만의 개성이 가득 담긴 엽서가 완성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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