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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좋은 일 - 책에서 배우는 삶의 기술
정혜윤 지음 / 창비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나에게 책은
무엇일까.
참 어려운 질문이다. 때로는
명쾌한 듯 답을 내리지만, 마음 한구석에 답에 대한 찜찜한 감정이 남아 있다. 어떤 답을 하더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책마다 나에게 주는 의미가
달랐고, 내가 받은 감동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책이라는 복수에 대한 정의는 어떤 책들을 소외시키는 답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어떤 때 소외시킨 줄도 몰랐던 책이 내 마음을 울리는 책이 되는 경험을 자주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험을 꽤
자주 만들어준 나의 책 가이드 중 한 명이 바로, 정혜윤 피디였다.
곤경에 처한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던 책에 의지하곤 한대
이런
말과 함께 친구에게 소담한 위로를,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 책은 무엇이기에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무나 할 수
있는 말 같아 보이지만, 자신의 경험이 없다면 혹은 그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하기 힘든 말이라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책이 가진 힘을 믿고, 좋은
책이 사람에게 미치는 선한 영향력을 아는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세상에 무수히 많은 책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책에는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 새로운 지식이 담겨 있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는 말처럼. 책은 사람에게 ‘책’이라는 이름 이상의 의미로 함께 해왔다. 대화. 선물. 만남. 친구. 취미. 진실.
성찰. 교훈. 영혼... 수많은 단어로 많은 사람들이 정의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책은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책은 인간은 비탄, 슬픔, 고통에 침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재료로 뭔가 - 비탄, 슬픔, 고통을 다른 일로 바꾸는 일, 이를테면 시 또는 한편의 글 - 를 만들고 있는 중이란 것을
알려준다.
*
좋은 책은 다른 사람의 생각 속에서 장차 내 생각이 될 것을 찾아내고
다른 것을 느끼도록 자극하고 다른 일을 해보도록 격려한다.
*
좋은 책과 만나는 어떤 특별한 순간, 서러운 마음도 자아도 사라지고
‘이건 진짜다, 진짜 멋지다’라는 마음과 가벼운 한숨, 벅찬 가슴만 남는다.
『뜻밖의 좋은 일』은 유명한 북 칼럼니스트이자 개성 있는 에세이스트인 CBS 정혜윤 피디의 책에서
배운 삶의 기술이 응축된 북에세이입니다. 많은 책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숨은 명저에 사람들의 손길과 눈길이 가도록 만든 그녀는 이번에 책과 삶을
이어 글을 썼다. 이번 글에도 책과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 이번 책 속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사는 맛”이 무엇인지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나’라는 존재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는 “자아”를 거쳐 “사랑과 우정”이라는 감정을 이해한 뒤에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이야기로 『뜻밖의 좋은 일』의 여정은 끝이 난다. 각 장에 담긴 이야기는 분절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삶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흐름 속에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완성해나간다. 그러므로 책을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개인적으로 한 흐름으로 책을 읽어나가길 추천한다.
삶의 본질은 사소한
사건들에서 더 잘 드러나고, 우리 인생의 어떤 순간이 특별한 이유, 어느 평범한 날이 빛나는 날로 바뀌는 것, 진실한 마음으로 사소하게라도
뭔가를 변화시켜서이다.
『뜻밖의 좋은 일』을 읽다가 건너뛰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쉼표를 찍기도 하고. 때론, 중간에 마침표나
느낌표, 물음표를 찍기도 하며 읽었다. 정혜윤 피디의 경험과 방대한 독서가 만난 삶의 기술을 단 한 번의 호흡으로 이해하기엔 나의 앎의 영역은
그녀와 달랐기 때문이다. 무심결 툭툭 나오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고 때로는 마음을 파고드는 감동을 주기도 했다. 셰익스피어,
엘레나 피란테, 가즈오 이시구로,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 작가를 알고 있었다. 이 작가들이 만든 세계이자 이야기를 읽었다. 하지만 이들의
세계에서 내가 발견한 보석과 다른 정혜윤 피디의 보석은 다른 빛을 내고 있었다. 각 작가들의 이야기에서 삶의 기술은 정혜윤 피디의 글 속에서
이야기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절묘하게 섞여 있었다. 글은 현실을 붙잡고 있으나, 관통하는 메시지의 중심은 소설로 삶에서 마주할만한 일들에 어느
정도 답을 주는 이야기가 많다. 뚜렷한 답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지만, 그 답으로 향하는 실마리를 주는 듯했다. 마치 소설이 넌지시 우리에게 삶을
돌아보길 권면하는 것처럼 정혜윤 피디는 그 화법으로 삶의 기술을 알려준다.
나에게는 또 하나의 은밀한
꿈이 있다. 이렇게 지상의 아름다운 양식들에 나를 연결시키는 최고로 럭셔리하고 부유한, 한마디로 끝내주는 축제의 공간 속에서 새로운 나를
창조하고 다른 누구와 비교할 것 없이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말리라는
꿈이다.
그
삶의 기술 중심에 놓인 감정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난 망설임 없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따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루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글
속에는 삶에 대한 사랑, 주변에 대한 사랑, 나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책을 사랑하였고, 자신이 사랑하는 책 속의 세계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사랑이 담긴 시선에서 삶을 읽어낼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지 많은 책을 읽었고, 수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어서
그 책들과 일상을 연결하기 쉬웠던 것이 아니다. 정혜윤 피디가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뜻밖의 좋은 일』은 혼자
보다 함께인 이야기가 많다. 누군가와 동행하다, 누군가와 함께 맞서다, 누군가와 함께 맞이하다 얻게 된 것들이 책과 절묘하게 녹아져 있다.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를 꿈꾸는 정혜윤 피디만의 아름다운 생각, 사랑이 『뜻밖의 좋은 일』에 담겨 있다.
우리의 시간 속에, 영원의
흔적이 있다. 우리는 그 시간을 여행 중이다.
믿고
읽는 정혜윤 pd, 나에게 정혜윤 pd의 책 앞에 붙는 수식어가 바로 “믿고 본다”다. 『뜻밖의 좋은 일』에도 어김없이 이 수식어를 붙일 수
있어 좋았다. 책 읽는 시간이 참 좋았다.
“책 속에서 지혜와 삶의
해법을 찾는 독자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글을 쓸 때 나는 항상 독자인 당신을 생각한다. 당신의 고독을 떠올리고, 당신의 아까운 시간이 이
책으로 낭비되지 않기를 바라고, 당신의 삶 또한 낭비되지 않기를 바라고, 혼자서 책을 읽는 당신에게 말할 필요도 없이 기쁜 뜻밖의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란다.”
저자의
독자를 향한 마음처럼, 혹은 바람이 깃든 책이 바로, <뜻밖의 좋은 일>이다. 정말 뜻밖의 좋은 책을 만났고 그래서 읽음이 나에게
좋은 일이었다. “좋은 책은 그 글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세상이 달라 보이게 한다."라는 말을 바로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게 한 좋은 책들 가운데 몇 권을 나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게 만들었으니, 이 책은 좋은 책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