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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도로 가야지 ㅣ 우리글대표시선 18
이생진 지음 / 우리글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시집은, 어릴 때도 그랬지만 늘 나에게 어려운 분야로 여겨져서
쉽게 손이 가는 책은 아니었다.
4년 넘게 연애하고 결혼해 함께 산지 5년이 넘어가는 우리 신랑은 시집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무슨 기념일을 챙기거나 선물할 일이 있으면 꼭 내게 시집을 선물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선물을 받아든 내 입장이 참 난처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고등학생 때 그렇게나 유행하던 말랑말랑한 작가들의 시집조차 읽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나이 지긋한 한 시인의 여행의 잔상이 머무는 <우이도로 가야지>를 읽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짧지만 쉽게 읽을 수도 없고,
뭔가 시인의 심상을 느껴보자 맘먹는다고 해서 맘대로 그렇게 되지도 않는,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의 마음이 통해서 진정으로 기능을 하는 이 '시'라는 세계는
그만큼 내게 부담이었나 보다.
하지만.
한줄한줄 노신사의 걸음을 따라가면서
나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시'의 맛을 조금이나마 느껴본다.
지나치게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구 압축되어 낯선 단어들이 나열된 것도 아닌,
그저 일상에서 쓰는 친근한 언어들이 서로서로 어울려
마음을 탕 하고 흔드는 한 줄의 언어가 될 수 있다니,
글맛이란게 이런건가 싶은 걸 느끼게 된다.
이 시집은 우이도를 비롯한 여러 섬들을 여행하며 시인이 느낀
길의 풍경, 사람들의 풍경, 자연과 교감하며 빚어낸 일상의 잔잔한 감동이 있다.
나였으면 그냥 지나쳤을 상황들을
그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섬세한 감정으로 풀어낸 시의 언어가 참 아름다웠다.
29년생으로 정말 한세기 가까이 살아오신 시인의 풍성한 인생이 녹아있는 시의 풍경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무언가 설명하려하고, 가르치려하고, 삶에 유용한 정보가 아니면, 성공하기 위한 메뉴얼이 아니면
쉽게 선택되지 않는 이 시대의 책의 풍토 속에서
읽으며 마음을 비우고, 삶을 돌아보고
시인이 걸었던 여행의 길 어디쯤을 글을 따라 나도 걸어보면서
왠지 오염되었고 다른 생각을 할 여력없이 복잡하기만 했던 내 삶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기분이 된 것 같다.
천천히 느리게 걷기,
시인의 글 한줄 한줄 사이로 오늘은 나도 천천히 삶을 의미하며
내가 놓치는 풍경이 없는지
가슴을 찌릿하게 할 아주 작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진 않은지
한번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