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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http://blog.bandinlunis.com/bandi_blog/UPLOAD/user/g/p/gps5059/tmp/image_3343552491524752689714.jpg)
소설가 김영하는 <알쓸신잡>에서 "소설가는 언어를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버스데이 걸』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소설가는 사람의 감정을 포착하는
사람이다.
스무 살 이란 나이의 복합적인 감정을 이토록 담담하고 매력적이게 담아내다니. 그는 과연 사람의 내밀한
그 감정을 글로 풀어낼 줄 아는 대가였다. 『노르웨이 숲』, 『해변의 카프카』, 『1Q84』 등. 그의 모든 작품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의 작품은 대부분 길었다. 사람의 감정을 글로 전하기 위해 그는 모래알 한 알 한 알을 쌓아 올리듯 글을 쓴다. 그의 글을 읽을
때면 숨을 죽이고, 글에만 몰입하곤 했다. 이렇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은 어떤 결을 지니고 있는지 나를 비롯해 대중에게 각인시킨 그가 내놓은
『버스데이 걸』은 조금 달랐다. 쉽게 '길이가 짧아서'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단숨에 한번 읽은 책을 다지 집어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의 결을 찾아서.
『버스데이 걸』. 제목이 이러하고, 시작부터 끝까지 스무 살과 생일로 가득 찬 글을 읽다 보면 '스무
살 생일'이 머리 안을 맴돈다. 그리고 마법에 빠진 듯 어느 11월 17일 604호실에서 들어갔다가 나와, '작가 후기'를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에 툭 걸린다.
"당신은 스무 살 생일에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는가."
그의 질문에 난 고개를 저었다. 난 스무 살 생일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 일기장을 들춰보면 알
수 있겠지만, 여느 생일이 일기장을 들춰보지 않아도 기억이 나는 반면. 스무 살 내 생일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제법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을 것이다. 카카오톡을 처음 시작한 해였으니,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이더라도, 카톡으로 생일 문자를 받곤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 년 중에 딱 하루, 시간으로 치면 딱 스물네 시간, 자신에게는 특별한 하루"라고 하지만, 그
하루에 대한 기억이 나지 않다니.
그에 대한 변명을 조금 늘어놓자면, 내 생일은 3월에 있다. 그래서, 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맞이하는
해의 생일을 좋아하지 않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와 대학교에 입학해 맞이한 생일도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스무 살 생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신 한국 나이로 스물한 살, 세계 통용의 스무 살 그 이후로 맞이한 생일들은 분명히 기억이
난다. 생일 마나 소소한 이벤트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버스데이 걸』의 주인공처럼 고단한 일상과 마법 같은 선물이 없어서 일 수도
있고, 『버스데이 걸』의 작가처럼 마지막까지 즐거운 일 따위는 하나도 없어서 마치 인생을 암시하는 듯 우울해지는 하루가 아니어서 일 수도 있다.
평온한 어느 하루처럼 지나가서 기억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혹은 기억도 하지 못할 스무 살 생일을 보낸 내가 스무 살 생일의 감정을 『버스데이 걸』에서
찾았다. 특별한 생일에 대한 이야기에서.
![](http://blog.bandinlunis.com/bandi_blog/UPLOAD/user/g/p/gps5059/tmp/image_2234382421524752689724.jpg)
주인공의 생일은 (여느 소설 속 주인공처럼) 참 우울하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바꿔주기로 한 친구가 몸이 좋지 못해 결국 일터에 나왔고, 스무 살 생일을 함께 보낼 거라고 믿었던 남자친구와는 지난주에 어떤 일로 소원해졌다.
그리고 게다가 6층에 있는 아르바이트하는 알 수 없는 이상한 식당의 주인에게 식사를 전달해야 하는 일까지 맡게 되었다. 머피의 법칙처럼 보이는
그녀의 생일이 이대로 진전되었다면, '특별한' 생일이란 이야기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원한다면? 그녀는
생각했다. 상당히 기묘한 말투다. 내가 대체 무엇을 원한다는 것인가."
기묘한 말투를 쓰는 알 수 없는 식당 주인. 그가 그녀의 생일에 새로운 변화점을 만들어준다.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일까. 의심을 가지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몇 마디 말만 주인공에게 할 뿐, 특별히 주인공에게 무엇을 주지는 않는다. 몇
마디 말이, 고작 몇 마디 말이 아니라 그 말로 인해 생각을 바꾸어준다. 그리고 그 말속에 정확하게, 스무 살에 내가 가졌던 그 낯간지럽던
단어의 감촉을 표현한 부분과 정확하게 마주했다. 그리고 속으로 '아니 이걸 어떻게 알았지.'라고 말했다.
아가씨, 오 분쯤만 자네 시간을 내줘도 괜찮겠는가?
노인이 말했다. "자네와 이야기하고 싶네."
아가씨
그 단어를 듣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나도 스무 살에 '아가씨' 혹은 '~씨'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주인공처럼 얼굴이 붉어지곤
했다. 혹은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난다. 이상하게, 스무 살이 되어서 그럴까? 별거 아닐 수 있는 '아가씨'라는 단어가
낯간지러웠다. 늘 학생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었는데. 그때는 이 단어 하나도 신기했었다. 처음 듣는 단어이기도 했고, 성인이라는 걸 처음
인정받았던 때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보다 나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주변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 그 낯섦. 그리고 '난 아직
아닌데..'라는 생각이 교차해 만든 쑥스러움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를 포착해 내용에 넣은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굵은 글씨로
'아가씨'를 처리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스무 살에 느낄 수 있는 그 감성을 포착해 썼다고 생각한다.
![](http://blog.bandinlunis.com/bandi_blog/UPLOAD/user/g/p/gps5059/tmp/image_6905785631524752689729.jpg)
"스무 살이 된 참이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스무 살이 된 주인공의 모습은. '아가씨'란 말에 얼굴을 붉힌 사람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담담하게 자신의 생일임을 말한다. 그녀의 말에 자신의 생일이니 축하를 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세상에 자신이 나온 지 정확하게 스무
해가 지났다고 말했을 뿐이다. 일생 한 번뿐인 생일에 대해 주인공은 지나칠 정도로 덤덤하다. 아마도, 스무 번째 생일에 덮치고 덮친 악재들
때문이었을까. 자신의 인생이 앞으로 암담한 모습일 거라고 생각해서일까. 너무나도 담담하게 스무 번째 생일을 말한다.
![](http://blog.bandinlunis.com/bandi_blog/UPLOAD/user/g/p/gps5059/tmp/image_2550497881524752689731.jpg)
어떤 것도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는 일이 없기를.
"스무 살 생일이라는 건 인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것이야. 그리고 그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것이라네. 아가씨."라는 말을 하며 담담해하는 주인공에게 무심한 듯, 축하를 전한다. 술 한 모금과 함께. 그리고 소원을 묻는다. 기묘한
말투로.
『버스데이 걸』의 핵심은 이다음에 시작된다. 어떤 생일을 받고 싶은지 묻는 질문과 어떤 생일 선물을
받고 싶다는 답이다. 그리고 『버스데이 걸』은 질문은 보여주지만 답은 들려주지 않는다. 이미 스무 살의 생일을 지나왔지만, 기억도 나지 않는 내
스무 번째 생일을 다시금 떠올려보자.
딱 한 가지야.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도 도로 물릴 수는 없다네.
이
깜짝 선물에 뭐라고 답을 할까. 아마 주인공처럼 "내가 뭔가 소원을 빌면 그게 이루어지는 건가요?"라고 반문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온화한
목소리로 묻는 소원의 유무를 다시금 묻는다면. 나도 아마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그 질문에 미인이 되고 싶거나, 똑똑해지고 싶거나,
부자가 되고 싶거나 하는 식의 답을 하지 않았을 자신은 없다. 지금의 나라면 말이다. 하지만 막 스무 살이 된 때의 나라면, 그런 소원 말고
다른 소원을 빌었을 것 같다. 그 소원이 주인공과 같을지는 알 수 없다.
나라면,
내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했을 것이다.
왠지
주인공이 빌었을 "그런 소원"이 이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시간이 걸려서 이루어지는 소원이고, 시간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소원이라면.
이보다 더 적절한 소원이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한 사람(혹은 요정)에게 꿈을 이야기하는 게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무 살이기에 어색하기보다 적절해 보인다. 그리고 그 소원은 일 년 중에 그리고 내 생에 단 한 번뿐인 스무 살의 생일이 아닌가. 그런 날에
비는 "그런 소원"은, '시간이 걸려서' 평생에 거쳐서 이루어질 스스로에게 뜻깊은 소원인 게 좋지 않을까. 그게, 고정관념일 수도 있지만 스무
살 다운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시 내 스무 살을 곱씹어 본다. 내 기억에 비어있는 스무 살 생일에 『버스데이 걸』의 생일을
넣어두면 어떨까. 시간이 걸려서 이루어질 소원을 빌었던 생일로 나도 기억하고 싶다. 아니, 기억하려 한다.
『버스데이 걸』 어디에도 기발한 상상력, 섬세한 감성도 없다. 그저 스무 살이라는 소녀와 아가씨의
경계에 선 사람의 감정이 담겨있다. 스무 살 생일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옅은 미소를 지을 정도의 감성 그 자체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옅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정도가 담겨 있다.
그런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옅은 미소를 지을 수 있을 책을 만나는 건 정말 어렵다. 정말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