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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 엑스포메이션
하라 켄야.무사시노 미술대학 히라 켄야 세미나 지음, 김장용 옮김 / 어문학사 / 2010년 9월
평점 :
디자인을 업으로 먹고 사는 나에게 하라 켄야라는 이름의 무게감은 남다를수밖에 없다.
무사시노 예술대학의 교수로
현직 디자이너로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하라켄야는
나이들어서까지 디자이너로 살고 싶은 내게는
빼놓은 수 없는 롤모델 중 한사람이다.
늘 독특한 아이디어와 시각으로 디자인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하라켄야가
무사시노 미술대학의 학생들과 함께 팀을 구성해 매년 진행하고 있는
디자인 프로젝트의 이야기가 담긴 <알몸 엑스포메이션>은
그런 이유에서 당연히 읽어야 하는 책 1순위였달까.
아무튼 출간 소식이 들렸을 때의 반가움이란
디자인 프로젝트의 주제라기엔 무언가 부끄럼이 앞서는 '알몸'이라는 주제를
하라 켄야 교수가 어떤 방식으로 풀어갔을지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각 팀들이 어떻게 이 주제를 시각화 했을지에 기대감에
첫 장을 펼친 이후 마지막까지 정신없이 푹 빠져들어 읽게 되었다.
날렵하고 투명한 듯 깔끔해 하라 켄야의 이미지를 빼닮은 듯한 책을 표지부터
프로젝트의 결과물들과 과정, 하라 켄야 교수의 프로젝트 별 총평까지
어느 하나 흥미진진 그냥 지나칠 내용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알몸'이라는 다소 부끄런 주제를
독특한 시각으로 풀어낸 각 팀의 결과물들을 보면서
어느샌가 잊고 있었던 '새롭게 사물보기'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어 정말 기뻤다.
'엑스포메이션'이란 인포메이션에 반대선상의 개념으로서
하라 켄야 팀이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들어낸 단어이다.
사물을 인지할 때 그 사물의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는 것은
고정관념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관찰하는 대상 자체를 아무 고정관념 없이 바라보고 느끼고 디자인해간다는
이 프로젝트의 성격을 대변하는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부끄러움, 수치심, 될 수 있으면 가려야 하는 '알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디자인의 재료가 될 수 있는 알몸의 개념을 새롭게 발굴해낸
하라 켄야의 시각과 지도력 놀랍고,
그걸 가시화해내서 독특한 작업들을 진행한 팀의 저력이 부럽다.
인간의 알몸을 떠올렸을 때 가장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모습인 '신생아'를 테마로
다양한 재질을 접목시켜 작업한 <Material + Baby>,
알몸을 부끄러워하는 이유가 서로의 '다름'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지하게 해준
<나체의 인형 >은
이 주제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또 엄청난 수작업을 들었을,
그래서 보는 사람조차도 그 꼼꼼함과 노력에 혀를 내두르게 되는
<나체의 소녀만화 >도 인상적이었다.
책을 보며 한참 낄낄거리며 웃었던 부분은
<팬티 프로젝트>와 <엉덩이>부분이었는데,
보이는 사물들에 팬티를 입히는 순간 알몸으로 인지하게 되어버려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버리면서도 그 위트에 웃음짓게 되는 <팬티 프로젝트>는
고정관념을 살짝 비트는 재미가 있었고,
엉덩이의 굴곡을 이용해 다양한 제품,
예를 들면 방석이라던지, 캐스터네츠라던지 하는 일상적 물건들을
새롭게 디자인한 부분에서는 아이디어와 재미에 감탄해버렸다.
알몸이라는 주제를 통해
디자인의 본질을 찾고 싶었다는 하라 켄야의 이번 프로젝트는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내겐 새로운 발상의 전환과 디자이너로서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두고두고
머리가 굳을 때마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