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는 것 같다 시요일
신용목.안희연 지음 / 미디어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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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누군가를 사랑했을 것이다.
어느 날 떠나간 연인 때문에 잠을 설치고 그만 집중력을 잃었겠지.
세상 모든 이유들이 휘발되어버린 순간에도
살아내야 할 하루가 있고 채워나가야 할 일상이 있어서
그는 진흙 반죽을 앞에 놓고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 어색하다. 아버지보다 아빠. 아빠보다 우리 아빠가 익숙하다.

 

이런 내가 아버지에 대한 시집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이 아닌 여러 문인들의 시를 엮어서 만든 시집, 『당신은 우는 것 같다』. 우리 아빠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이야기가 시집 안에 담겨 있어서 읽으며 몇 번이나 곱씹고 곱씹었다. 사실 난, 시를 즐겨 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를 읽는 것을 낯설어했다. 시는 나에게 참 어렵다. 아마 시를 국어 시간에 배워서 그럴 수도 있고, 함축적으로 의미를 담은 시를 읽어낼 혜안을 가지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버지라는 소재의 시라면, 마음에 금방 와닿을 것 같아, 골랐는데. 시는 여전히 어려웠지만, 좋았다. 이상하게도 말이다.

 

우리 아빠와 시속의 아버지들은 달랐다. 우리 아빠의 모습과 닮은 모습은 별로 없었지만, 시인들과 시인들의 아버지의 관계와 우리 부녀 관계가 이상하게 닮아 있었다. 정확하게 내가 생각보다 우리 아빠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 그 점이 시를 쓴 시인들과 나의 공통점이었다. 시가 아버지를 닮은 건지, 아버지가 시를 닮은 건지. 명확하게 구별할 수 없지만, 나는 우리 아빠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몇몇 부분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 닮아 있었다, 시와. 그렇게 시를 닮은 아버지란 존재를 시를 통해 살펴보다가 문득 어떤 사실 하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아버지도 처음부터 아버지가 아니었다"라는 그 당연한 사실에 왠지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꽝하고 울림이 있었다.

 

눈사람이 검은 입술로 노래를 했다
이토록 스물일곱
이토록 따가운 스물일곱
개가 나무에 매달렸다
검은 두 눈알이 쏟아졌다
아버지의 젊음이 호주머니 속에서 사라졌다.

 

나는 딸이어서, 그것도 맏딸이어서 아빠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빠에게 첫 번째였고,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 난 큰 병을 앓지는 않았지만, 한밤중에 나는 팔이 빠지거나, 배탈이 나서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다.  늦은 밤 아버지의 넓은 등에 업혀 병원에 갔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또 사춘기 시절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아빠에 짜증을 부린 적도 많이 있었다. 심통 부리는 딸의 화를 다 받아주신 적도 있었고, 따끔하게 혼내신 적도 있었다. 난 아빠와 관련된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아빠가 아빠가 아닌 시절의 이야기는, 아빠가 어떤 사람 인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들여다볼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어느덧 아빠의 삶이 아빠가 되기 이전 동안 보낸 시간과, 아빠가 된 이후에 보낸 시간의 길이의 차이가 점점 줄어드는 요즘에 와서, 아버지도 처음부터 아버지가 아니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아빠에게 아빠가 아빠가 아니었던 시절의 이야기는 '군대' 경험과 '학창 시절에 있었던 아빠 친구분들 이야기'가 전부인데. 아빠에게 아빠가 된다는 것에 어떻게 와닿았는지 궁금해졌지만, 이 질문이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아빠도 나처럼, 나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이 있지만 입 밖으로 질문하지 못하시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결혼기념일이고 모레는 아버지 제사다.
문득 나는 전생을 믿는 심리학자의 노트처럼 복잡해진다.

십일년 전에 나는 결혼했고
그때는 네 아이 같은 것은 상상도 못했다.

아버지도,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

 

딸에게 어머니라는 존재처럼, 아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마치 아버지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어느새 아버지를 닮아가, 아버지 탓을 하기도 하고 아버지를 이해하기도 하는. 혹은 끝내 아버지와의 기억을 좀처럼 상기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시집 군데군데 담겨 있다. 솔직하게 털어놓은 시인의 글 속의 아버지와 시인의 관계는 울퉁불퉁 투박하다. 그 관계가 얼마나 거친 길을 걸어왔는지, 시안에 그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시 다음에 이어져 나오는 글들은 그 시의 투박함을 이해하게 만들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굉장히 오래되어 있지만, 모든 존재에게 몇 번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모두가 처음이기에 서투른 모습이 보인다. 물론 그 서투름이 모든 경우에 용납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보내온 세월을 시를 쓰며 돌아본 이들의 생각 속에는 꽤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원망이 담겨 있지만 끝에 그리움으로 끝이 나는 시들을 보면, 아버지란 존재는 어머니와 다르게 자녀의 마음에 그만의 자취를 남기는 것 같다. 아버지에 대한 솔직한 심정과 아버지가 된 자신의 심정이 교차하듯 써 내려간 시가 기억에 남는다. 자신의 결혼기념일과 아버지의 기일이 연이어 나오는 것을 보며, 왠지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부자간 미묘한 감정을 다 알 수 없지만, 시만으로도 충분히 그 특수한 감정이 전해졌다. 아들에게 아버지란 단어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싶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은 것도 상처가 많은 것도 모두 힘겹다. 

 


그 어떤 수식도 필요 없는, 그저 아름다웠다는 말이면 충분할 것 같은 시간들. 어느 누구도 "그 집에서는 죽을 수 없었다." 그 어떤 불행도, 슬픔도 침입해서는 안 되는 단 하나의 집이었기 때문에. 그 집을 떠나면서 우리는 조금씩 깎이고 허물어지기 시작했으리라. 마지막으로 우리가 떠난 뒤에 그 집은 빈집이 되었으리라.

 

 

 

시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아버지를 향한 마음이 다시금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좀 더 아빠에게 애정 표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후회하지 않도록, 더 많이 웃어드리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연히 아버지에게 모나게 굴었던 일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시인들의 마음은 나와 다르지 않았다. 더 많은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든, 지금의 나이 든 모두 아버지 앞에서 자식으로 존재하는 모습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시를 읽는 내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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