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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의 표지를 보았을때 익살스러운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슬픈듯한 표정의 일러스트,
감금 혹은 구속을 으례 의미하는 철장 사이로 삐뚤빼뚤 쓰인 천진한 제목글씨들이
묘하게 아이러니 한 느낌이 들어 호기심이 일었다.
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라...
소설이기 때문에 비교적 가볍게 읽으면 되겠거니 했던 나의 알량한 마음은
이 한권의 책속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생각할 거리가 있는지를 깨닫고 난 후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사드, 사드.
바그다드에서 사담 후세인 치하에 태어난 그 집안의 유일한 남자아이.
위로 누나들만 내리낳았던 그 가정에 태어난 축복이자 가문을 잇는 장손.
그렇게 축복과 기대속에 태어난 이 남자의 이름 사드, 사드는
그의 고향 바그다드에서는 희망을 의미하지만
정작 그가 자라 이슬람을 떠나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자유의 나라에서는
'슬픔'이라는 의미로 바뀌는 그의 이름.
책의 첫 머리에 주인공인 사드가 독백했듯
그의 이름때문이었는지 수시로 슬픔과 희망을 오가는 젊은 사드사드의 인생을 따라가며
나는 참 가슴이 답답하고 아려왔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태어난 나라의 상황때문에 고통받고
그 고통속에서 탈출하기 위한 과정에서 그는 또다시 이방인으로서의 새로운 고통을 맛본다.
고향에 있을때는 생존을 위해 자신을 버려야했고,
그 생존을 위해 떠나기를 선택한 그 길 위해서 그는
이방인이라는 타인의 시선에 의해 스스로를 상실해버리고 만다.
내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며 사는 일상적인 것들이
젊은 사드에게는 그 중 단 한가지조차 누릴 수 없고
얻어내기 위해서는 너무나 큰 고통을 치뤄야 하는 상황을 읽으며
내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고, 당연함을 넘어 오히려 불평만 잔뜩 해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소설이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듯 마음의 찔림과 삶에 대한 반성과
무관심했던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해준것은
아마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사드의 인생여정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이 시간에도 바그다드 혹은 전 세계 어디에선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무섭고도 슬픈 사실 때문일 것이다.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드들은
난민으로, 불법 체류자로, 전쟁에, 독재에 정말 살기위해 가족을 등져야 하는 상처를 안고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끝내 사드는 바라던 곳 자유의 땅에 도착하고
하늘아래 초라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지붕밑 낡은 다락방에서
자신의 이름에 주어진 본래의 뜻, 희망의 사드를 다시 기억한다.
자유를 얻기 위한 과정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절망의 가장 밑바닥에서도 희망의 씨앗을 잊지 않은 사드를 보며
현실속의 수많은 사드들도 그들의 희망을 잊지 않고 그 희망을 움켜쥐고 끝내는 얻게 되길 기도해본다.
나는 난민도, 불법체류자도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그런 이름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신의 진짜 이름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부여된 이름으로 분류된 그들,
풍족한 내가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이 순간에도
삶을 위한 악전고투속에서 숨가쁜 순간을 보내고 있을 그들에게
좀더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