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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깨달음은 없다
U.G. 크리슈나무르티 지음, 김훈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평점 :
상카라등 인도의 모든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영적 스승들이 나왔지만
無我는 힌두교 뿐만 아니고 모든 종교와 그 어떤 사상체계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無我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슨 종교가 되었든 자기 종교를 부정하는 꼴이 됩니다
불교의 無我를 극복하려고 노력한 것이 불교 이후 힌두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드디어 유지에 의해서 그나마 불교의 진수인 無我 체험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 나왔네요
불교의 無我는 영적인 성숙이 없는 사람은 자칫하면 허무주의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초기 불교에서도 無我를 잘못 받아들여 허무주의에 빠져 집단 자살한 실례가 있었습니다
불교에서 가장 염려하는 것이고 이것을 斷見이라고 하는데 일종의 허무주의입니다
유지나 이책을 읽는 독자분들에게도 이것이 가장 염려됩니다
유지의 말대로 無我 체험은 핵폭탄과 같은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힌두교를 비롯해 영생한다는 신을 믿는 종교를 常見이라 하고
란지트 마하라지나 유지 크리슈나 무르티 같은 허무에 빠진 사람을 斷見에 빠졌다고 합니다
이세상이 영원하다 것이 常見이고
이세상을 부정하는 것이 斷見입니다
이 常見과 斷見을 버린 것이 中道이고 그것이 진정한 無我입니다
생각과 마음이 죽는 체험이 초기 불교의 4단계중 1단계인 수다원과입니다
불교의 초보따지를 떼었다는 것입니다
유지는 불교의 초보딱지를 뗀 것입니다
無我를 맛만 본 것인데
붓다를 사기꾼이라고 하니
斷見에 빠진 반증입니다
믿음이 사라지면 깨지는 영생이라는 常見
죽음으로 죽음에서 벗어나려는 斷見
이 두 극단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영생은 내가 죽어야 됩니다
나의 죽음이 영생입니다
이것이 常見과 斷見을 버린 中道인
無我입니다
나다 내것이다 이런 자아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살면서 죽은 사람이 無我이고 아라한이고 니르바나입니다
죽지 않고서는 죽음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모든 종교는 영생이라는 믿음을 꿈꾸지만
살면서 죽는 길이 불교입니다
붓다는 살아있으되 죽은 사람입니다
불교는 형이상학이 아니고
생사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생사문제는 해결할 수 있고 그 길이 불교입니다
생사문제가 해결된 상태가 無我입니다
생사문제에 대한 모든 형이상학에 종지부를 찍고
할일을 다 해 마쳤으며 더이상 할 내가 없기에 無我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 중한디? 무엇이 중요하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