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임종학 강의 - 아름다운 삶을 위한 죽음 공부
최준식 지음 / 김영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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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다. 우리는 저마다 가정을 일구고 있고,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그리고 함께하는 순간이 있다면, 언젠가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온다. 영원한 이별의 순간, 바로 죽음이다. "야! 죽는 거 이야기하지 마. 재수 없어!" 이 말이 낯설지 않다. 우리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한 마디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는 '죽음'에 대해 금기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나는 유독 더 심했던 것 같다.


내가 처음 '죽음'을 마주한 건,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다. 유난히 더웠던 초여름에 부모님 손을 잡고 시골로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난 장례식장도, 장지에도 가지 않았다. 정확하게 부모님께서 가지 못하게 외할머니 댁에 나와 동생을 두고, 두 분이 장례를 위해 가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동생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사실을 말로만 들었을 뿐 방학 때와 다름없이 외할머니 댁에서 시간을 보냈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난 뒤, 내가 할머니 댁으로 갔을 때 이미 할머니의 흔적은 할머니 방, 그 공간만 남아 있고 많은 물건들이 사라진 다음이었다. 그 후에도 친척 분이 돌아가신 일이 있었지만, 내가 장례식장을 간 건 20대가 되고서였다. 그제야 부모님과 인터넷을 빌려 '장례'에 대해 배운 뒤 장례식장에 갔었다.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지만, 우리는 죽음에 대해 임종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없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좀처럼 배우지 못했다. 나 역시 나의 죽음 혹은 내 주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 몇 차례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생에 있어서 죽음은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이고, 그 사람과의 이별은 결코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저마다 다른 존재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과연 몇 차례 임종을 바라본다고 하여 '죽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경험'으로 배우기엔 가슴 아프고, 힘겨운 일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어떻게 하면 삶을 품위 있게 마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임종을 어떻게 준비해야 이번 생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느냐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온하게 맞이하기 위한 방법이 존재할까?
저자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라는 슬로건으로 '임종학 강의'를 펼친다. 그 임종학 강의를 엮은 것이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임종학 강의》다. 우리는 삶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죽음도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오늘을 살아가며 "죽음"이란 화두를 우리 삶 가까이에 있다.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뿐만 아니라 신문을 통해서 듣는 죽음에 대한 소식들을 듣는다. 죽음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존재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개인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잘 모른다. 혹은 내 삶을 뒤흔들어버릴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 사람이 처음 '죽음'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이 필요한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 말이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평소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조용히 자신을 돌아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인식하면 삶의 진리와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하게 됩니다.


저자는 죽음은 회피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회피해야 하는 존재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의 순간이 임박했을 때 생에 대해 강하게 집착하기 보다, 나의 삶을 잘 마무리하기 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연명 의료"를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몇 분 혹은 며칠, 몇 달 운이 좋으면 몇 년 동안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연명 의료"를 '최후의 희망'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독한 약을 투여하는 것은 오히려 환자에게 남은 마지막 시간마저 제대로 보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 수 있다. 또 생을 계속 살아야 하는 가족에게 많은 의료 비용을 사용하게 해, 경제적으로 파산 상태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저자는 연명 의료 보다,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의료 행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극심한 통증을 느끼거나, 고통을 겪는 환자에게 강한 진통제를 처방해 보다 편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우리는 보통, 삶을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생각을 읽고 어떤 사람들은 '삶'을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것은 오해다. 저자는 오히려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삶을 잘 마무리하는 과정'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인정할 때, 우리는 삶을 제대로 완성해나갈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을 제대로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죽는' 사건 하나만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족들이 슬픔을 이겨내고 일상생활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끝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죽음에 대해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하는가, 나의 주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 어떻게 이별해야 하는가를 모두 다루고 있다. 환자의 임종을 곁에서 함께 해야 하는 가족들 그리고 세상을 떠난 가족을 바라보는 유족들이 앞으로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가볍지 않고 간결하게 그 방안을 제시한다. 임종에 임박한 가족 구성원이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보다 삶을 잘 마칠 수 있도록 하는 말을 건네는 방법, 아직 우리나라에는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임종실의 필요성에 이르기 포괄적으로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린 글을 쓴다. 특히, 사별에 대한 10단계의 태도는 그 단계마다 무엇이 필요한지 알려주며, 슬픔에서 헤어나는 방법을 알려준다. 죽음 이후에 이어지는 장례 절차에 대해 이야기하며 과연 고인을 기리는 장례 문화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화려한 장례식장보다 고인의 삶을 떠올릴 수 있는 유품을 전시하여 유족들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는 장례식 문화를 권면한다. 죽음은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하는 것이지만, 사회 속에 속한 개인은 또 다른 사람의 삶 속에 연결되어 있다. 가장 긴밀하게 연관된 사람이 바로 유족들이다. 유족들의 삶이 다시 저마다의 삶의 궤도로 돌아왔을 때에 한 사람의 죽음이 진짜로 끝났다는 말은, 죽음 지닌 사회학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죽음을 입 밖으로 내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죽음은 엄연히 우리 곁에 공존하고 있는 또 다른 삶의 단계임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하는 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중요하듯,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을 어떻게 맞이할지 역시 똑같이 중요하다.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죽음 자체를 준비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돌아옵니다.
좋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좋은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임종학 강의》를 읽는 동안, '죽음'을 생각하기보다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정신분석학이란 학문의 세계를 열었던, 프로이트는 '에로스'와 '타나토스'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에 대한 집착'과 '생을 포기하고 싶은 욕망'을 설명하였다. 우리는 죽음을 부정하거나, 피하거나, 때로는 금기시하지만,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는 죽음에 대한 호기심이 자리하고 있다. 결국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더 나아가 죽음 자체가 삶의 한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종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 생각의 끝에는 "어떻게 해야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생에 대한 궁금증"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하면, 생을 더 절박하게 살게 된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죽음은 삶의 한 단계다. 삶이 유한하14기 때문에 생은 더없이 빛나고, 소중해진다. 그 죽음을 금기시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삶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할 기회를 그만큼 늦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임종학 강의》를 통해 나의 생이 어떤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어느 정도 속도로 지나가고 있는지를 점검해볼 수 있었다. 책 제목은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너무 늦는 때라는 말은 무의미하다. 나의 삶에 대한 고찰은 언제 어느 때에 해도 늦음이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한다면 자신의 삶이 빛나는 순간을 보다 일찍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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