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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서동욱 지음 / 김영사 / 2024년 1월
평점 :
<차이와 타자>, <일상의 모험>, <차이와 반복의 사상>, <들뢰즈의 철학>, <타자철학> 등 주로 프랑스 현대철학의 영역에서 신뢰감 있고 무게감 있는 중요한 저작을 산출해 온 들뢰즈 전문가인 철학자 서동욱이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라는 호기심 불러일으키는 제목의 에세이 집을 냈다. 다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로는 2016년에 나온 <생활의 사상>(민음사) 이후 7년 만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도 한 저자의 이력이 말해주듯 그의 글은 아름답고 섬세하면서도 정치하고 논리적이다. 그의 글이 가지고 있는 현란함은 내용 없는 현란함이 아니고, 그가 구사하는 비유는 너무도 적실해서 아귀가 꼭 들어맞는 느낌을 준다. 다만 때때로 지나친 인용이-그 인용이 꼭 필요하고 적절하다고 하더라도- 독서를 조금 방해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인간은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더우면 반팔을 입고, 추우면 패딩을 꺼내 입는다. 삼복더위에는 에어컨을 틀고, 엄동설한에는 난방을 한다. 날씨가 화창하면 기분이 좋고, 날씨가 우중충하면 기분도 가라앉는다. 더운 날에는 입맛도 없고, 가을에는 입맛이 돈다. 덥고 습한 날에는 콩국수나 냉면을 찾고, 비가 오는 날에는 파전이 생각난다. 이렇게 날씨는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의/식/주)에 영향을 미친다. 더 나아가 날씨는 물질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차원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독일에서 철학이 은성했던 것은 날씨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 그냥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얼마나 염세적인가. 북구의 키에르케고르의 철학과 체코의 카프카의 소설은 또 어떠한가. 하이데거의 철학에서는 폭풍우가 치고 눈이 내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저자는 반대 방향에서 질문을 한번 던져 보자는 것이다. "날씨가 만드는 사상이 아니라 날씨를 만드는 사상은 없는가?"(7쪽) 날씨의 영향 하에서 우리의 기분은 형성되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외부적 조건의 압력 아래서 삶은 짓눌리고,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우리 삶의 모양이 만들어진다. 우리 삶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모종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변화는 어디서 오고, 어떻게 시작되는가. "진정 모든 변화는 생각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생각의 눈은 삶에서 어디에 햇살이 깃들고 어디에 반가운 여름비가 오는지 찾아주어야 한다. 삶의 구석구석을 응시하면서 말이다. 삶의 햇살을 찾아주는 것도, 가뭄 속에 간직된 비 향기를 기억해 내는 것도 생각의 노력에서 시작한다."(9-10쪽)
그래서 저자는 생각의 눈으로 우리 삶 구석구석을 응시하고 조망한다. 플라톤의 <향연>, 밀란 쿤데라의 <불멸>, 스피노자를 통해 바람직한 남녀관계를 사유하고,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고양이와 강아지, 즉 동물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고민해 보며, 차별과 배제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이 시기에 희생양 없는 사회("희생양은 더 이상 문명의 일부여서는 안 되고, 계몽의 칼날이 사회로부터 추방해야만 하는 것이다")를 꿈꾸기도 한다. 또 '소년○○' 식의 이름을 가진 신문에서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적 불평등 문제에 대한 고민의 일단을 드러내기도 하고, 인간 주체가 탄생한 근대라는 한 시기와 AI 혁명의 시대의 한가운데 들어서 있는 현실("인간계는 풍비박산이 났다")에 대해 숙고하기도 한다.
나이를 점점 먹고 있기도 하고, 매일같이 시간의 속박에 괴로워하고 있기에 그렇겠지만, 이 책에 실린 에서이 중 내가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글은 <느려질 권리>(245-251쪽)와 <나이드는 인간을 취한 철학>(291-299쪽)이다.
"우리가 태어나면 시간은 품삯을 잘 받은 유모인 듯 냉큼 우리를 품에 받아 양육하기 시작한다. 아침과 낮을 보내고 저녁놀을 바라보듯 하루하루와 이별하면, 게임기에 더 집어넣을 동전이 없는 토요일 밤처럼 어느 날 우리는 지상의 오락실에서 일어선다."(245쪽) 아름답고 쓸쓸하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우리 삶의 모습이다. 우리 삶은 시간이 지배한다.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긴다. 시간에 구속되어 있는 자에게 시간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하이데거에 따르면, "'자기'를 잃어버리며 결단 내리지 않는 자는 거기에서 '자기의 시간을 잃는다.' 그러므로 그에게 맞는 전형적인 말은 '시간이 없다'이다."(248쪽) 저자는 느리게 실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문제가 아닐까라고 묻는다.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시간을 빼앗긴 자들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 주는 것이다. "결국 정치적 싸움이란 느려질 권리를 얻는 문제이다."(251쪽)
인간은 평생 의미를 추구하며 살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인생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이렇게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 나이 드는 자에게는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들뢰즈-"나이 드는 자는 소진된 자이다."). 그런데 저자는 나이 듦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제 타인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298쪽) 그리하여 "이제 가능성은 타인의 가능성"이고, "나이 든다는 것은 나의 시간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낼 시간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기회를 얻었다는 뜻일지 모른다."(298쪽) 시간에 조금 더 당당하게 맞설 용기가 생긴다. "인간은 수전노처럼 자신만의 시간을 마지막 동전처럼 움켜잡고 홀로 죽지 않는다. 타인이 누릴 미래를 자기의 미래처럼 돌보기에 인간에 시간은 무한한 것이다. 이웃에서 이웃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미래는 불멸의 고리를 만들며 전진한다."(299쪽)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빛을 비춰주는 문장이 아닌가.
이 책의 에필로그 <쓰다듬는 손길>은 철학으로, 생각으로 날씨를 바꾸기 위해 인간과 삶의 곳곳을 응시하던 저자의 시건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이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생각만으로 날씨를 바꾸지는 못 한다. 삶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날씨를 바꾸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렇다면 날씨를 바꾸기 위해 철학(생각)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다. "그렇게 나는 네 손을, 아니 지구를 하나 쥐고 있었고, 두 손이 잠시 피해 있던 외투 주머니 속에선 별자리들이 어지럽게 움직이며 모든 것이 무사할 것이라 말하듯 날씨가 바뀌었다. 하나의 손이 또 다른 손에게 다가가 네가 나의 전부라며 가만히 안아줄 때."(327쪽) 아름답고, 뭉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