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달라도 괜찮아 - 완벽한 세상에 맞선 두 엄마의 명랑 푸르메 책꽂이 4
지나 갤러거.퍼트리샤 컨조이언 지음, 전미영 옮김 / 부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옅은 분홍색 바탕에 가면을 쓴 두 아이가 찍힌 느낌있는 흑백사진, 이에 어울리는 서체, <조금 달라도 괜찮아>의 표지는 밝고 예뻐서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표지만 예쁜 '인테리어용' 책은 아니다. 저자들은 시종일관 명랑한 문체를 선보이며 유머를 잃지 않기에 한 번 책을 읽기 시작한 독자들은 책을 쉽게 내려 놓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다루는 주제는? 긍정적인 표지와 저자들의 긍정적 마인드로 미루어 봐, 요즘 대형서점에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수 많은 '할 수 있다!' 정신을 전수하는 유형의 책일까? 그렇지 않다. 반대로 저자들의 명랑함과 예쁜 책표지 뒤에는 '심각한 무엇'이 숨어 있다. 그 '심각한 것'이란 어쩌면 심각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숨겨둔 것', '심각한 무엇', '책의 주제' ㅡ <조금 달라도 괜찮아>는 양극성장애(조울증)와 야스퍼거증후군(자폐증)으로 인해 장애 판정을 받은 두 딸을 키우는 두 엄마가 쓴 자신들의 이야기다. 물론 그녀들도 장애인 자녀를 둔 여느 부모처럼 매일같이 심각하게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들은 결국 눈물을 그치고 세상에 명랑하게 말을 걸기에 이른다. 바로 이렇게 눈물이 필요없어지는 과정이 이 책에 자세히 담겨 있다. 그 과정, 궁금하지 않은가?

 

 

'완벽하지 않은 자는 차별받아야 마땅하다'

우리는 장애인이 사회적 배제의 일차적인 대상이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저자들의 말처럼 "장애의 종류는 문제가 아니다"(p76) 장애가 있다는 것 자체는 인간 사회에서 지나친 단점으로, 인간 실격의 사유로 작용한다. 불행하게도 귀여운 두 딸 제니퍼와 케이티가 그렇듯 장애인들은 자기만의 방에 홀로 평생을 살지 않는 한 자신들을 의식하는 사회적인 시선으로 인해 자신의 장애를, 그에 대한 인식을 인지할 수 밖에 없다(이러한 불편한 시선으로 인해 장애인들은 자기 스스로 어두운 부분으로 숨기 일쑤다).

 

제니퍼와 케이티는 일반 학생들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사회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나 억압과 차별과의 만남이었다. 학교는 끊임없이 이 아이들을 정상/비정상의 범주에서 후자로 다루었다. 특히 자폐증으로 인한 손 펄럭거림 증세가 있는 케이티의 기괴한 신체에는 계속적으로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따라붙었다. 결국 케이티와 지나는 장애로 인해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거의 모든 학교에서는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만 여전히도 '장애'라는 차이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공고한 것이었다.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도 장애에 대한 차별은 공고하기에, 그간 사회 구성원들은 자기 또는 가족의 장애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때문에 이들은 이 책에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장애인 또는 장애인의 가족을 위한 책일까? '장애 자녀'를 두지도 않았고 '장애'를 갖고 태어난 사람과 가까웠던 적이 없던 나에게 이 책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자들은 이를 넘어서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자신이 장애와는 별반 관계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까지도 이 책의 저자가 되게끔 만든다. 

먼저 그녀들은 우리 모두를 가로지르는 장애의 요소를 폭로하는데 그것은 우리 안의 완벽주의다.

 

"우리는 완벽함에 집착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완벽한 집에 사는 사람, 완벽한 배우자를 만난 사람, 완벽한 몸을 가진 사람, 무엇보다 완벽한 자녀를 둔 사람을 찬미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ㅡ 이런 기준으로 점수를 매긴다면 우리 자매는 0.000점일 것이다."(19p)

 

나도 0.000점이리라. 이 완벽함에 집착하는 사회의 사람들은 모든 것이 완벽한, 그야말로 '이상적인' 모델에 근접한 것에만 남다른 애착을 느낀다. 이러한 이상적인 모델은 세상 모든 것의 기준이 되어 이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을 '장애'가 있다고 판단하기 위한 참고자료가 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외모지상주의의 폐해를 떠올려 보자. 모든 사람이 거의 동일한 기준의 외모를 선망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그 이상적인 외모를 바라보며 그에 부합하지 않는 자기의 장애적인 외모 또한 발견하게 된다. 이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성형수술도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완벽에 대한 집착이 심해지면 중증 장애를 낳기도 하는데 그것이 결국 완벽해지는 길이 아니라 자기 파괴의 길이 되고 마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물론 완벽에 근접한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완벽이라는 지위를 누릴 수 있는 특권층은 언제나 극소수였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도 완벽해지지 못해 고통받는다. 사회는 오늘도 여전히 너 자신이 이상적인 모델이 되라고 부추기기만 한다.

 

우리는 그러한 부추김을 TV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창 유행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경우가 특히 그러하다. 그 프로그램들에서도 역시 인기를 얻고 '1등'을 할 수 있는 참가자의 수는 한정되어 있기에 대부분의 함량미달의 참가자들은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자들은 한결같이 패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위로 상승하기만을 기대한다. 그래서 일부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불행(대체로 자신의 불우한 처지)으로 심사위원들과 시청자들에게 구걸하는 기이한 경우까지 생겨나는데 제작진은 이를 편집하여 '감동 스토리'로 재탄생시켜 시청률을 끌어올리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이 처음에는 우연이었을지 모르지만 결국 개인의 불행은 경쟁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박권일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비참함을 자발적으로 전시하고 경쟁하게 만드는 체제란 얼마나 혐오스러운가. 불행을 경쟁하고 시혜를 구걸하게 만드는 체제는 존속할 가치가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아무튼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교훈은 '너의 장애는 이것이것이것이것이것이다. 고로 너는 완벽과는 거리가 멀기에 차별받아 마땅하다!'이다. 이는 사람을 평가대에 올려 놓고 자기들만의 기준(대부분 편협한 고정관념 일 뿐!)으로 잔인하게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거울상이다.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는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장애인이다.

우리 안의 완벽주의는 결국 우리 자신을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완벽집착증이 존엄한 삶을 보상받기 위한 관습이 되었기에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저항하기 힘들다는 것 역시 몹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퍼트리샤는 제니퍼에게 "(너로 인해)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되었어"라고 말한다. 이는 완벽주의 사회를 배반하는 진술이다. 과연 그녀는 어떻게 이러한 진술에 이르게 된 것일까?

 

 

우리에게 필요한 세상

우리 사회는 장애에 대해서 철저히 차별을 해왔기에 '장애=불행'이라는 도식 또한 우리에게 내면화 되었다. 실제로 장애인은 불행하다. 불행할 수밖에 없다. 일반인은 기괴한 신체나 몸 동작, 특이한 사고를 지닌 장애인들과 대면하게 되면 자신에게 피해를 입힐까 노심초사하며 피하고 보지만, 이들의 피해의식과는 달리 사실 가장 큰 피해자는 장애인이다. 이러한 편견과 그에 따른 처분으로 인해 장애인은 슬픔, 절망, 외로움, 고통, 우울, 불안, 두려움과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철저하게 약자인, 정상적이지 못한 장애인의 고통은 은폐되기 일쑤라는 불편한 사실.

 

이때 두 저자의 기획은 일단은 장애인에 대한 문제를 '드러내기' 위한 시도이다. 나아가 편견으로 점철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으려는 시도까지 진행한다.

 

이를 위해 그녀들은 먼저 '완벽주의'라는 허상을 그들 특유의 수다스러움으로 까발린다. 서류 상의 장애인들과는 반대인 '정상인'들 또한 완벽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평생 박탈감을 안고 사는 장애인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즉 같은 장애인 혹은 같은 정상인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통찰은 장애와 낙인에 대한 통찰력 있는 연구를 보여 준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의 의견과 맞닿는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장애만을 장애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편견에 불과할 뿐, 우리 모두 나름대로의 말 못할 비밀을 안고 살아간다. 그것이 하나의 낙인이 되어 각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장애를 갖고 사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내 나름대로의 말 못할 비밀을 안고 있는 나도 장애인이었던 것이다.

완전함에 대한 애착은 역설적으로 소외를 낳는다. 즉 완전함과 소외는 샴쌍둥이다. 따라서 완벽주의를 사랑하는 한 우리에게 남아있는 선택지는 '자발적 배제'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은 자신들이 만든 사회를 수정할 수도 있다는 것. 우리는 자기소외에 이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시금 차이에 대한 차별이 아닌 차이에 대한 사랑을 선택해야 한다. 단연 저자들은 우여곡절 끝에 차이에 대한 사랑을 선택했다. 사랑에 의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별이 무익해 지는 지점에 상호존중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있는 법이다.

 

 

실용적인 정보까지

이 책은 나의 딱딱한 글과는 달리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넘친다(스포일러는 주의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다른 독자를 존중한다). 또한 장애 아동을 둔 부모에게 유용한 정보들도 사이사이에 들어있다. 예컨대 이러한 것들이 있다: 자폐증 및 아스퍼거 증후군의 징후(70p), 아이에게 장애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157p), 교사와의 면담 준비하기(188p), 아이에게 맞는 임상 심리사 찾기(236p) 등등.

 

이외에도 저자들은 자신들과 만난 다른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소개하며 우리가 장애에 대해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우리는 자연스레 AD/HD, 양극성 장애, 간질 등 수 없이 많은 장애의 유형에 대해 알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 행복하다

 

"왜 제 딸에게 이런 장애를 주셨나요? 왜? 왜 그 애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드시나요? 왜 제게 이런 고통을 안기시나요? 이런 일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저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고요. 나는 못해요!"

이러한 지나의 절규처럼 저자들도 원래는 자녀의 장애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결국 그녀들은 딸과의 만남-장애와의 만남을 통해 변화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녀들은 딸들이 자기들을 가르쳤다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아이러니 그 자체다. 마땅히 부모인 우리가 딸들을 가르치고 훌륭하게 자라도록 이끌어야 하련만, 사실은 딸들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우리가 인간적으로 성장하도록 도왔다. 아이들의 용기와 유연함 덕분에 우리는 평생 주저해 온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현실을 똑바로 보고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불완전함을 포용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p22)

 

결국 그녀들은 자신들에게 찾아온 조금은 다른 아이를 통해 '다른 생각', 다른 관점', '다른 교육', '다른 삶', '다른 세상'에 눈을 뜨게 되며 우리를 향해 '자신의 불완전성을 사랑하라!'고 외치기에 이른다. 장애가 있는 자녀와 더불어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을 깨닫고 그것을 전파하기까지. 바로 이 과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우리는 적당한 두께의 이 책을 통해 케이티와 제니퍼는 '특별한' 딸, 다른 말로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은 그녀들처럼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만' 읽어야 할 책이 전혀 아니다. 서로의 손을 잡고 인식을 바로잡을 주역들의 목록에는 분명히 우리도 포함되어 있기에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저자들은 눈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로 인해, 그들과 함께 웃으면서 우리는 기대와 희망을 품으며 책을 덮게 된다. 이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호전의 기미를 보이나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분명 그들은 계속 지금처럼 명랑하게 걸어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제 우리가 시작해야 할 일은 이 세상 모든 장애자가 케이티처럼 '한 번도 포기하거나 자기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우리 주변의 케이티와 제니퍼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과 함께 걸어나가야 한다. 더 이상 그들이 힘겨운 투쟁을 하도록 두지 않는 것 ㅡ 이것이 우리의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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