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물리학
림태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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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물리학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관계의 물리학이란 이름 하에 어떤 글들이 모여 있을지 몹시 궁금했다. 기대감을 한껏 담고 있는 궁금증이 해소될수록 기대는 만족으로 바뀌었다. 잔잔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글들이 넉넉히 담긴 책이었다. 《관계의 물리학》은.

 

요즘 들어 인간관계를 피곤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신경 끄기 기술》, 《미움받을 연습》, 《불행 피하기 기술》. 위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사회 분위기가 인간관계가 더 이상 관계를 맺는 데서 관계를 정리하는 쪽으로 바뀌어가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면 피곤함, 시간 투자, 관리의 대상을 먼저 떠올리게 되고, 이는 자연스레 인간관계조차 하나의 미션처럼 과업처럼 자리 잡힌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람을 재고 따지게 된다. 마치 물건 대하듯이 인간관계가 맺어진다. 어떤 사람은 이런 인간관계를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비록, 마음 한편에 공허함이 스친다고 해도 말이다.

시인 림태주는 '인간관계'가 '인간 관리'가 되어가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울리는 불협화음에 주목했다. 흔히 '고민'이라고 부르는 것들 말이다. 《관계의 물리학》은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인간관계의 기초 중의 기초라 할 수 있는 '관계학개론'을 통해 생각을 환기하게 끔 도와주는 책이다. 자신의 이야기부터, 자녀의 이야기, 후배 이야기, 친구 이야기 등 저자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관계가 글 속에 담겨있는 데 덕분에 글에 생동감이 있다. 자신의 서툴렀던 모습을 숨김없이 이야기하며, 후회와 반성이 교차한 글들 덕분에 마치 내 이야기인 듯 받아들일 수 있다. 남의 이야기나, 시인 림태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나의 이야기인 것도 같다.

 

《관계의 물리학》은 관계의 날씨, 말의 색채, 행복의 질량, 마음의 오지라는 장으로 나누어 약 70여 개의 글들이 담겨있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다고 할 수 있다. 글들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듯싶지만, 읽다 보면 하나같이 전부 인간관계가 어려워 마음에 밤이 찾아온 사람들에게 북극성처럼 빛나는 글들이다. 인간관계를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원소 주기율표의 원소, 열역학 제2 법칙, 팽창하는 우주, 수축하는 우주 등 다양한 개념에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조합에 어색함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물리학의 수많은 법칙들이 인간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심리학 법칙인 양 딱 들어맞는다. 절묘하게 인간관계와 물리학의 접점을 찾아내 글을 풀어나가는 림태주 시인의 필력의 깊이와 참신함에 놀랐다.

 

림태주 시인의 글은 '조깅'과 닮았다. 서정적인 시인의 글이란 느낌이 묻어나지만, 읽다 보면 문장 하나하나에 여운을 담기보다 문장들이 모인 한 편의 글에서 드러내는 은은함이 돋보인다. 그래서 문장 하나 하나는 빠르게 읽힌다. 간결하기 때문일 것이다. 금방 읽힌 문장들이 한 편의 글로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글을 통해 전한다. "관계는 수제품이다. 수공의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 그것이 관계를 대하는 안목이다."라고 말에는 저자가 인간관계를 어떻게 대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글은 조금도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의 글의 주제는 보통 하나뿐인 소중한 수제품을 만들듯 공을 들이는 내용과 그 가치를 인정하는 태도에 대한 내용으로 수렴한다. 그런데 크게 보면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 같지만, 한 편 한 편이 낯설고, 저마다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현학적이거나 은유적인 문장 뒤로 의미를 감추지 않는다. 일상적이고 편안한 글로 조깅하듯 기분 좋은 속도감을 느낄 수 있게 글을 독자에게 전한다.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면 무슨 책을 읽어왔는지 물어보았다.
그가 읽은 책이 그 사람이라는 말을 믿어서 그랬다.
그러나 책이 다 말해주지는 않았다.
그의 지적 관심사나 교양이나 취향에 대해서는
책 목록이 실마리를 제공해줬으나
그가 어떤 본성을 지녔는지 알아채기는 어려웠다.
그 사람의 진실은 어떤 책의 장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사용하는 말투나 습관적인 몸짓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법이니까.

 

여러 구절들이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중에 이 구절을 읽는데, 내 이야기를 적은 글인 줄 알았다. 습관처럼 물어본다. 마음에 든 사람,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꼭 물어보는 질문이 "책 좋아하세요?", "어떤 책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달고 살았다. 좋아하는 책이 겹치기라도 하면 왠지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았고, 흥미로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듣고 싶어졌다. 이렇게 시인의 글을 읽으면 나만의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아님을 확인하고 나보다 먼저 다른 기준으로 넘어간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세상의 기준으로 놓고 보면 '늦음'은 느림이고 게으름이고 불성실이고 무능력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큰 뜻을 세우고 사는 것도 아니고 빛나는 업적을 남기기에는 애당초 깜냥이 안 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죽기 전까지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나의 진짜 값어치가 얼마인지 나 자신도 가늠하기 어렵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그가 말하는 현실 뒤에 오는 답도 참 현실적인데도 이유 없이 그 글에 위로 받기도 했다. 이처럼 별거 아니고 사소한 이야기를 림태주 시인의 언어로 완성된 형태는 그만의 감성이 묻어 있었다. 짧은 산문들이지만,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문득 내가 혼자 생각했던 것이나,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곤 한다. 늦음에 대한 글을 읽으며, 내가 유난히 고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늦는 일들이 떠오른다. '잘못을 인정하는 말을 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그가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의 글은 내 생각의 타래와 함께 다른 그의 글로 엮어져 나갔다. "사람을 잃기 좋은 때, 마음 하나면 충분했던 일인데 한없이 옹색해져 관계를 그르치는 때, 자신도 하지 못하는 역지사지를 타인에게 요구하고 있는 때, 아픈 후회의 씨앗을 생각 없이 삼고 있는 때."라는 메시지로 이어져 또 다른 글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생각과 기억이 이어져 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것도 《관계의 물리학》에서 느낄 수 있었던 재미 중 하나였다.
 
당신도 나도 살아가면서 이것 하나만은 잊지 않아야 한다.
어떤 사람의 심장에 보관된 말은 소멸시효가 없다.
심장에 박힌 상처의 말은 화살의 주인과 상관없이
한 존재의 일생을 잔인하게 갉아먹는다.

 

저자는 '당신'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 당신의 대상은 때로 연인에게 향하는 듯, 독자에게 향하는 듯하다. 분명한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말하지만, 꼭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만약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읽길 권하고 싶다. 나는 나에게 하는 말이라 생각하며 읽었다. 힘든 마음을 감싸는 위로부터, 나의 마음에 대한 깊은 공간 그리고 따끔한 충고까지. 글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관계의 물리학》은 글마다 다른 상황과 관계 속에 저자와 내가 존재하는 책이다. 그의 말이 내 안에서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다음엔, 내 주변과 나의 관계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든다. 살짝 마음이 상기되어 책을 덮었다. 열역학 제2법칙 "열은 반드시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이동한다." 림태주 시인의 말처럼 관계가 빛이 아니라 열이라면, 내가 은은한 따뜻함을 유지해, 다른 사람의 온도를 빼앗지 않고 나누어줄 여유를 《관계의 물리학》을 통해 가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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