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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은 하나의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거대한 규모의 의학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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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규모의 의학 - 루돌프 비르효, 자유주의, 공중보건학
이안 F. 맥니리 지음, 신영전 외 옮김 / 건강미디어협동조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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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의사social doctor를 주제로 글을 썼던 적은 어언 17년전 로망이던 필리핀에서의 반년간의 해외봉사를 마치고 썼던 후기글에서였다. 학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였음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바깥으로만 돌며 교양수업만 즐거워하다 졸업하고나서 국제개발협력 ODA관련 현장경험에서 빈곤국의 현실속에서 지내며 세상돌아가는 큰 그림을 조금이나마 맛보았다고 할까? 한나아렌트가 말하는 인간의 조건 3가지 중 인간다움을 누리지 못하는 활동이라 homo가 아닌 animal laborans라고까지 했던 바로 그 '노동'으로 악명높았던 기관에 순전한 객기로 자원하였던 그 때에 살아돌아와서 남긴 8기 단원 종결보고서에 실린 나의 글의 마지막은 사회적 의사가 필요함을 느낀다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회적 의사라고 할만한 사람들은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체게바라와 한 사람 정도 더 꼽자면 장지글러가 아들에게 쓰는 형식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서 접한 비극의 아옌데 정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체게바라는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로 의사에서 혁명가가 되기까지 결심을 하는 계기가 된 친구와의 여행이 담긴 영화에서 그가 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속으로 그가 가진 의술을 넘어서 성큼성큼 다가왔는지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인상깊게 말하고 있었다. 

  이 책 <넓은 의미의 의학 Medicine on a grand scale>에서 주인공격인 비르효는 똑똑하였지만 학비가 없어 공부에 어려움을 겪을 뻔 하기도 하고, 남들이 인생을 걸어 한 가지에 집중하고도 하나의 이렇다할 결실을 맺지 못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의사, 병리학자, 인류학지, 정치가, 편집인 등의 다양한 타이틀을 달고 각 분야에서 인상깊은 활동으로 역사에 노크를 했다. 그러나 원하는대로 모든 것이 술술 풀릴 수만도 없고 그렇게만 가는 것이 한 사람, 특히 천재라 일컬어지는 사람에게는 그만큼의 역경도 있는 법이라서 그런지, 그에게는 커다란 산과 같은 존재가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우리가 이미 십대 때 역사서에서 익히 접했던 인물인 비스마르크로 한 시대를 주름잡는 산과 같은 인물이 자신의 앞길을 막는다고 할 때, 그는 어떤 좌절감을 느꼈었을지? 이 책은 저자의 엄정한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철저한 고증의 산물로 그와 비스마르크의 비교적 알려진 일화인 소세지 결투 에피소드는 나오지 않지만, 그 에피소드에서 전장에서 살아온 비스마르크와 칼로 싸운다는 것은 스스로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비상한 그가 모르지 않았던 터인지라~ 그는 그의 분야가 아닌 자신의 분야인 세균에 감염된 두 개의 소세지를 그에게 역으로 제안하여 이 걸로 결투를 대신하자고 했는데, 그를 신뢰하지 못한 비스마르크가 결국 껄껄 웃으며 결투제안을 물리게 했다는 일화에서 알 수 있듯 그와 당대의 실권자인 철의 재상과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 책에서도 그는 "나의 분야에 뛰어든 난입자"라며 비스마르크의 표현그대로 등장한다. 

  그가 비스마르크의 눈엣가시가 되기까지, 불편함을 느끼려면 모름지기 어느 정도 세력을 형성해야 그의 결투상대가 될 수 있을 터였을 것이기에 그의 처음은 어디였을까? 거슬러 올라가 보자. 체게바라에게 친구와의 여행이 그 계기가 되었다면, 우리의 주인공 비르효에게는 일종의 국가프로젝트로 맡은 상부 실레시아 혹은 북부 실레시아로도 알려져있는 다소 열악한 지역의 현장조사가 그 계기로 작용했다. 그 지역은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그 자신의 표현대로 어떤 불쾌한 공기, 그가 miasma로 표현했던 더럽고 냄새나는 그 지역을 가득히 메우고 있는 지역민들의 일부와도 같이 되어버린 그 "공기"를 마주하고 잠재력이 있었을 지도 모르는 그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분노로 인해 "의학" 너머의 세상을 마주한다. 얼마전 인상적으로 보았던 미국 대법관 긴스버그의 일생을 다룬 <세상을 바꾼 변호인 on the basis of sex>에서 그녀가 우상으로 여기던 전설의 변호인을 실망스럽게 만나게 된 장면에서 그녀의 열정에 찬물을 부으며 그 동기를 테스트하려던 그녀의 우상에게 그녀가 들려준, "무엇인가 느끼는 것이 출발점"이라던 답변처럼 말이다.

  실레시아인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불쾌함과 안타까움과 분노마저 느꼈던 비르효는 그가 가진 과학의 힘으로 지역의 위생을 관리하고 이를 체계화하여 마침내 그 지역을 '살만한' 곳으로 바꿨던 경험은 후에 결코 연민의 대상이 아닌 당대의 대도시 베를린의 거주민에게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당대의 "밤거리 아가씨들"이라고 불리었던 여성들은 지금의 의미가 아니라 하수시설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탓에 오물을 스프리강으로 밤시간에 나와서 버려야만 했던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거기서도 나타나듯 최첨단을 달리는 베를린이라 하여도 누군가 체계적으로 정비하지 않으면 여전히 그대로일 골치아픈 대도시의 하수문제에서도 그의 능력은 발휘되었다. 기존 대도시의 경험들의 수혜를 입고 귀족 출신이 아닌 그를 그의 신분만으로 막아서지 않을 만한 다른 귀족출신 동업자와 함께 성공적으로 이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오물로 자연비료로 사용해왔던 대형농장주들의 대대적인 반대에 부딪혀 쉽사리 이룬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결국 그는 해내었다. 지하수의 양에 비례하여 영유아 사망률이 높아진다는 과학적 결과의 적재적소에 맞는 증명의 덕도 보았지만 덕분에 베를린 사람들 마저도 생활의 혁명이라고까지도 할 수 있는 변화를 맛보게 되었다.

  그렇게 의료인들의 직업적 지위를 고양시키고 의료수가 상승과 의료행위의 무자격자 제한 등 늘 진보적이라고 볼 수 만은 없는 의료전문직의 권익확보에도 앞장서고 의회에서도 연설하고 <의료개혁>이라는 발행물까지 시리즈로 앞장서서 내던 그는 어느 순간 싸움을 멈춘다. 그가 의욕적으로 발간하던 의료개혁의 마지막 호에서 그는 우리는 싸움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이 이슈를 내려놓는다고 말했지만 저자 맥닐리 교수의 그의 표현대로 냉전이 막 끝나던 지금으로부터 근 한 세대 전의 시점에 최초로 작성되었던 그의 학부시절 글인 이 책은 후에 손질을 거쳐 발간된 100p가 되지 않은 비교적 짧은 글이라 할 수 있다. 비르효에 대해서 알 지 못했던 한 일반인이 공역자로 삼아주신 교수님 덕분에 역사에 묻힌 한 독일 천재의사에 대해 알게 되고,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그의 팬이 되기도 했었는데 그런 탓에 저자의 결론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기도 했었다. 번역자는 저자의 의견에 꼭 동의를 해야하는지라는 질문을 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작년 여름 노회찬님이 그렇게 황망히 가셨던 폭염의 한 가운데에서 만났던 한 옛날 독일 의사선생님은 올해 다시 만나고 보니, 그렇게 팬이 되었던 마음은 한소끔 물러가고 교수님 말씀대로 어느 정도 100% 다 흠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고 100% 다 폄하해서도 안 될 것이기에 적정한 거리에서 결론을 다시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과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인하여 이후에 등장한 역사의 순환을 그에게 책임을 지우는 듯한 뉘앙스는 좀 억울하다는 생각을 떨치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치의 등장이 바이마르의 탓이 아니듯, 비르효는 그의 분야와 그의 전문인 의학을 넘어선 인류학 중에서도 체질인류학, 아직까지도 의료인들에게 쓰여진다는 삼각법이라던가, 슐레이만과 동업으로 트로이유물을 발견한다던가 하는 행위에서도 나타나듯 그는 이론과 학문에만 머무르기엔 너무도 심장이 뜨거웠던 한 인상적인 인물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1848년의 혁명에도 참석했지만, 위험지대 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점에서 서포트를 하던 젊은 시절의 비르효의 포지션처럼 타협하지 않고 앞서나가다 죽음으로 귀결되느니 보다는, 십대 때 읽었던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에서 서울에서 전학 온 주인공이 엄석대의 독재와 부정에 저항하다 결국에는 그에게 넘어간 것처럼은 아닐지라도 주어진 지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을 그를 따르는 다른 의사들에게 확보해주었다고.. 그가 <질병의료보험>의 표결에 대해 의회에 있던 시절, 눈에 띄게 옹호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앞의 순전한 추측으로 넘겨짚어본다고 한들, 그것이 꼭 잘못만은 아니지 않을까? 그것이 타협이었든 혹은 지나친 추측이었든 간에.


from 말하자면 제일 처음 한국 독자:)

지은 쓰다.

의학은 하나의 사회과학이며, 정치는 거대한 규모의 의학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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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1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kate52 2020-01-1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에요 ㅎㅎ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본의 정신과 기독교
오노 시즈오 지음, 김산덕 옮김 / 하영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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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다 읽었다.

어려웠다.

그리고 싫기도 했다.

더군다나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지소미아 종료까지 벌어지고 있는 요즈음에 피하고 싶은 일본에 가장 좋은 것을 주고자 노력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라니.. 얼마전 순전히 영어를 듣고자 보았던 마틴스콜세지 감독의 엔도 슈사쿠 원작 침묵을 영화화한 Silence도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어렵사리 다 보기도 했어서 숙제하듯 읽었다. 학창시절 당최 숙제라는 것을 하지 않았던 때가 많으므로 당근 오래 걸렸다.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우리 곁의 섬나라, 우리를 침범했던 침략국, 아직도 친일파로 우리나라 곳곳에그것도 요직을 점유하기도 하고 막대한 땅과 부로 이명박근혜 이후 대놓고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대한민국의 합법적이고도 대물림까지 가능한 그러한 상류층을 형성하기도 하는 그런 원류들 하는 것도 없이. 또 한편으로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나 지브리 스튜디오, 대를 몇백년째 물려주어 이뤄내는 가업의 장인정신과 여행가면 엄청나게! 친절하며 뭔가 사교가 많을 것만 같은 그런 종교의 나라이자, 뻔뻔하게 지난 날의 과오를 같이 세계2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인 독일과는 달리, 아직도 제대로된 사과조차 없이 잘못을 자꾸만 덮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트너로 해달라고 요청하는 나라. 영화 일본침몰이나 그 언제적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던 세기말이나 청소년기에 읽었던 노스트라다무스 서적에서 유리구슬로 예언하는 진딕슨이라는 자도 그랬듯이- 일본이라는 나라는 언젠가는 바다속으로 가라앉을, 그리고 딱 그랬으면 좋겠다고 어릴 적 생각했던 자의에 반하여 우리를 범한 말하자면 강간범의 나라.

그 정도가 나의 일본에 대한 기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싫은 사람들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그의 나라를 선포하고 가장 소중하기 짝이 없는 복음을 기꺼이 저치들에게 전파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사람들을 이 글을 통해 보리라는 기대가 처음엔 있었다. 이 책을 말하자면 링크하신 포스팅을 통해 알려주셨던 올해 알게된 한 일본 선교사님을 통해서 어떻게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으신지가 듣고 싶었고 왜 그러고 싶으신지도 알고 싶었다. 오지랖이었다. 늘 그렇듯이~

책은 너무도 전문적이었다. 에세이가 전혀 아니었고 ㅠ 그나마 설교나 한때 친했던 선배언니를 통해 이름을 들어본 적 있던 우찌무라 간조의 학창시절이야기라던가, 예수믿는 대바보들 이야기는 있었지만 대부분 평소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역사라던가, 교파라던가, 일본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그 실천에 오랫동안 마음을 쓰지 않았더라면 결코 몰랐던 그렇기에 오직 그런 사람들에게만 유용할 그런 세부사항들이 거기에 가득있었다. 뉴스에서는 고노외무상이 강경화장관과 만나 외교결례를 행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강간범을 어떻게 사랑할 수가 있을까?

나만의 주택침입죄를 범한 자를 어떻게 품어 안을 수 있을까?

내가 소중히 가꾸어 온 것을 훔쳐간 자에 어떻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왜 그래야 할까..

그러고도 뻔뻔해~ 아주 없던 일인듯 모른 체 하고 자꾸 뭔가 더 해달라고 하고..

이해할 수가 없는데. 앞으로도 그러겠다는 이야긴지 알 수도 없고 더는 알고 싶지도 않은데 말이지

도서출판 하영인에서 후기모집에 그러고도 자원하여 받은 이 책은 <일본의 정신과 기독교> 상편으로 부제는 메이지와 타이쇼 편으로 되어 있고 오노 시즈오 저, 김산덕 역으로 역자 김산덕 목사님은 다음 주 정도에 몇번 강좌를 듣기도 했던 새물결에서 대중강좌를 여시는듯 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부끄럽고 받은 책의 후기를 일본선교잡지에 실어주신다고도 이 책을 알게된 선교사님께서 말씀하시었는데... 일단 기한상 이 정도로 올리고 가급적 듣고 다시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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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겠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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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때까지 기다리기  LET IT ALL OUT! 

2019. 6. 28. 15:21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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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로 보았던 것 같아.

메르스 마지막 환자가 이렇게 열심히 살고자 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얼마정도 흐른후~ 또 접했었다.

그가 결국 죽었다는 이야기.

그렇게 한 사람의 삶이 설명되고 말뿐이었다.

클릭을 하면 그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더 나오겠지만,

결국 타인인 사람들의 뇌리에 남는 것은 헤드로 나온 한 줄의 글일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사람을 치료도 안하면서 죽기까지 기다리는 것인가?

단지 한 사람이라서 그런가?

한 사람쯤이야 뭐 아무것도 아닌가?

어차피 300명도 죽인 사람들이 고작 한 사람쯤이야~

그가 의사였고 자신들의 초기대응실수로 그리되었어도

그것쯤은 뭐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만 5년을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올해 그날이 되었을때 뭐랄까 벌써 5년이 지났구나! 했었고

진상을 밝히겠다고 광화문광장에서 단식까지 하시던 분이 대통령이 되셨어도

뭐 시원하게 밝혀지는 것은 딱히 없고.

그때부터 지금껏 긴밀히 유가족분들과 함께 하시며 특조위 위원으로도 활동하시는

변호사님의 포럼강좌에서 질문을 해보았어도 뭐랄까.. 해갈되는 느낌은 없었다.

노력을 안하시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어째서 밝혀지지가 않을까?

그렇다면 ㅂㄱㅎ도 할만큼 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물론 그건 과한 생각이고 수장된 아이들이 간지 얼마되지 않아

2015 당시 대한민국에는 사스도 피해갔던 김치의 나라가 무려 30여명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낳은

거대한 일종의 miasma와 같은 상황안에서 질식해갔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없이 마스크를 썼었고

믿을 곳은 하나 없으며 그저 각자도생하여 알아서 나의 안위를 지키면 된다는 그런 인식이

날로 팽배해가는 시절이었다.

세월호로 인해 겪은 직접 연관되지 않은 국민들도 그들이 미쳐 예상치 못한

sns의 발달로 분단위로 업데이트되는 뉴스의 생중계로 그 해살같던 아이들이 그저 수장되고 마는 것을 모두 목격한 트라우마가 차마 가시기도 전에 단지 이 나라에 산다는 죄로 또 하나의 거대한 극기훈련에 임하게 되었다.


마치 알아서 살아남아라!는 명령처럼 어릴적에나 해보았던 야밤에 2인 1조로 산에 올라간다던지 하던;

무섭디 무서웠던 극기훈련처럼-_- 이 나라에 살아간다는 죄로 무려 전쟁의 협박까지 받아가면서

국민들은 그렇게 그 시절을 암흑처럼 보냈었다. 환풍기 참사라던가 오티에서 건물이 무너졌다던가 하는 일들이 너무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했었고.. 국가가 거대한 상복을 입은듯 그렇게 축제도 없이 뭔가 감내하는듯만 그저 존재하는듯하게만 그렇게 지나가던 시절이었다. 희망도 꿈도 없이 누구 하나의 꿈만 이루어진 채로.


당시 이런 나라에서는 얼마 남지 않은 내 청춘을 이렇게만 보낼 수는 없었어서 뭔가를 알아보기도 했었고 암튼,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마치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이 지배하는 것처럼, 밤의 여왕이 결국 본인의 복수를 다 이루지 못하고 사랑하는 두 연인의 기적같은 용기로 인하여 무너지고 말았을 때, 어두운 밤의 시절이 걷히고 빛의 시대가 개막했듯이! 그렇게 어두움을 밝히는 천만촛불로 거울을 좋아하고 주사에 중독되어 있고 남의 의견에 모두를 위임하고 모든 권한을 가졌으되, 제대로된 판단을 할 수 없었던 분은 가고 모든 짐을 그렇게나 단시간에 짊어가며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으시면서도 세계의 위험인물을 둘이나 한꺼번에 상대하시면서 위기를 평화의 기회로 바꾸신 그분이 늦으신만큼 부지런히~~ 세상을 닦아놓으시기까지 우리는 감탄했고 응원했고 청원했고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어느새 생존수영법이 필수템이 되었고, 메르스라는 전염병아닌 감염병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상식으로 알게 되었으며 그 와중에 사망진단서라던가 블랙리스트라던가 하는 더러움이 통치하는 세상의 질서에 대해서도 체험하게 되었다. 물론 그 가운데에서 아렌트가 언급한 사유불가능성의 공무원들 가운데에서도 사법농단에 저항한 불꽃같은 판사도 계시었으며 이대라는 대한민국 최고 사립여대의 학생들이 돈도 실력이라고 조롱하던 동급생의 불한당스러운 성적결과에 저항하는 걸그룹노래로 저항하던 그녀들만의 달팽이 민주주의라고도 불리던 상큼한 승리도 있었다. 물론 명바기때부터 그 신랄함과 시원함으로 이건 아닌데 차마 말로는 뭐라고 설명못하겠던 답답한 마음을 유감없이 해갈시켜주던 원조 팟캐스트 나꼼수라던가 나꼽살이라던가~ 이후의 파파이스라던가^^ 하던 이제는 정규방송으로 자리잡은 김어준님의 방송도 빼놓을 수 없겠다.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보았던 방송인 김제동씨가 이제는 당당히 무려 kbs의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그 자체만으로도 상징성이 없지 않겠고~


하지만 그 잔당들도 고스톱쳐서 거기까지 올라간 것이 아니고 생명력이 아주 대단들하시어서 모든 제자리로 돌리려는 행위들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그리 쉽사리 허용해주지 않으며 ㅎㅎ 하는 것마다 그저 쇼에만 능하고 보이는 것에만 그리도 신경을 쓰고 축소를 하고 온갖 수단을 다해서 일이 되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면피하기에만 급급했던 저들의 정신을 따라^^ 그들은 여기 이 책, 김탁환작가님의 살아야겠다의 질병관리본부의 행태에 절절이 묘사된 것마냥 그렇게 무비판적으로 그리고 너무도 닮은 저들의 리더의 행태대로 그렇게만 일관하였다. 마지막 환자인 그가 죽고나서야 날아든 김석주환자에 대한 특별위원회의 구성에 대한 답변공문처럼.


한번도 보지 않았어도 그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고 주변사람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늘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배려했을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살아남았더라면 좋았을 무능하고도 무정하고도 무감했던 그저 '재수없는' 일은 지나가고 잊혀지고 묻혀지기만을 바랬던 사람들이 권한을 쥐었기에 사실상의 죽임을 당했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그러했듯이. 300명도 죽였는데 한 사람쯤이야~ 너무도 쉽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사람에 대한 이해가 지나치리만치 부족한 것은 개인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한 행위에는 큰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나 큰 트라우마에 가까운 일을 겪은 사람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었다 한들~ 스스로 이겨내는 사례는 없다. 모르겠다. 달라이 라마 정도라면 혹시. 내 눈을 바라봐라며 아직도 사람들을 홀리고 다니는 누구라면 거대한 정신승리와 오링테스트로 뭔가 스스로 건설하신 사차원의 세계에서 안식을 누릴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보통의 성정을 가진 사람의 정상적인 치유과정은, 그것을 회피하지 말고 아프면 아프다 하고 스스로 직면할 수 없거든 믿을만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함께 그것을 통과해내고 그리하여 그가 가진 무언가에 눈독을 들이는 되도 않될 아첨꾼들을 곁에 두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인정하는 존경할만하고 배울 점이 있고 거짓을 고하지 않을 정도의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 할 줄 알았더라면.. 그들을 쳐내지 않고 전자를 취할 것이 아니라~ 만일 그랬더라면 한 괜찮고 훌륭했었고 멋지게 역사에 남을 수도 있었을 한 최초의 여성이 이렇게 수치스럽게 마치 거기 있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 처럼 기억되지는 않았을 텐데.. 아프고 심지어 아깝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이 그럴 수가 있을까? 어떻게 그걸 곁에서 제대로 이야기해줄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없을 수가 있을까?


김탁환 작가님의 또다른 저서 거짓말이다에는 세월호가 그렇게 구호장비를 착용한 채로 말을 잘 듣고 있던 아이들에게 선실로 내려가 탈출하라!는 한 마디만 했더라면 아이들은 모두 살았을 거라는 우리가 당시에 수없이도 되뇌었던 그 말을 어제 읽고 작가님께 사인까지 받은 이 책, 살아야겠다의 날개에서 다시 말하고 계신다. 어릴 적 감명깊게 보았던 영화, 파워 오브 원 power of one에서도 마지막신에서 그렇게 말했다. 우리에겐 그 한 사람의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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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다
김탁환 지음 / 북스피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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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잠수사가 있었다.

그는 말했다. 더이상 재난현장에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요라고.

뭔가 믿을 수 있는 류의 사람이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사람들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몸을 사려가며 뒷걸음질 칠 때, 그는 앞서나가 몸이 축나는 것을 마다하며

평생하지 않았던 조건에서도 계속하여 앞으로 나아갔던 사람이었고

이건 아니다 느낄 때 용기있게 한 발 앞서 그들의 선장을 위해 달음질한 사람이었다.

뉴스를 통해 단편적으로 보았던 그의 활발한 활동들이 생각났다.

그의 인터뷰들이라거나 방송에서 비치는 모습, 박주민 국회의원의 기사를 자청하던 모습,

불쾌한 일을 겪으시기도 하고 그럼에도 대리기사 활동을 하시면서 유가족분들과 함께하시던 모습들.

호감가는 다혈질의 바다사나이!라고 할까~ 그런 인상으로 각인된 민간잠수사분들 중 한 분.


이 책은 그의 관점에서 씌어졌다.

그들의 캡틴이며 살아있는 전설이던 형님이 맹골수도에서 목숨을 걸고 수습에 임하는 민간잠수사들이 보다 원활히 작업에 임할 수 있도록 말하자면 facilitator로 활동하셨던 분이 

자신들은 죽었다 깨나도 할 수 없는 것들을 해가며 벌어진 재난을 최전선에서 수습한 죄로

자신들이 사실상 행한 과실치사를 거꾸로 뒤집어 쓰게 되셨을 때- 

그저 발만 NDA(non disclosure agreement)를 썼다는 이유로 그저 잠잠히만 있지 않고

나서서 증언하신 바로 그 분의 시점에서 씌어진 탄원서의 형식으로 전개된다.


이제는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시민들에게도 어느새 우선순위가 되지 않게된 5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며 말만 앞세우고 행동은 갖은 수를 써서 구조를 권위를 이용하여 방해했던 사람은 그 자리에서 탄핵되었고, 사람이 먼저라는 세월호 광장에서 단식까지 하셨던 분이 대통령으로 우리 앞에 서게 되시었고, 오랫동안 물속에 있던 거대한 304명을 짚어삼킨 그 공간도 그녀가 끌려내려간 이후 너무도 신속하게 뭍으로 올라왔다. 아이들을 잃은 남겨진 사람들은 결코 되돌아 올 수 없는 몸까지도 찾지 못한 가족들 앞에서 제대로 오열조차 하지 못했고 그렇게 표현되지 못한 채 삼킨 슬픔은 적절히 다루어질 기회를 잃은 채 마음의 멍으로 자리하고 말터였다. 


국민을 300명 넘게 집어삼키고도 그 일이 추호라도 반복되지 않기 위해 하는 노력들은 개인이나 시민사회 차원을 넘어서 국가 차원의 규모에서는 제대로 뭔가가 정착되지는 않았고, 이를 위한 진상규명도 하릴없이 시간만 잡아먹고 있는 참사 후 5년이나 지난 대한민국은 그저 뭐 하나 시원스레 나아가는 맛 없이 귀중한 기회를 딛고 다시 더욱 탄탄해지지 못하고 이도저도 아닌 채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그래도 그런 일이 영영 그저 소모되고 마는 것은 아니어서 이렇게 마음을 가진 한 철저한 작가에 의해 기록되고 그렇게 그 일을 마음한 켠에 담아둔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프고 놀라고 분노하고 행동했던.. 당시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 주는 듯 하다. 그건 아무리 자타공인 연기귀신들이 영화라는 제의를 통해 일종의 문화를 통한 사회적 제사를 지내려는 간단한 시도만으로는 결코 해소될 수 있는 수준의 것은 아니고, 그래서 5주년을 거짐 맞춰 개봉한 그 영화도 사실 볼 마음이 썩 내키는 것은 아니었는데,


살아야겠다도 인상적으로 보았어서 연이어 김탁환 작가님의 또다른 사회파 소설을 내친김에 또 보았다. 당시 여기 많은 글들도 쓰고 뉴스도 요약하고 나름 알린다고도 했었지마는, 이런 글이 바로 오래타오르는, 기꺼이 그 렌즈를 끼고 그가 안내해주는 세계를 조우하고 싶은 그런 글이란 바로 이런 것이네!라는 생각이 절로 든 고개가 숙여지는 글. 저도 한 수, 아니 여러 수 배우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말입니다. 기록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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