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 - 크기의 생물학
모토카와 타츠오 지음, 이상대 옮김 / 김영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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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 따라 시간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에는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시간은 유일하고 절대 불변하는 것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저자가 쓴 첫 문장을 보고 나 역시 놀랐다. "동물에 따라 시간이 달리 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첫 문장에서부터 배울 점이 많은 책이란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았다. 정말 난 이 개념을 처음 알았을까? 이렇게 문장으로 보았을 때는 마치 처음 듣는 개념 같았지만, 익숙한 것이기도 했다. 나는 이미 강아지의 나이와 사람의 나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는 강아지를 기르셨다. 처음에는 꼬물꼬물 작았던 녀석이 내가 성인이 되기도 전에 훌쩍 커버리고, 또 너무 빠르게 이별의 순간이 왔었다. 아마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동물의 나이가 인간의 나이가 다르다는걸. 그리고 동물들 간에도 나이가 다르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강아지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도 함께 담겨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동물의 나이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더 크게 놀랐다. 동물의 시간이 다른 건 어렴풋하게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걸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난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왠지 첫 문장에서 본능적으로 느낀 배울 점은 이를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은 한마디로 동물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동물학 책이다. 이름부터 생소한 동물학은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인간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동물의 입장에서 동물을 바라보는 재미있는 학문이다. 저자는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에 차근차근 답변을 해준다.


"동물들은 몸의 크기가 다른데, 그건 왜 그럴까?"
"동물이 움직일 때 사용하는 도구는 왜 사람의 도구와 닮지 않았을까?"
"동물의 호흡계나 순환계가 몸의 크기와 어떤 연관성이 있으며, 이렇게 발전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식물과 동물의 생장 단계에서 어떤 차이를 보일까?"
"곤충, 산호, 성게와 불가사리 무리의 적응 능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질문을 하나하나 읽으면, 입에서 툭 이 말이 나올 것이다. '그러게, 왜 그러지?' 나도 그랬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그 설명이 궁금해서 책장을 넘겼다.




학교에 들어가서 가장 처음 배운 것 중 하나는, 시간은 시계로 제기 때문에 배가 고프다고 제멋대로 점심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가'와는 관계없이 결정되는 시간이라는 게 있어서 인간만이 아니라 곤충과 꽃, 짐승, 무기물까지도 모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초월적 절대자가 바로 시간이라고 철저하게 교육받았다.


저자의 경험처럼 우린 정해진 단위 속에서 살아간다. (문득 『단위의 세계』란 책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단위에 대해 개인이 느끼는 정도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우린 그 감도에 무뎌지게 하는 공부를 오랫동안 했다. 사회가 정해진 시간에 따라가도록 말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도 같은 생각으로 바라본다. 정확하게 그들이 어떤 속도로 느끼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의 시간 속에 동물이 함께한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하지만, 동물을 정말로 사랑하고 함께 공존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동물의 세계에 대해 조금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그 첫 단추로 '시간'을 꼽았다. 동물이 체감하는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이야기하고, 이를 계산하는 공식을 알려준다. 동물의 시간은 자신의 몸길이의 4분의 3제곱에 비례한다. 이건 단세포동물이나 변온동물이나 정온동물이나 모두 동일한 점임을 계산을 통해 증명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후 이야기다. 동물의 시간은 크기에 따라 달라지지만, 평생 동안 동물이 1kg당 사용하는 에너지의 총량을 계산하면, 시간에 관계없이 일정하다. 이 이야기는 코끼리가 평생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와 쥐가 평생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가 동일하다는 뜻이다. 그럼 도대체 보통 코끼리보다 일찍 죽는 쥐는 평생 동안 얼마나 분주하게 사는 걸까? 이를 두고 저자는 에너지 소비량이 체중의 4분의 3제곱에 비례한다고 이야기한다.


운동에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다면, 아무 목적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일도 있을 수 있다. 욕심을 부리면 얼굴에 나타나는 법이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헤엄치는 돌고래를 보고 있으면, 왜 이들이 이렇게까지 사람들에게 편애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알 것도 같다.


이렇게 소비하는 에너지가 평생 동안 같은 이유는 상식적인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대신, 이를 증명하는 과정에 조금 높은 상식을 요구할 뿐이다. 작은 동물에 비해 큰 동물은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다. 정확하게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저자는 코끼리의 사례를 통해서 이야기하는데, 코끼리는 빠르게 걷지 않는데, 그 이유는 움직이는 것 자체가 코끼리 스스로에게는 다리에 엄청난 무리를 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끼리의 다리뼈를 보면 여러 번 골절된 흔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반면에 작은 동물들은 날렵하게 움직이는데 제약이 없을 뿐만 아니라,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생존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수식으로 증명하다 보면,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위체중당 산소 소비량은 체중의 마이너스 4분의 1제곱에 비례한다. 즉 제중이 늘어나더라도 몸이 소비하는 산소 소비량이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든다는 뜻이 된다. 즉, 큰 동물일수록 체중에 비해 에너지를 적게 사용한다는 뜻이다. 코끼리보다 쥐의 조직이 같은 단위당 소비하는 에너지가 더 많다. 몸집이 클수록 세포 활동이 활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왠지 동물만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분명 나는 동물의 시간을 배우고 있는데, 인간의 시간이 동시에 겹쳐 보여서 더 재미있다.


이렇게 흥미로운 사실을  왜 배우지 않을까. 혹은 이 사실은 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꽤 흥미로운 사실인데도 말이다. 저자는  어떤 법칙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설명할 수 없으면 학문이 아니라는 생각은 당연하지만, 학문의 폭을 좀 더 넓혀서 비록 설명이 안되더라도 억지가 아니라면 학문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가 이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이 비과학적이거나 논리의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산호 개체 하나하나에는 수명이 있지만, 군체에는 정해진 수명이 없다. 수명은 개체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개체는 유전자를 넣어둔 일종의 주머니이며, 낡게 되면 새것으로 교체하는 식이다. 그래서 생물의 개체에는 수명이 있지만, 군체는 사정이 다르다. 산호의 군체는 오래오래 살아서 자꾸자꾸 커진다.

내가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다. 왜냐하면,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라 읽으며 가장 잘 집중할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맨 처음에 난 산호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부터가 흥미로웠다. 산호는 몸속에 조그마한 단세포식물이 함께 공생하고 있는데, 이 공생 과정에서 산호는 자신의 세포보다 훨씬 많은 조류와 함께하며 이들이 주는 영양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한마디로 산호는 그 자체가 생물이면서 생물들의 터전이 되는 신비로운 생물이다. 그리고 그 성장과정은 나무와 닮았다. 자신과 공생하는 조류가 광합성을 해야 하기 때문에 햇빛이 없는 곳에서 산호는 살 수 없다. 그래서 나무와 마찬가지로 햇빛이 있는 곳에서 자라고, 깊은 심해에서 산호를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생장을 하는 산호 곁에 자신과 동일한 산호가 있다면 어떨까?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산호는 오히려 군체를 이루어 살아가는데, 하나의 산호가 다른 산호와 뭉쳐져 한 덩어리를 이루는 것이다. 물론 하나의 산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죽게 되지만, 죽은 이후 석회질 껍질은 그대로 남아서 새로운 산호가 그 위를 덮어 산호 군체의 수명을 연장시켜준다.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일이 산호 군체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신기했다.


어떤 동물의 디자인을 발견해야 비로소 그 동물을 이해할 수 있다. '디자인'은 그 동물이 근거하고 있는 논리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상대방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은 결코 동물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이 논리를 발견하고 존중하는 것이 동물학자의 커다란 사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는 왜 동물에 대하여 우리가 왜 알아야 하는지, 제대로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  마지막에 한번 더 강조해서 말한다. 그리고 그 제대로 된 앎을 발견해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밝힌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조화와 균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조화와 균형보다는 서로 간 거리감을 유지했던 것이 사실이다. 나는 동물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서 더 이 문제에 대해 섬세한 감수성을 가지지 못했지만, 동물에게 어떤 관심을 보여야 할지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한 내게 그 방향성을 알려줄 수 있는 책을 이제껏 만나지 못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은 쉽고 간결하게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할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동물을 사회나 감정적으로 다루는 책들과 달리 하나의 생명체로 동물의 존재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동물의 생장 과정을 물리학적으로 접근한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은 다른 동물에 대해 서술한 책들과 분명 달랐다. 이렇게 설명을 하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지만, 읽다 보면 어렵게 느껴지는 수식과 도표 속에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정의 배려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물과 함께 공생한다는 것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동물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 시작점으로 동물들이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시간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한다. 동물은 어떻게 존재하고, 동물은 어떤 속도로 살아가며, 동물이 살아가는 방식은 어떤지. 그 모습들이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말이다. 과학적 방법론을 취하지만, 저자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놓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책을 읽다 보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렇게 과학적으로 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코끼리의 시간, 쥐의 시간』, 알고 보면 이 책은 동물을 정말 사랑하는 동물학자의 사랑이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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