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기예르모 델 토로.대니얼 크라우스 지음, 김문주 옮김 / 온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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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 날 읽어야 할 책!

 

 

 

 


내가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을 본 건 지난달 어느 봄비 내리던 날이었다. 만약 맑은 날 봤다면, 이 영화가 지금 다시 생각할만큼 감동적이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날 비가 내리고 있었고. 온 세상에 수증기가 한껏 떠도는 날이어서, 영화가 더 좋았다. 그런 날씨에 이 영화를 만나서 난 참 운이 좋았다.

 

비와 잘 어울리는 영화라는 것을 알고 있던 난 기다렸다.  책 <셰이프 오브 워터>와 가장 잘 어울리는 날씨를. 그리고 지난주 찬바람을 데리고 온 봄비를 느끼며 읽었다. 눅눅함을 촉촉함으로. 차가움을 포근하게 감싸줄 사랑 이야기를 말이다. 만약, 아직 <셰이프 오브 워터>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꼭 비 오는 날 보길 추천한다. 이야기 서사 내내 짙게 드리워진 "Water"를 느끼기에 이만한 소설이 없다. 특히, 톡톡 땅을 가볍게 적시는 봄비 내리는 날 읽기에 좋은 소설이다. 정말.

 

"사람에게나 야수에게나 나돌아 다니기에 좋은 밤은 아니었다. W.C. 필즈가 말했지."
자일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침을 삼키고 앞에 펼쳐진 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함께 가는 거야. 끝까지 가 보자."

 

야수와 사랑에 빠지는 것. 어렸을 때 난 종종 생각했었다. 충분히 가능한 사랑이라고 말이다. <개구리 왕자>, <미녀와 야수>, <박씨부인전> 등 몇몇 이야기만 보아도. 동화 속 주인공이 고난을 겪는 레퍼토리만큼이나, 주인공이 괴물의 상태에 있는 일은 잦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괴물의 형상은 진정한 사랑과 만나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가진다. 이렇게 보면, 내가 생각했던 사랑은 야수와 사랑은 통과의례였다. 사실 그다음이 존재하는 것이기에 가능했던 사랑이었다. 야수를 사랑한다는 것. 역시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어려운 사랑을 시도하는 것이 인간이고, 그 불가능을 사랑으로 완전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존재가 인간이다. 그래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가슴 벅차게 만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고, 축복의 시선이 아닌 의심의 눈총을 받을 사랑이라고. 불가능한 사랑. 그래서 누군가가 보기에 무모해 보이는 사랑이다. 그렇기에 <셰이프 오브 워터> 보는 내내 읽는 내내 벅차오르는 감동과 함께, 마음 한켠을 아련하게 만드는 씁쓸함이 오는 사랑이라고 난, 생각했다. 그런데,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나의 예상은 틀렸다. 그들의 사랑은 내가 생각한 사랑의 형태 그 어디에도 없는 가장 완전한 사랑이었다. 불가능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틈이 없는 사랑 말이다. 

 

"불가능을 꿈꾸고 이를 실현하는 사랑"

 

아무나 이룰 수 없고, 어쩌면 이야기로 밖에 만날 수 없지만, 영화 속 자일스의 마지막 내레이션처럼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사랑 말이다.


엘라이자는 그 영화를 보고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 빙의 노래를 들으며 감옥에 간 여주인공처럼 자신도 힘겨운 삶이라는 형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여주인공을 기다리겠다는 그런 남자가 자신의 인생에도 나타날지 생각했다. 하지만 곧 부질없는 생각을 접었다. 그동안 그녀를 기다려 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셰이프 오브 워터>의 주인공은 검은 눈이 아름다운 엘라이자다.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엘라이자다. 자신에게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듣지만,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을 수 있는 사람인 엘라이자의 별명은 '벙어리'였다. 하지만 보육원 선생들은 그녀를 '22'라고 불렀다. 보육원에서 그녀에게 붙어 있는 건 숫자만이 아니었다. 말을 들을 수 있지만, 할 수 없게 만든 목의 큰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말하지 못하고. 목에 큰 흉터. 이 두 가지만으로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 존재처럼 삶을 살아간다. 또 누군가는 그녀를 모자란 존재인듯 여긴다. 보육원 사람들이 그랬고, 직장 상사가 그랬다. 특히. 잔인한 스트릭랜드는 이렇게 말한다.

 

"신은 인간처럼 생겼어, 데릴라. 나처럼, 당신처럼 생겼지."
그는 고개로 여자들에게 문을 가리켰다.
"솔직히 말하면 신은 당신들보다 나와 더 비슷하게 생겼지."


엘레이자는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그녀는 사회에 들어가지 못한 채 그 주변부를 맴돌며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괴물이나 괴생명체가 우리의 삶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처럼. 그녀가 사회에서 느낀 시선은 눈총에 가까웠고, 행동에 상처를 받았다. 그런데 이 생각을, 자신의 감정을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만, 그리고 반응하지만, 실재하지만 우리의 공간에 들어서지 못하고 서 있는 기분을 엘레이자는 거의 항상 느끼고 있었다. 이미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어서 그런지, 소설 초반부에 잘 담기지 않았지만. 엘레이자의 사랑스러운 모습들이 쓸쓸한 감정을 담담히 적어낸 글 속에서 아프게 다가왔다. 아마 엘레이자가 그 존재와 사랑에 빠졌던 건, 다른 존재를 사랑할 수 있는 엄청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 생각하기에 괴물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존재보다, 괴물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 더 괴물 같았기 때문이 아닐까?

<셰이프 오브 워터>의 배경은 미소간의 경쟁이 극을 치달아가던 시기다. 냉전체제가 군사부문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과학, 기술 등 전 영역에서 경쟁이 과열되고 있었다. 엘레이자가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곳도, 구 소련과 과학 기술 특히, 우주선을 만드는 일에 있어서 경쟁관계에 있는 NASA의 어느 비밀 연구소다.
그 배경이 재미있었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 기술이 집결되어 있는 곳. 그곳에서 인간의 이성과 과학 기술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괴생명체가 들어선다. 아마존 강가에서 스트릭랜드가 데려온(포획한) 괴물은 온갖 실험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가장 현실적인 곳에 존재하는 비현실적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신비롭다. 모순된 공간이 주는 신비감이 두 사람의 사랑을 더 극적이게 만들었다.
마치 <오페라의 유령>의 오페라 극장처럼, 비현실적 존재가 존재할 수 있는 현실적 공간이 바로, 연구소다. 이곳에서 엘레이자는 자신의 사랑을 만난다. <미녀와 야수>의 성처럼 세상과 동떨어진 신비한 공간이지만, 가장 진보된 과학기술이 태어나는 곳에서 피어난 사랑이 사랑의 원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파괴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전리품이었다. 엘라이자는 울 것처럼, 아니 웃을 것처럼 숨을 헐떡이면서 살아남은 것을 기뻐했다.

첫눈에 반했던 것 같다. 엘라이자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 두려움보다 단번에 괴물이라 불리는 존재에게 무언가 강렬한 이끌림을 느겼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파괴자 앞에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가쁜 숨을 몰아시며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자신의 감정을 엘라이자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너무 멀리 떨어진 그였지만, 이미 시작된 사랑 앞에서 자신의 마음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그에게 다가간다. 엘라이자에게 망설임은 없다. 심지어 생각보다 대범한 행동으로 자신의 사랑을 키워나간다.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그모든게 시작한다.


엘라이자도 난생 처음,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듣고 느낄 수 있었다. 글렌 밀러의 음악에 담긴 색깔과 모양, 질감을 왜 그동안 알지 못했을까?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강한 이끌림을 느끼지만. 그 이끌림의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왜 사랑에 빠졌는지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어도. 그 눈빛과 공간에 감도는 공기를 서술하는 것만으로도 두 존재의 사랑은 확실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독자인 나뿐만 아니라 두 존재도 알아챈다. 가까워지게 된 기간은 매우 짧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누구보다 깊은 사랑을 느꼈다.

그는 둥근 창 바로 뒤에서 헤엄치며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를 보자 몸을 홱 돌려 구르고 양손으로 기포를 만들며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수화로 말했다.
안녕.
엘-라-이-자.
음악.

영화보다 이렇게 문장으로 하나씩 들어설 때, 책의 감성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영화의 영향을 깊이 받았기에 책 속의 많은 장면들이 머리속에서 이미지로 그려졌다. 나는 좀처럼 표정을 읽을 수 없어, 엘라이자의 표정으로 추론했던 그 감정들을 글로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표정으로 가늠하는 것과 글로 그 감정들을 들여다보는 것은 다른 감동을 준다. 그리고 엘라이자가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소리내며 등장하는 말보다 “”없이 묵음으로 마음의 소리를 내비친 표현들이 많아 좋았다. 글을 읽으며 나만 들을 수 있는 생각의 소리, 마음의 소리에 오로지 집중하며 읽을 때 가질 수 있는 순간이 <셰이프 오브 워터>와 가장 잘 어울리는 독서법이었다.

영화는 엘라이자란 인물 자체에 집중을 한다. 하지만 소설에선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선이 다채롭게 그려진다. 그만큼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엘라이자. 스트릭랜드. 데릴라. 자일스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생각과 감정묘사가 두드러진다. 스트릭랜드의 입장이 아니라 그의 아내 입장에서 바라볼때 스트릭랜드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듯.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끌어내는 과정이 영화와 다른 책이 주는 감동 중 하나였다.

두 존재의 사랑. 정말 깊이 있는 사랑. 그 사랑은 불가능해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진짜 사랑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으로 누군가에게는 수단으로 누군가에게는 파국으로 만들고 싶었던 사랑에 얽힌 이야기가 많지만, 이 소설 속에서 절대 놓치지 않는 건. 사랑이 가진 숭고함이다. 그 감정 자체가 가진 숭고함을 넘어서는 그 어떤 중요한 것도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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