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1
미우라 시온 지음, 윤성원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이냐?"

텍스트 위주의 책이 아닌 만화책을, 그것도 찔끔찔끔 나오는 <신의 물방울>, <플루토> 같은 게 언제 나오나 목 빼고 기다리는 내 모습에 익숙한 내게 언니가 물었다. 네 살 많은 언니는 어릴 적부터 거의 친구와 같다. 하지만 만화책을 보는 내 모습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터라 '만화책이냐?'는 물음은 필경 '이번에도 만화책이냐, 언제까지 만화책만 읽을꺼냐.'는 핀잔을 담고 있을 게다. 사실 만화책만 읽는 것도 아닌데 언니는 왜 만날 그럴까.

"아니."

입술을 비쭉 내밀고 펼친 면을 보였다. 제목이 뭔데, 라고 물으며 표지를 뒤척이는 언니는 이건 또 뭔가, 하는 얼굴이다.

Pifan 부대 행사로 열린 장르 북페어에서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를 샀다. 좀 뒤가 깨름칙한 것은 판타스틱 영화제 부대행사에 이런 책들이 나와 있다는 점이지만 판타스틱이란 게 워낙 '의외의 것'을 포함하고 있는지라 그냥 즐기기로 했다. 하지만 장마철의 눅눅함은 코팅안한 표지까지 습기를 머금게 해 책을 넘기는 내내 마음이 가라앉기도 한다. 그게 더 다행이었다. 마치 이나중 탁구부를 소설로 읽는 듯한 기분이다. 그러나 그것은_원숭이들의 놀음을 매우 빈정거리듯 보는 듯한 기분은_다만 1권의 부분일 따름이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차라리 장마철의 이 꿉꿉함 속에 이 책을 읽길 잘했어, 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2권으로 넘어가 하코네 역전경주를 본격적으로 펼칠 때는 말이다. 왜냐면 눈물이 날 것 같은 그 떨어지는 기분을 장마철의 습기가 온전히 상쇄해주기 때문이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생각없이 살아갈 것만 같은 사람들. 신경쓰지 않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양팔을 휘두르는 그 거친 몸짓조차 아무 것도 아닌 양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일상은 지루해 보인다. 마치 누구 한 명이라도 재채기를 하면 지쿠세이소의 마루바닥이 꺼질 것처럼 그들의 일상은 지루함의 연속이다. 태풍의 눈? 아니 영화 <투모로우>에서 본 절대냉동 직전의 고요함? <퍼펙트 스톰>에서 본 퍼펙트 스톰 직전의 평안한 바다?

달리는 동안 그들이 보고 되새긴 것은 '절대적 동지애'였다. 영원토록 반짝반짝 빛나는 아주 소중한 것, 그저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전폭적인 신뢰...이것을 무엇으로 표현하랴. 지쿠세이소의 주민들의 연대를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사내들의 의리? 남자들만의 세계? 아냐. 아냐. 그런 거칠고 짐승스런 표현으론 이들의 고귀한 인간애를 표현할 수 없다. 동지애다, 동지애. 아, 내겐 이런 동지가 있을까. 인생을 살면서 지쿠세이소의 주민들과 같은 동지를 만날 수 있을까.

만화책같지만 전혀 만화책같지 않은 소설책이지만 만화책같은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를 읽고 나니 콧바람이 붕붕 분다. 동지를 얻고 싶다. 그렇게 살고 싶어진다.

(작가도 역자도 모두 여성이다. 이 여성들이 그린 남성들의 세상을 읽은 기분이 묘하다. 프란츠 파농이 <검은 피부, 흰 가면>을 쓸 수 있었던 건 바로 그가 흑인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도 왠지 그렇게 보이는 건 왜일까. 오쿠다 히데오같은 사람이 아무리 죽었다 깨어나도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의 여성편은 쓸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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