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깨달음은 없다
U.G.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김훈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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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의 無我체험은
벼락을 맞는 것처럼 특이한 경우이기에 감당하기 힘들어 하는 모습입니다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수행력이 없는 無我체험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벼락을 맞을 확률은 거의 없기에 벼락맞은 유지는 길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유지는 불교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이지
불교에 사마타라는 선정수행에 멸진정이 있습니다
유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과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경지입니다
멸진정은 붓다가 여타의 깨달았다고 하는 분들과 다른 차원입니다
멸진정을 인정하는 것은 힌두교 뿐만 아니고 무슨 종교 교리가 되었든 통채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깨달음도 없고 길도 없다는 것은
유지가 얼마나 힌두교에 매몰되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힌두교를 포맷한 것이 불교이고
이것이 붓다가 깨달은 無我입니다

 

無我체험에 의해서 유지의 골수에 밖혀있는 힌두교가 포맷당한 것입니다
그러니 깨달음도 없고 길도 없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힌두교든 기독교든 이처럼 벼락맞기 전에는 無我를 받아들이기도 어렵지만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지처럼 힌두교및 여타 종교교리가 골수에 박혀 있지 않으면 벼락맞지 않아도 깨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다

無我체험이 이토록 강력하게 다가온 것은 유지의 머리가 그만큼 꽉 차있었다는 반증입니다

기독교인은 한번의 벼락으로는 안될 것입니다 어쩌면 벼락으로도 안될 것 같습니다

 

 

사마타라는 선정수행을 통해 생각이나 마음을 완전히 지울 수 있고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無我에 이를 수 있습니다
생사를 해결한 것이 無我입니다
생사문제를 해결했는데 다른 할 일이 또 남았는지요
이를 일러 할 일을 다 해 마쳤고 더이상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깨달은 사람이란 더이상 할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더이상 무엇을 할 내가 없기에 無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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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우 2019-07-12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無我인 그대는 누규?

순수의식 2020-04-29 06:55   좋아요 0 | URL
비꼬는 말투지만 누규?하는 그것입니다
거기는 부처 할애비도 하나님 할애비도
알 수 없는 자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