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희의 밥과 숨
문성희 지음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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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먹는다.
나이를 먹는다.

 

나이와 음식에 "먹다"라는 동사를 붙은 이유는 두 가지 다 나의 존재 속에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이다. 어딘지 명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그냥 흘러가지 않고 내 몸속에, 내 마음속에 분명히 남는다. 그렇기에 음식을. 나이를. 잘 먹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먹는 것 가운데 하나를 제대로 먹기도 쉽지 않다.

 

《문성희의 밥과 숨》은 먹기와 숨쉬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 참 많지만, "진짜 중요한 것"만 남기고 소거해나가면 "먹기"와 "숨쉬기"만 남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저자의 글들을 읽다 보면,  음식을 잘 먹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를 잘 먹은 사람의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먹는 것과 이를 만드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치열하게 고찰했던 저자의 삶 자체가 글 속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글에 시간의 흐름이 오랜 고목의 나이테 같은 고아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 당연함이 소중해진 때이기에, 《문성희의 밥과 숨》 속 글을 읽는 시간은 즐거웠다.

 

"먹는 목적을 오직 존재함에 맞추면 삶이 정렬되고 가벼워진다.
가벼워진 공간 사이로 스며드는 영혼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은 참으로 달콤하다."

 

나의 숨결을 헤아리고 한 그릇의 밥을 먹는 걸 실천하는 것이 '절제'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인, 저자는 먹는 것 하나하나를 남다르게 들여다본다. 그 하나하나가 나를 만드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재료 하나하나를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요리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조리하고 반찬 없이 밥을 먹을수록 커지는 사유의 힘"을 얻는 즐거움이 컸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먹을 때 느끼는 즐거움도 크지만 음식을 통해 나의 존재를 들여다볼 때 느끼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 주는 즐거움도 그에 못지않게 컸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100% 동의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즐거움이 무엇인지 더 알아보고 싶어졌다.
 
"아무쪼록 너희들이 내 몸속에 들어와 세포를 이룰 때 나의 욕망이나 에고가 개입되지 않기를. 너희들의 본성인 사랑의 빛을 가리지 않기를. 그렇게 너희의 죽음이 보람되기를"

 

먹을 때 느끼는 즐거움을 뒤로하고, "진정으로 존재하는 때에 느끼는 즐거움"이 삶의 종심이 된 과정이 어땠는지 말이다.

 

"전복은 솔로 박박 문질러 씻은 뒤 내장을 따로 떼어내 모아서 오분자기와 함께 젓갈을 담글 때 쓰고, 전복 등에 사선으로 잔 칼금을 넣어 비슷한 방법으로 손질한 갑오징어와 대하를 김 오른 찜 솥에 살짝 익혀낸 다음 졸아든 산적 국물을 솔로 발라가며 석쇠에 구운 이들의 맛은 특별했다."

 

역시, 저자도 쉽지 않았다. 고기를 포기하는 것이 쉬웠다는 말에 미간이 살짝 움직였다. 그 뒤에 어패류를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맛깔스럽게 설명한 문장을 읽으며, 저자 역시 보통의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아니, 어쩌면 보통 사람들이 "삶의 희열"을 느끼기 위해 음식을 내려놓기보다 더 힘든 과정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연구가였던 저자에게 "맛있는 음식"은 일반 사람들 보다 더 놓을 수 없는 가치였을 것이다. 자신의 요리 철학이 대다수의 요리사들이 가지고 있던 패러다임과 조금 다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음식을 만드는 것과 "맛"은 분리할 수 없는 그 자체처럼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맛'이 주는 즐거움을 위해 수많은 요리 과정을 거치는 점과 우리 삶이 닮아 있음을 발견한다. 행복이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너무 많은 관계를 맺는 데, 장작 그 속에서 나의 행복은 멀리 달아나버린다. 혹은 순간순간 조금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가볍고 단순한 살아가는 순간이 주는 희열"을 잃어버리게 된다. 저자는 요리에서 이 깨달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음식 과정을 단순화하고 재료 자체에 집중하면서 "본연의 삶이 주는 즐거움"에 오로지 집중한다. 그렇기에 이는 인내, 수행, 절제가 아니라 삶 그 자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러한 삶을 선택하도록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지금의 내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삶을 살아내면서 얻은 힘이 나머지 생을 살아가는 데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뿐이다.

 

그렇다면 그 깨달음을 저자가 얻을 수 있도록 삶의 방향을 틀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 계기에 대해 어렴풋 가늠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죽음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 듯싶다. 젊은 시절 저자가 겪었던 인생의 고락은 저자가 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아프고 슬픈 과정"이었다. 음식의 묘사와 달리 감정으로 남은 기억을 옅게 스케치하듯 쓴 글이 "슬픔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시금 삶의 자리로 돌아오기로 결단한 저자는, 오늘의 삶까지 이어오게 되었다.

 

"인생은 마라톤이야. 빨리 달리는 것보다 완주하는 것이 더 중요해. 사람들에겐 각자의 속도가 있는 법이란다. 엄마도 늘민하다(어리석다), 늦되다, 뒤숭스럽다(야무지지 못하다)는 말을 들어왔지만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있잖니. 슬픈 일이 있더라도 너무 심각할 필요는 없단다. 좋은 일이 있어도 너무 몰입되지는 말거라. 이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야. 신발 끈을 단단히 묶고 달리되 초반에 너무 많이 힘을 쏟지는 말거라. 지치지 않고 완주하려면 속도를 조절하고 자기 자신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단다."

 

하지만 저자는 한 개인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부모였고, 엄마였다. 슬픔에 젖어 다시 열심히 살기로 결심했지만 그 방식이 보통 사람들과 전혀 달랐다. 이를 어린 딸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저자도, 딸도 쉽지 않은 시간을 지나왔을 것이다. 그 시간 속에서 저자는 슬픔 이후의 삶을 살아갈 힘을 얻었고,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지만, 딸도 그 시간 동안 엄마와 비슷하면서 다른 무언가를 얻은 것 같다. <디 아워스 The Hours>를 보고,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어."라고 하는 말과 엄마의 지난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에, "고군분투하느라 수고했어, 우리 엄마."라는 말속에서 "그 무언가"가 전해졌다. 그리고 그런 딸에게 삶 전체를 통해서 얻은 것을 고스란히 전하는 저자의 마음에 내 마음이 덩달아 따뜻해졌다.

 

요리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따라가다 보면, 배가 고플 수밖에 없다.
그때 만들어 먹으면 좋을 음식 20가지가 책 뒤에 나온다. "몸의 해독과 마음의 휴식을 위한 문성희의 죽 10가지"와 "오감을 깨우고 영양도 풍부한 김솔의 혼밥요리 10가지"다. 맛있는 음식을 놓을 수 없는 난 조금 더 맛있어 보이는 김솔의 혼밥요리가 더 좋아 보였다.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역시 책 한 권으로 생각을 바꾼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나와 같은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꽤 길게 단순하게 먹는 삶에 대해 글로 읽었으면서, 바로 맛있는 걸 찾는 그 모순을 말이다. 그렇다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 하나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20가지 요리법이 책에 함께 있다. 맛있는 묘사에 고픈 배를 채우는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문성희의 밥과 숨》 속에 짙게 담긴 있는 생각을 실천해보길 바라는 의도가 담긴 요리법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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