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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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 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속은 기분이었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이런 소설이 아니었다. 스웨덴. 북유럽의 무료한 감정을 덤덤히 그려내서, 건조한 느낌이 들지만. 그의 소설은 유머가 넘쳤다. 이야기 전개가 느렸지만 소소하게 미소 지을 부분이 넌지시 내비칠 수 있는 작가, 그가 프레드릭 배크만이었다. <베어타운>은 그의 전작과 완전히 다른 결의 소설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읽었을 때는 동명이인인가 싶을 정도로 다른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프레드릭 배크만이란 작가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내게 선물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속은 기분이라며 읽었지만, 속임을 당하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가 알던 프레드릭 배크만의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하키는 한심하고 별 의미 없는 스포츠다. 우리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거기에 몇 년의 세월을 바친다. 스포츠를 통해 누릴 수 있는 게 이해가 안 될 만큼 사소하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초월을 느끼는 몇 번의 순간들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불사르고 피를 흘리고 울부짖는다.

하지만 그게 아니면 인생에 또 뭐가 있을까.

 

이 책은 어느 작은 소도시 베어타운에서 벌어진 끔찍한 비극을 둘러싼 이야기이자, 하키를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사람들이 서로에게 혹은 스스로가 상처를 주고 또 받은 이야기다. 마을의 희망이자 열망 그 자체였던 존재가 더럽혀진 것이 대한 이야기다. 하키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베어타운은  쇠락해가는 마을이다. 그 저물어가는 마을에 열정을 불어넣는 것이 바로 "하키"다. 모든 것이 용인되고, 승리 앞에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베어타운의 공동체는 정말 끈끈함 그 자체다. 하지만 3월 어느 토요일에 있었던 두 개의 사건이 "베어타운"에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희망은 마을 전체가 느끼고 공유했지만, 절망은 소수의 사람만 느꼈다는 그 사실을 글로 읽어가며 마음이 아팠고, 동시에 서늘해졌다.

 

세상에는 왠지 모르게 상처가 되는 것들이 많다. 불안감은 내면의 인력과도 같아서 영혼을 쪼그라뜨린다.

 

하키가 삶의 전부이자, 살아가는 이유인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잠깐 동안 보험을 판매하며 하키와 멀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그의 삶은 자신의 피를 끓게 만드는 아이스링크장으로 이끌었다. 얼음판에서 서걱이는 소리를 내고 승리에 대한 강한 투지를 불태우며 그는 이 마을의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을 지도하고 있다. 모두가 그에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지만, 그 불가능에 망설임 없이 도전했고, 수많은 고통이 따라왔지만 결국 그는 훌륭한 멤버들을 모았고, 그 멤버들이 팀을 이루는 성과를 냈다. 그리고 최강자 아이스하키 청소년 대표 팀과 경기를 앞두고 있다. 그에게 하키는 삶의 전부였다. "그때 나이가 고작 네 살이었지만 하키는 그에게 완벽한 몰입을 요구할 거라고 지체 없이 선언했다. 그는 그래서 좋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아이스하키는 무료할 수 있는 인생에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 생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것 자체였다. 이 남자의 이름은 페테르다. 하지만 그의 삶에 아이스하키가 전부는 아니었다. 그의 삶에는 아이스하키를 좋아하는 레오와 아이스하키를 사랑하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딸 마야가 있었다. 하키와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베어타운에 머물며, 그는 자신이 온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찾은 행복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3월 어느 토요일 전까지는 말이다.

 

이런 그에게 말도 되지 않는 일이 고작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다. 사건만 두고 본다면 하루에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오간다.


그가 이끈 청소년 대표 팀이 승리한 것이다. 그의 도전이 무모한 도전이 아니었음이 증명되었고, 베어타운에 하키에 대한 사랑과 활력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마을의 스타가 되었고, 승리의 기분 좋은 여운이 마을 곳곳에 스며들었다. 승리만을 바라보았던 학생들은 이길 수 없다고 모두가 생각한 경기에서 승리한 짜릿한 감동을 맛보았다. 문제는 이들이 승리를 했지만, 그 승리를 위해서 훈련받았던 과정에서 용인될 수 없는 폭력적인 생각이 거리낌 없이 오갔다는 것이다. 이기는 방법이자, 이기는 생각이라는 명목하에 굉장히 잔인한 생각이 공유되고 있었다. 이 생각에 어느 정도 공감을 했고, 어느 정도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술과 폭력, 섹스와 같은 단어가 거칠게 오가던 아이스하키팀의 에이스가 결코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저지르고 만다.

 

가해자에게 성폭행은 몇 분이면 끝나는 행위다. 피해자에게는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이다.

 

이 두 문장이 함축하고 있는 폭력이 벌어지고 만다. 그리고 피해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바로 내지 못한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왜냐면 여긴 빌어먹을 하키 타운이니까."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수치심과 분노 그리고 무력감과 고통을 느끼지만 이를 말할 수 없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 하키팀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고, 많은 사람들은 자신보다 가해자인 하키 선수의 편이란 걸 열다섯 살 소녀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야가 겪었던 일은 머리로 넘길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넘겨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칠 틈도 없이 마야의 마음과 영혼을 순간순간 파고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 밤 이 아이가 빼앗긴 수많은 것들 중에는 절대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는 공간도 있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그런 공간이 있지만 도둑맞으면 다시 되찾지 못한다. 마야는 앞으로 모든 곳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이 문장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이 문장은 베어타운에 살고 있던 마야에게 현실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일주일간 견디려 몸부림쳤던 마야는 결국 입을 연다. 눈을 감고서 입을 열고 말을 한다. 하기 쉽지 않았던 그 모든 것을 전부 이야기한다. 자신의 딸이 겪은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을 듣고 페테르의 삶은 달라진다. 하키를 정말 사랑했고, 베어타운을 아꼈던 그의 생각에 균열이 일어난다. 아니 시작은 마야에게서 시작했고, 그 균열이 서서히 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으로 파고든다.

 

그들은 적을 원했다. 이제 적이 생겼다. 그런데 그들은 딸아이의 곁을 지켜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녀를 해친 사람을 추격하러 나서야 하는 건지, 그녀가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건지 아니면 책임지고 적의 숨통을 끊어야 하는 건지, 그 둘이 같은 게 아닌 이상 알 수가 없다. 증오가 그 반대말보다 훨씬 더 쉽다.

부모들의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교차적으로 서술했기에 <베어타운>은 인물 소개를 꼭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헷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은 어렵지 않으나 많은 사람의 생각과 이야기가 거의 같은 밀도와 비중을 가지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완료되지 않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이스하키 팀의 승리 그리고 그들에 대한 영웅 대접에서 마야가 당한 끔찍한 폭력 그리고 이 폭력을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이중적 태도들까지. 그 생각을 드러내는 와중에 오가는 사람들의 많은 말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바로 아래 문장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회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 사회에서 허용하는 대로 하지."

 

<베어타운>이야기를 정통으로 관통하고 있는 이 메시지는 무섭고 서늘함을 안겨준다. 그리고 이 일이 베어타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베크만은 그것이 옳은지 나쁜지 그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던지고 그는 문제만을 정확하게 말한 뒤 글 속으로 자신의 모습을 감추었다. 역시, 실망을 안겨주지 않는 작가였다.

 

 

이 소설은 포근한 표지와 달리 서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커다란 사회 문제로 이 소설을 읽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내가 저지른 잘못을 좀처럼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 탓하는 게 익숙했던 사람들이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다. 좋은 소설은 어떤 각도에서 어느 정도 밝기로 비추었을 때도 그 가치가 고스란히 나타나는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 주제의식이 커다랗기도 하고 동시에 작은 것이기도 해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각과 각도로 글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처럼 강렬한 조명을 받을 때도 빛나고, 은은한 스탠드 속에서도 그 가치를 내는 소설. 표현하기 어렵지만, <베어타운>은 좋은 소설이었다. 프레드릭 베크만이 유머러스한 작가만이 아니라 이렇게 멋진 소설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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