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잘 믿지못하는 사람은 어쩌면 다른 무언가를 맹신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대체로 나는 그런 인물들에
대해 써왔다고 생각했는데, 쓰고 보니까 거의 다 내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나는 나를 너무 믿었던 것 같다. 남들에대해서라면 자꾸 의심하고 불안해하면서 나와는내가 너무 우호적이었던 거 아닌가.
그러니까 그런 내가 나를 믿지 못하게 된다면이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더 무얼 믿을 수 있나. 그런 의심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 편을 썼다.
기왕 의심하는 사람이라면 일관되게 의심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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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라『당신과 다른 나는 삶을 매개하는 허구와 삶 자체가 더이상 구별하기 어렵게 근접할 때, 마치 도플갱어처럼 나의 실존과 분리되어 유령처럼 움직이는 또 다른 나를 연출한다. 인식론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차원에서도 그렇다. 이 도플갱어는 내가 만든 허구적 존재로서 인식론적으로도 나와 연결된 존재지만, 더 엄밀한 의미에서 이미 허구가 삶에 개입하는 방식으로 나 자신의실존적인 소외이기도 하다. 마치 이 소설의 두 서술적 의식이 소설이라는 형식적 틀 속에서 결코 손쉽게 분리될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 박인성, 「작품해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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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말이 옳아요, 랑베르, 절대적으로 옳아요. 당신이 지금 하려는일을 나는 결코 막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하려는 일은 내가 봐도 정당하고 좋은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것만은 말해주고 싶어요. 이 모든 것은 영웅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이건 성실성의 문제예요. 비웃을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194p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그래요, 리외, 보셔서자 아시겠지만 나는 인생에 대해 다 알고 있어요), 사람은 저마다 자신소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자칫 방심한 순간에 남의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전염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는것도 알고 있어요.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것들, 이렇게말해도 괜찮다면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산이에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될 의지 말이에요. 정직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해요.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한 법이죠! 그래요, 리외,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거든요.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페스트 환자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죽음이 아니면 빠져나갈 수 없는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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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어리석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쟁이 금방 끝나는 것은 아니다. 어리석음은 여전 히 계속되고 있고, 만약 사람들이 항상 자기만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시민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여서 자신들만 생각했다. 다시 말해, 재앙을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인본주의자들이었다. 재앙은 인간의 척도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들은 재앙을 비현실적이고 곧 지나가 버릴 악몽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 재앙이 지나가버릴 때도 있지만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사라지는쪽은 사람들, 누구보다도 인본주의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리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시민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못한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자기들에게는 여전히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생각은 재앙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 사업을 했고, 여행 준비를 했고, 제각기 의견을 갖고 있었다. 미래와 여행, 토론을 금지하는 페스트를 그들이 어떻게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자유롭다고 믿었지만, 재앙이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결 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의사는 말하려다가 타루를 주의깊게 바라보며 또 머뭇 거렸다. "당신 같은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죠? 세계의 질서가 죽음에 의해 규정되는 이상, 신이 침묵하고 있는 하늘을 바라볼 일이 아니라, 신을 믿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죽음과 싸우는 것이 어쩌면 신에게도 더 좋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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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을 바라보며 의사 리외는 침묵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페스트에 걸렸던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증언을하기 위해, 적어도 그들에게 가해진 불의와 폭력에 대한 기억을 남겨놓기 위해, 그리고 재앙 중에 배운 것, 즉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것만이라도 말하기 위해 지금 여기서 끝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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