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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 - 現代 韓國의 自生理論 20
교수신문 엮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2000년 1학기 '철학원론' 강의시간에 한국철학이란 무엇이며 도대체 한국철학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를 주제로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과제를 받은 적이 있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지니는 보편성과 '한국'이 지니는 특수성 혹은 지역성이라는 외견상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개념 사이의 충돌에 대해 숙고해 보라는 뜻이었을 터이다. 두가지 가능한 답이 있을 것이다. 둘을 조화롭게 공존시키거나 아니면 그 충돌을 끝간데 없이 밀어 붙여 둘 중 하나를 파산시키는 것이다.(이 경우 대부분 철학의 보편성을 포기할 것이다.) 전자는 지극히 뻔한 답이 될테고, 후자는 현시대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결여한 미숙한 답이 될 것이다.
나는 물론 전자를 선택했다. 사회의 운영체제가 서구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회의 운동을 이해하려면 서구적 인식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또 굳이 '철학'과 '한국'을 대립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의 사유틀이 한국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요하다면 가져다 쓰면 되기 때문이다. 철학도 여타 학문이나 예술처럼 그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특수한 현상이나 상황의 반응으로 생성된 것이며, 그와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 있다면 서구철학의 적용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이렇게 보면 4년 전의 저 문제는 결코 좋은 문제는 아니었다. 한국의 전통적 사유의 중압과 서구학문에 대한 어떤 콤플렉스 사이에 끼여서 내지른 자그마한 비명에 불과한 것이었을 뿐이다.
<오늘의 우리 이론 어디로 가는가>에 실린 20개의 우리 이론도 역시 이 두 힘의 압력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통사유와 서구이론의 배합 정도에 따라 이 둘을 각각 한 극점으로 하는 이론의 수직선 위에 이 20개의 이론이 배치된다. 좋은 이론과 나쁜 이론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물론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이론은 이 두 힘이 가하는 압력을 뚫고 나온다. 그렇다면 이 돌파력을 어디서 얻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제문제에 대한 설명력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 대한 뛰어난 설명력을 갖는 이론이 결국 '좋은 우리이론'이 될 수 있다. '이론'을 협소하게 정의해서 어떤 일관된 체계, 창조적 개념어를 이론의 필수요건으로 내세운다면 이 책에서 꼽은 20개 중 어느 것도 이론이 되기는 어렵다. 체계가 다소 엉성하고 개념어를 빌려 왔다고 하더라도 그 이론이 한 시대를 이해하는 훌륭한 지침이 되었다면, 좋은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요즘 학계 일각에서는 우리말로 학문하기 운동의 움직임이 있는데,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다지 생산적인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체계는 서구의 것인데, 개념이 우리의 것이라면(그럴수도 없지만) 이 둘의 엇박자가 만드는 불협화음이 듣기가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구의 개념, 서구의 체계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창조적인 재생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개념의 내용을 불리고 체계를 변용시킴으로써 말이다. (서양의 것이든 동양의 것이든)사상과 철학에 독창적인 것이 얼마나 있을 것인가. 우리 것에 대한 강박, 서구에 대한 콤플렉스, 독창성에 대한 집착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