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유정아 지음 / 북폴리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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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제목부터 톡! 마음을 동(動) 한다.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는 스스로 "아픈 거 힘든 거 싫어하고, 눈물 많고 조금 더 편하게 살고 싶어서 요령도 피우고 잔꾀도 부리는 흔한 30대 초반 직장인"이라고 소개한 작가 유정하의 에세이다. 글 속에 아름다운 수사나, 냉혹하게 파고드는 분석은 없다. 웃음을 자아내는 유머도 없고, 추억에 잠기게 하는 포근함도 없다. 굳이 설명하자면, 글이 밋밋하고, 담담하다. 그런데 평범해 보이는 밋밋함이, 담담함이 좋다. 아름다운 수사, 냉정한 분석, 재미있는 유머, 지난 기억을 회상하게 만드는 것조차 피곤하다 느낄 만큼 지쳤을 때 필요한 글은, 깔끔한 에세이 한 권이 아닐까.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들에서 잠시 멀어져 오로지 내 안에 존재하는 감정들, 생각들만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가 딱, 그런 에세이다. "상처받기 싫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들, 나누고 싶은 공감의 한마디"라는 카피 문구처럼. 마음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글들을 한 아름 품고 있는 에세이집이다.   

 

 

나는 '어차피 해피엔딩이야.'라는 말을
주문처럼 속으로 외운다.
어쨌든 나는 결국 행복해질 것이고,
지금의 고통은 만화 속의 한 에피소드 정도일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놀랍게도 이 생각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꽤 도움이 된다.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는 작가 스스로가 느꼈던 경험을 진솔하게 풀어놓은 책이다. 어떤 글의 방향을 생각했는지, 공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책의 첫 번째 장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자리에서 내가 하는 유일한 얘기는 비슷한 처지에 놓였을 때 내 심정이 지금의 그와 얼마나 똑같았는지, 하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작가는 견뎌 내야 했던 상황들, 버텼던 시간들을 진솔하게 고백하며, 그 경험이 자신의 삶의 자취에 남긴 것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 경험은 단지, 작가에게만 있었던 특별한 건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 마주했던 고민이다. 장기 해외여행을 갈까 말까 망설이는 것, 학벌 앞에 한없이 작아져 편입을 고민했던 것, 엄마와 수다를 떨면서 들었던 생각들, IMF 앞에 휘청거리던 가정, 낡은 워크맨의 감촉을 더듬는 것.. 소재는 다를 수 있어도 누구나 한 번은 마주했을 법한 경험이다. 이렇게 일상적인 이야기에서 작가는 공감을 떠올린다. 피곤함이나, 외로움이나, 힘듦 속에 잠겨 있던 '나'라는 존재를 살짝 떠올리게 한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휘리릭 넘겨버린 것들을 나의 일상 속으로 살짝 밀어 넣어준다.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잘못 든 길에도 풍경이 있있다" "슬퍼하기 위해 돈을 번다" "목표 없는 삶도 행복할 수 있다" "박완서처럼 늙고 싶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겨우 자기가 좋아하는 걸 말하는 일에도
큰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것.

 

 


요즘 우리 시대를 보면 나를 잃어버리기 딱 좋다. SNS 속에 완벽하고 화려하고, 행복이 넘쳐흐르는 사진과 글과 자신을 비교하다 보면 자연스레 나를 잃어가게 된다. 별거 아닌 일에도 불안을 느끼고, 조급함을 느낀다. 나의 부족함이 다른 사람이 위로를 건네는 조건이 된다는 글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섣부른 위로 한마디가 위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일이 종종 있으니까 말이다. 남들에게 위로를 기대하지도, 나를 좋아하는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만 더 여유로워질 나를 꿈꾸기 급급하다. 하지만 그 조바심 속에 지금의 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저자는 그런 조바심을 잠깐 내려놓고 지금의 '나'를 좀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 그렇게 하는 게 절대 잘 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그리고 자기 자신도 '나도 그렇습니다.'라고 말을 건넨다. "나는 여전히 이루고 얻는 것보다 버리고 포기하는 게 더 많은 시시한 삶을 산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조소를 짓기보다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은 저자 스스로도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나'만이 '나'를 아껴주고 사랑할 수 있다는 걸 확신하는 게 글 속에 은은하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 농도 짙은 시간을 돌이켜 보는 즐거움에는
분명히 여행 경비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일기인지, 편지인지 그 정체성을 알 수 없는 게,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다. 어떤 글은 일기 같기도 하고, 어떤 글은 편지 같기도 하다. 작가 스스로 과거를 돌아볼 때면 누군가의 일기를 살펴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글에선 '툭' 나에게만 하는 글 같아 보인다. 어떻게 읽던 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과장일 수 있지만, 나는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를 읽으며 내 마음이 어디에서 열려 있고 어디에서 닫혀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어떤 글을 읽으며 낯설게 느끼고, 삐죽하고 볼멘소리가 나왔다. 부끄러워 말할 수 없지만, 그건 나 스스로 아직 마음을 활짝 열지 못하는 아픈 부분이란 뜻이다. 작가가 노크를 두드리며 마음의 문을 열 것을 말했지만 내가 아직 열기 망설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어떤 글에선 저자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일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그 부분은 어쩌면 저자보다 더 활짝 내 모습을 들어낼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를 읽을 때 내 마음의 빗장이 어디에 열려 있고, 어디에 닫혀 있는지 살펴보며 읽는다면 조금 더 책을 풍성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편지 쓰기를 좋아했던 이유가,
오로지 그 사람만 생각했던 시간을
예쁘게 포장해 선물하는 듯한 기분이었다는 것을.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는 딱 지금 마음이 공허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한 권의 책 속에 예쁘게 포장되어 있다. 작가 유정아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풀어보며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좋겠다.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를 읽으며 난 한 달간 열심히 준비했던 것에서 똑! 떨어진 경험을 잘 받아들이는 마음의 여유를 배웠다. 어차피 "내 인생은 해피엔딩"이라는 (근거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자신감을 얻었다. 또 좋아하는걸, 싫어하는 걸 말하기 한참 망설이는 내 모습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할 문장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렇게만 보면 그녀의 생각을 내 것인 듯 따오는 상투적 표현을 늘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발견 뒤에, 나만 느끼고 나만의 생각, 나만의 이유는 무엇일까를 곱씹게 되었다. 언젠가 그 생각들을 잘 정리해서 《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처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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