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봉 달 토하고
윤상기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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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독특한 제목에 깨끗한 표지를 보고 한손으로는 제법 묵직한 책의 무게를 가늠하면서,

<기린봉 달 토하고>라는게 무슨 뜻인걸까 책 읽기 전부터 여러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본격적으로 읽어내려가기 전에 슬쩍 뒤적거려본 이 책은 에세이같았다.

보통, 유명한 작가의 에세이가 아니고서야 굳이 찾아보지 않았던 전적(?) 때문에

사실 처음에는 그냥 빈 마음(?)으로 첫장을 펼쳐 들었다.

 

에세이라는 것이,

보통 우리가 수필이라고 부르는 글의 장르가

대체로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들을 써놓은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그런 고정관념에 기대어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나는 이 책의 따뜻함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에 촉촉히 젖어들기 시작했다.

 

인생을 열심히 살고 나서,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의 땀방울이 가득한 인생을 가만히 추억하며 써내려간 글속에는

내가 정신없어서 미쳐 깨닫지 못한 삶의 순간들이

먼저 살아본 인생의 선배의 입장에서 조근조근 알려주는 깨달음들로 가득했다.

 

취미로 키우기 시작한 옥상의 작은 식물위에서

변태를 거듭하며 마침내 나비가 되는 애벌레를 보며 나아질 것 같은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기도 하고,

먼저 떠난 친구의 병상을 바라보며 새삼 곁에 있는 이의 소중함을 곱씹기도 하고,

다사다난 했던 가족사를 떠올리며 그래도 묵묵히 각자의 자리를 지켜 주었던 가족들에게

이제야 고맙다고, 참 소중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글쓴이의 마음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결혼 5년차 네살박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평범한 엄마인 나는

특히 이 에세이가 담고 있는 지극한 가족 사랑에 참 많이 동감가고 감동하였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오랜 세월 곁을 지켜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

쑥스럽지만 참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을 보면서

아, 나도 이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써내려간 부분에서는

나도 내 부모를, 내 형제를 떠올리며, 나는 어떤가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지금도 나이가 어리지만, 인생경험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미숙하고 어리지만,

이렇게 조금씩 이런 글들을 읽으며 공감하게 되는 걸 보면

해가 거듭하고 나이가 드는 만큼 나도 조금씩은 성숙하고 있구나 하는 부끄러운 생각도 든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아내를 만난 후,

아이가 사고로 아픔을 겪은 일을 계기로 그 자신도 크리스천이 된 글쓴이는

책의 뒷부분에서 그가 선교여행을 나갔던 캄보디아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안타깝고 절절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는 슬프게도 한 번도 그곳에 가본 적은 없었지만,

언젠가는 그가 느꼈을 그 마음을 나도 느끼고

캄보디아의 영혼들을 위로하고 섬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내 마음에는 조용하지만 꽤 오랫동안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한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그가 걸어온 인생의 이야기이지만,

그 속에는 나의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일들이 있고,

먼저 살아간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과 깨달음들이 들어있다.

 

책장을 덮고 난 후 더 오래 기억하게 되고

마음이 풍성해지는 느낌,

<기린봉 달 토하고>는 독특한 첫인상처럼

내 마음에 오래 남을 큰 발자국을 하나 남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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