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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가 들려주는 이토록 아름다운 권정생 이야기
정지아 지음, 박정은 그림 / 마이디어북스 / 202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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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권정생의 삶은 오늘날, 무엇이 사람답게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높이 올라가야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낮은 데에도 생명이 살고, 못났든 잘났든 최선을 다해 살고 있습니다. 그 낮은 곳의 슬픔과 고통을 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람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가난뱅이 권정생은, 폐병쟁이 권정생은 가장 사람다운 사람, 가장 작가다운 작가였습니다.” _정지아(소설가)
첫 페이지부터 아름답게 슬프다. 외로운 정생의 곁을 늘 지키던 뺑덕이가 그의 품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이다. 내용은 슬프지만 둘이 나누는 교감은 아름답다. 나는 내 품에서 키우던 머루와 산이를 보내지 못했다. 부모님 댁에 일주일 맡겨둔 시기에 실종됐다. 어떤 이별이 더 아플지 잠시 생각해 보지만 답을 못 찾겠다.
열 아홉에 걸린 폐병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50년이나 더 이어오던 정생이 남긴 유언장은 또 아름답게 슬프다. 그 긴 세월을 병마와 홀로 싸우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환생한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 서너 살 어린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다며 쑥스러워하는 그를 보며 문득 내 삶의 동반자가 떠올랐다. 어제 접촉사고를 당하고 멀쩡하게 왔지만, 사고로 그를 잃는 상상을 하게 했다. 상상만으로 온몸이 굳는 두려움을 느꼈다. 만날 혼자 좀 살아보고 싶다 떠들어대지만 실은 나는 혼자 살 위인이 못 된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삽시다! 크크크)
가난, 굶주림, 전쟁, 피란, 일본 살이, 중학교 진학을 포기, 이른 취업, 폐결핵 그의 인생 초반은 내내 가파른 오르막길뿐이다. 계몽서점에서 우연히 만나 둘도 없는 벗이 되었던 기훈 과의 대화가 그들의 고단한 삶을 간접적이지만 또렷하게 보여준다.
“내 눈앞에 베르테르란 놈이 있다면 이 주먹으로 힘껏 패 주겠어. 보나 마나 괴테란 사람은 고생 한번 안 해 본 부잣집 도련님일 거야. 그러니까 이딴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라고. 피난길에 가족을 잃어 보라지. 사랑 때문에 죽겠다는 말이 나오나. 부모가 죽어도 배가 고프고, 부모 같은 형을 잃고도 살아지는 게 인생이야.” _86
기훈이 한 말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베르테르를 따라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는 이 책을 나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을 끝내고 인심 좋은 사장 덕분에 보증금만 내고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서점에서 기훈과 이야기하는 시간은 정생에게 중학교 진학 좌절에 대한 보상같은 시간이었을 거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 목생의 죽음이 아련하게 슬펐다면 매일을 함께 했던 기훈의 죽음은 너무나 손으로 만져지는 실감 나는 슬픔이었으리라. 후로도 이어지는 상실과 이별들.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병과의 사투,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찢어지는 마음. 처절한 그의 삶에 마음이 얼얼해질 정도로 저려왔다.
“생명을 갖고 태어난 이상, 느릿느릿 포기하지 않고 기어가는 굼벵이처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았다.” _125
“‘이것들에게도 살아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면 나에게도 살아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는 게 아닐까?’” _125~126
많은 사람이 이런 마음을 닮았으면 좋겠다. 작은 좌절에 인생을 포기하고 함부로 살거나 반복되는 시련에 생을 져버리지 말길...
‘권정생’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강아지 똥』이다. 그 강아지 똥이 어떤 사연으로 아이들에게 존재의 자체의 귀중함을 알려주는 아름다운 책으로 탄생했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나온다. 작고 사소하고 눈에 띄지 않고 어쩌면 하찮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예쁨을 발견하는 그 낮은 마음, 그 사랑의 마음이 마치 예수님이 사랑을 떠올리게 했다. 예수님을 진정 사랑했기에 그와 닮은 마음을 가지게 된 게 아닐까?
혼자 자는 게 무섭지 않냐는 아이들이 질문에 정생은 양쪽에 하나님과 예수님이 함께 주무신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곧이곧대로 믿었는지 눈이 휘둥그레 뜨고 신기해한다. 그런 동심을 요즘 아이들은 너무 빨리 잃어버린다.
10살, 12살, 14살 아이들은 권정생 작가님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지 슬며시 궁금해진다. 오랜만에 책을 보며 울었다. 울보 정생의 이야기를 읽다가 전염이 됐는지도 모른다. 권정생 선생을 보면 모두 부끄러워졌다고 한다. 나 역시 그 부끄러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절대 그와 같은 낮은 마음을 가질 수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닮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
권정생 작가님의 삶을 감동적인 이야기로 써 주신 작가님,
책을 만들어 주신 마디북,
이 아름다운 책을 읽을 기회를 준 혜진에게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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