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1
조승연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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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깃든 이야기에 대하여

 

 

 

단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을 이루는 단위. 당연해서 그 의미를 들여다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단어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언어 공부가 취미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작가 조승연이 들려주는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단어를 통해 역사를, 문화를, 제도를 이해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폭이 넓어질 수 있다.

 

《이야기 인문학》은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를 낯설게 바라본다. 이 단어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고, 그 의미를 가지게 된 배경을 주목하는 책이다. 그저 일상적으로 툭툭 사용하던 단어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흥미로운 역사가 담겨 있고, 한 시대의 단면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의미가 현재의 우리 삶과 어떻게 닿아있는지까지 보인다. 나는 단어에 얽힌 이야기만 읽었을 뿐인데 따라오는 지식들은 정말 풍성하다. 그렇게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조승연 씨와 함께 곱씹다 보면, 차근차근 쌓여가는 지식과 함께 '호기심'이란 녀석도 함께 자란다. "이 단어는 무슨 뜻일까."라는 궁금증이 말이다.

 

《이야기 인문학》은 총 여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욕망'과 '유혹'으로 알아본 이야기 인문학, '사랑'과 '가족'으로 알아본 이야기 인문학,
'인간 사회'로 알아본 이야기 인문학, '예술'과 '여가'로 알아본 이야기 인문학,
'전쟁'과 '계급'으로 알아본 이야기 인문학, '인간 심리'로 알아본 이야기 인문학.

어느 장부터 읽어도 좋지만 한 장을 선택했다면 그 장을 쭉- 이어서 읽을 것을 권한다. 단어와 단어를 사슬처럼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그렇게 읽게 될 것이다. 한 단어를 설명하고 그다음 단어와 연관된 단어를 알아보고 싶게 만든 작가의 문장이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어가 품고 있던 이야기를 알아가는 즐거움은, 김춘수의 시, <꽃>과 닮아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의미를 가지게 되었듯, 내가 단어의 뜻을 알게 되기 전과 후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 Designer 란 단어가 있다.


우리는 예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란 뜻으로 한정적으로 사용하지만, 과거 디자이너의 의미는 정말 넓었다. 600년 전 이탈리아 시골 가구점의 사장이었던 스콰르치오네가 자신이 그린 가구를 기술자에게 넘겨주는 분업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때 자신이 그린 도안에 그린 그림과 모양을 표시(sign)를 해서 넘겨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린 도안을 제작자들이 제작할 때 하는 작업을 디자인(design)이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스콰르치오네는 첫 번째로 명성을 떨친 디자이너는 아니었다. 그의 밑에서 일하던 만테냐가 디자이너라고 불린 최초의 명사가 되었다. 스콰르치오네는 재능 있는 만테냐를 양자로 삼아, 그의 재능을 이용해 많은 부를 쌓았다. 차츰 시간이 지나자 만테냐는 스콰르치오네가 자신을 이용해 많은 부를 쌓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베네치아의 유명한 화가 벨리니의 딸과 결혼하여 스콰르치오네의 영향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세상에 선보였고, 정당한 부를 쌓게 되었다. 이때 만테냐 역시 스콰르치오네처럼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자신이 구현한 것이 아니라, 콘셉트만을 잡아서 그렸다. 그래서 건물, 가구, 인테리어 등 콘셉트를 잡고 밑그림만 그리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디자이너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후 디자이너가 전 세계 트렌드를 이끄는 선망의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 된 이유는 《이야기 인문학》을 통해서 확인하길 바란다.


이처럼 단어의 기원에서 시작해, 그 단어가 오늘날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프리랜서 freelancer란 단어의 뜻이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백년 전쟁에서 시작했다는 사실, 최첨단 기술의 선봉에 서있는 로봇 robot 이란 단어가 중세 때부터 사용했다는 사실, 토마토와 바질 그리고 모차렐라 치즈가 듬뿍 올라간 마르게리타 margherita 피자의 이름이 이탈리아 왕비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란 점, 바람둥이를 뜻하는 말로 바뀐 카사노바 casanova가 지켰던 신념이 무엇인지. 《이야기 인문학》을 읽지 않았으면 몰랐을 지식이 촘촘히 글과 글 사이를 채우고 있다. 덕분이 내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단어들의 뜻이 떠오른다. 바로, 그냥 사용했을 때 그저 하나의 단어에 불과하던 녀석이 특별한 단어가 되는 순간을 느낄 수 있다.

 

단어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그 의미를 알아보는 건 지식을 쌓는 즐거움 외에 또 다른 기쁨을 준다. 바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의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새롭게 얻게 되는 관점이다. 가령, 지하철의 영어명 metro와 대도시를 가리키는 metropolis 속의 metro가 mather과 같은 의미이라는 뜻 안에 도시의 탄생 뒤에 담긴 따뜻한 가족애를 엿볼 수 있다. 오랜 시간 변하지 않는 가지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단어마다 사람들의 욕망과 감정, 당대 문화가 어우러져 있고, 그 안에서 우린 단어가 가진 의미뿐만 아니라 사람이란, 인간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작가 조승연은 '언어는 사람 공부'라고 한다. 단어 하나하나에는 그 말을 만들고 사용했던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고, 그리고 그 의미가 달라지는 과정을 통해서 과거에서 현대로 오는 과정 중에 달라진 삶의 지향점을 발견할 수 있다. 단어를 만든 사람과 단어를 지금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차이가 심한 부분도 있지만, 그 간격이 그리 멀지 않은 것도 발견할 수 있다. 그 거리감이 다른 이유는 인간이 긴 시간 동안 달라지기도 했지만, 달라지지도 않은 그 이중적인 면을 드러내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이란, 사람에 대해 깊이 배우는 학문이다. 이야기, 단어를 통해 배우는 인문학을 배울 수 있다는 《이야기 인문학》.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이야기 인문학》이 단어 자체의 의미를 알려주는 지식 이상으로 그 단어의 맥락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특별한 배울 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말하고, 쓰고, 읽는 평범한 단어 속에 이렇게 풍성한 이야기가 가득하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세상에 관심을 두고 들여다볼 것이 많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닐까?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는 건, 앎에 대한 열정 passion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래서 책 읽는 건 피로한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사용한 말의 의미를 아는 과정은 그 열정을 쏟은 만큼, 내가 사용하는 말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감동을 불러온다. 이 점을 상기하면, 《이야기 인문학》을 읽으려고 마음먹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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