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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평점 :
누군가의 걸음을
따라서

좋았다.
이상한데, 알 수 없는데
좋았다.
『왕국』은 신기한 소설이었다. 이야기가
읽다 보면, 낯설게 어느 순간 훅 들어가는 묘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었다. 주인공 카레르는 작가다. 그리고 동시에 기독교인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이었다. 그의 종교성은 그의 글이 이리저리 휘둘리듯 움직이듯 움직인다. 종교에 거리를 두지만, 그가 둔 거리를 한순간에 가까이 끌어당기듯
다시 그 곁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마치 조시마 장로가 한순간 기독교에 귀의했듯이, 카레르도 어느 순간에 훅 기독교의 인의 삶으로 들어간다. 그의
계기는 더 이상 작가로 삶을 살 수 없는 순간에 직면했다고 느꼈고 그 임계치에서 그는 자신이 존경하는 "대모"의 인도로 기독교의 세계로
들어간다. 성경을 묵상할 뿐만 아니라, 교회의 예배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이때 태어난 아들의 이름까지 종교성이 짙은 이름으로 택했다. 아들의
이름이 이러할 정도이니, 그가 결혼을 결혼식을 한 것은 당연할 것이다. 정말 마치 기독교인으로 삶을 "신실하게" 살았다. 이렇게 신실하게 종교에
깊이 심취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과거에 내가
신앙인으로서 가봤던 이 길을, 이제는 소설가로서 가봐야 할 것인가? 아니면 역사가로서? 난 아직은 알 수 없다. 명확히 선을 긋고 싶지는 않다.
타이틀은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일종의
조사원이라고 해두자.
하지만 이대로, 영원할 줄 알았던
카레르의 삶은 어느 순간 종교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는 기독교에서 스스로 멀어져 있다고 믿지만. 그의 삶
주변에 기독교가 가까이 있기에 삶의 영역으로 들어올 여지가 있다. 그리고 그 여지는 "글"이 되어 나타난다. "작가"로 삶을 살아가는 카레르에게
어쩌면 그 어느 순간 당면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자신의 경험이 대부분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의 글은 나의 생각을 번번이 빗나갔고,
그의 글은 역사 다큐멘터리 혹은 재연 다큐멘터리를 따라가는 것 같았다. 그만큼 그의 글에는 흡입력이 있었다. 처음에 맨 처음 그가 기독교의
세계에 빠져들었을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작가로서 모든 것을 상실했을 때 그가 위로받았던 감정의 조각들이 엮어진 글들과 달리. 이때의
글에는 지난날의 기억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또 다른 감정을 일으키는 것에 솔직하게 글을 작성한다. 그 솔직함이 글 자체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초기 기독교의 모습을 글로 상세히 묘사한다. 마치 그의 글이 고고학자의 붓처럼. 섬세하게 글이 지나간 자리에 바오로(바울)와
루카(누가)가 지나간 자리가 만든 흔적이 하나둘 나타난다. 내가 성경책에서만 보았기에,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말이다.
카레르는 두 사람 가운데 루카에게
끌린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의사였다. 그 사실 외에 거의 밝혀진 바가 거의 없지만. 사울에서 바울로 거듭난 하나의 스토리를 가진 바오로가 아닌
루카에게 끌린 이유가 처음엔 와닿지 않았다. 그는 작가이기에 아마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바오로에게 본능적으로 끌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루카의 이야기가 궁금한 것이 아닐까. 바오르와 동행하며 그의 주치의로 기독교 전파의 여정을 함께한
루카는 과연 바오로와 어땠을까? 루카가 왜 바오로에게 끌렸을까. 그는 단지 루카의 삶을 밝혀내거나 재구성하고 싶어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그는 철저히 그들의 삶에서 멀리 떨어져 관찰을 했을 것이다. 루카의 삶에 카레르는 자신을 동일시한다. 시간의 거리가 있지만,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의 함을 가지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1세기가 그 어떤 시대보다 종말론적 믿음들로 요동쳤던 때였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까? 이스라엘은 아마도 그랬을 거였다. 하지만 제국이 그
힘이나 안정성에 있어서 절정에 달해 있던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는 루카 같은 사람이 속해 있던 세계에서는?
나는 잘
모르겠다.
작가의 생각을 따라서. 그의 생각이
의도한 바를 따라가며 느꼈던 궁금증은. 왜 루카가 기독교의 성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누가복음"이라는 사복음서 가운데 하나를 작성한
것일까.라는 질문들이었다. 성서를 작성한 사람들은 보통 남다른 삶을 살았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신약이 아니라 구약만 보아도. "모세",
"여호수아", "다윗 왕", "솔로몬 왕" "수많은 예언자들"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남다른 삶을 살아왔고 그 과정 중에 자신과 신의 마주침을
글로 작성해냈다. 카레르는 "루카가 기독교를 믿게 된 한 명의 신자이자 예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당대에 이를 증거하는 증인이었다.
동시에 그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었고, 동시에 당대의 일을 가까이서 관찰했던 관찰자였다. 카레르는 소설가인 자신의 삶을 당대의 일을 관찰한
것을 기록으로 남긴 루카의 행동과 일치 시킨다. 그 이유는 루카가 단지 신앙을 따르거나 종교적 측면에서 맹신하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루카가 의사였고, 동시에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의 삶을 추적하며 그가 다양한 초기 기독교의 기록물을 통해 자신의 글을
완성한다. 이 점이 중요하다. 루카는 당시에 많이 배운 사람이었고, 글에 자신의 삶이 묻어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카레스는 누가복음이 다른
글보다 "세련되었고, 완성도가 높다"라고 평가한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카레스는 그의 글 속에 루카의 고유한 관점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재미있는 점은 그 모든 걸 2천 년의 시간을 넘어서 한 사람의 글 속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의 거리를 "간격"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간격내에 축적된 다양한 관점과 자료를 통해 “더 많은 시점”으로 이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루카가 하나의 관점을 가지고
들여다보았지만 다양한 자료를 참고하여 "객관성"을 견지한 자신의 글을 완성했듯이 말이다. 카레르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장이 가지는 위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조사원"이었다. 그런데 중간중간 루카의 삶과 자신의 삶을 동일시 한 점은 흥미롭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은사들은 아주 좋은
것이긴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단 하나의 은사, 다른 모든 은사들을 뛰어넘는 은사는 그가 아가페라고 부르는 은사라는 거였다.
처음에 『왕국』을 읽으며 기대했던 것인
기독교가 왜 313년에 공인받을 수 있었을까. 그렇게 많은 박해를 받았으면서. 어떻게 로마인들의 삶 속에 깊이 자리할 수 있었을까.라는
점이었다. 다신교 사회에 살았던 사람들 마음에 무엇을 움직인 것일까. 그 사실을 『왕국』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물론 이에 대해 저자는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기독교가 그 당대에 얼마나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으로 "소망"으로
그리고 "사랑(아가페)"으로 존재하는 그 실체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낸다. 교회에 나가서 카레르처럼 종교에 어느 순간이 심취했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무언가. 그리고 그다음에 느끼는 "공허함"이 주는 것을 자신의 사례를 통해 말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삶의 전반에서 반복된다는 점이다.
카레르는 성체를 받을 정도로 기독교를 진심으로 믿었다. 성당에서 느낀 말로 다할 수 없는 무언가를 그는 느꼈다. 하지만 그 깨달음은 순간이었고
그 이후로 순간순간에 그는 "회의감"을 느꼈고 그 과정을 루카에게서도 찾을 수 있었다. 믿음의 순간과 그 이후에 오는 내적 고민이 말이다. 이를
포착해난 카레르는 그의 인간적 면모에서 자신가 닮은 모습을 보인다. 단지, 교리적으로 종교적으로 하나의 믿음만으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삶의
순간에서 개인이 마주할 수 있는 감정과의 충돌을 포괄했던 점이 좋았다. 그리고 그 충돌에서 놓치지 않았던 것. 끊임없이 마음에 작은 감정의 불을
켜고 있었던 건 "사랑"이라는 점이 진부하게 보일 수 있지만 진부하지 않았다.
이미 다 읽은지 시간이 되었지만 내가
『왕국』을 제대로 읽고 있는 건지. 읽은 건지 의심스러웠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 정말
많아서 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읽고 나서, 재미있다는 걸 느꼈으니. 좋았다는 감정을 느꼈으니 좋은 게 아닐까 싶다.
무언가 확정적으로 무엇을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가 "나는 모르겠다"라고 미지로 남긴 말 하나 때문이 아닐까? 사실 그건 핑계다! 그가 이 마지막 문장으로 이 장대한 이야기의
마침표를 남겨서 좋았다. 『왕국』과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마지막이 주는 여운을 카레르처럼 솔직하게 남길 마음과
글솜씨가 나에게 부족하기에. 그의 문장에 기대에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