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고화질] 감독부적격
안노 모요코 / 서울비주얼웍스(컨텐츠헤라제공)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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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와 <해피 매니아> 등을 그린 만화가 안노 모요코는 2002년에 결혼한 바 있다. <감독부적격>은 아내인 안노 모요코가 자신들 부부의 일상을 그린 만화다. ‘감독 군‘과 ‘롬퍼스‘라는 캐릭터로 자신들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다. 주로 감독 군(안노 히데아키)이 얼마나 못말리는 오타쿠인지, 그리고 롬퍼스(안노 모요코)가 험난한 ‘오타쿠 신부의 길‘을 걸으며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그리고 있다.

만화에는 오타쿠들이 열광할 만한 애니메이션이나 특촬물과 관련된 각종 서브컬쳐 용어들이 난무한다. 특히 안노 히데아키가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전설거신 이데온>이나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울트라맨>, <가면 라이더> 등의 이름이 수시로 등장한다. 감독은 뜬금없이 어떤 캐릭터를 소환하여 흉내내거나 애니 주제가를 불러대는 모습을 연출한다. 처음에는 황당해하던 롬퍼스 역시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자포자기한 듯 완벽한 오타쿠의 신부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리정돈이나 미용과는 담을 쌓고 살던 감독 군도 롬퍼스를 통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며 그것을 즐기는 경지에 이른다.

안노 모요코의 막 그린 듯 귀여운 작화와 정신없는 개그를 좋아하는 터라 킥킥대며 재미있게 읽었다. 뼛속까지 오타쿠인 중년 남성과 겉으로나마 일반인을 지향하는 만화업계 종사자 여성. 두 사람이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조금씩 동화되는 모습을 보며 세상에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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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슬립 닥터 진 20 - 완결
무라카미 모토카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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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인공 미나카타 진은 현대 일본(서기 2000년)의 외과의사인데 어느 날 우연히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138년 전의 에도로 타임슬립을 한다. (작가는 타임슬립의 시기를 왜 하필 138년 전으로 설정했을까? 이 연도가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기 6년 전이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항구가 개항했고 서양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기였지만 아직 일본이 근대화되기 이전인 막부 말기이다. 서양 의술이 보급되기 전이어서 사람들이 크게 다치거나 전염병이라도 돌면 속수무책으로 죽던 시대, 주인공은 미나카타 진은 20세기의 첨단 의술로 사람들을 치료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새로운 기술과 시대를 둘러싼 갈등이 일어난다는 내용.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중 가장 비중 있는 인물은 사카모토 료마이다. 공교롭게도 작년에 나카사키를 여행했는데 길거리에 수많은 기념품과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며 일본에서의 사카모토 료마의 인기를 실감하기도 했다(료마는 소설과 드라마로도 유명해졌으며 나가사키는 그가 활약했던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만화 속에 등장하는 그가 반가웠다. 그 외 사이고 다카모리라든지 오키타 소오지 같은 막부 말의 인물들과 사쓰마 번이니 초슈 번이니 신센구미 같은 이름들은 학창시절 열광했던 만화 <바람의 검심>을 통해서도 익숙한 터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역사학자나 의학교수 등의 자문과 감수를 거쳐 만든 만화인 만큼 고증이 잘 되어 있다. 의학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아도 수술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세밀하고 현실감 있게 묘사된다. 보통의 의학 만화에 더해 흥미롭게 볼 만한 포인트는 현대 의료 기구나 장비가 없는 과거에 어떻게 외과수술을 하는가이다. 그리고 기초적인 의학 상식, 이를테면 세균이나 감염에 대해 알지 못하는 옛날 사람들이 미나카타의 수술을 보며 보이는 반응들이 재미있다. 주인공 미나카타는 (당시로 볼 때) 신에 가까운 의술을 행할 뿐 아니라 자애롭기까지 한 매력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역사적 사건들도 깊이 다루어지는데 일본이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며 근대 국가로 발돋움하는 과정을 또한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대목을 보면서 동시대에 조선의 근대화가 좀 더 순탄히 이루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일본인들이 메이지 시대로 대표되는 황금기의 시작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그 역사의 과오는 차치하고서라도). 그에 반해 우리가 자랑할 만한 역사는 어떤 것이고 반성할 부분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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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에게 ‘믿음‘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 중에 가장 추상적이고 아득한 것으로 다가온다. 이 추상과 아득함은 내가 지금 믿고 있는 상대가 배신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함보다는, ‘믿음’이라는 나의 감정이 언젠가는 닳고 지쳐 색이 바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서 온다.

그동안 나는 참 많은 말들과 사람들과 시간들을 믿었다. 믿음이 깨지지 않은 말도 있었고 믿음이 더 두터워진 사람도 여럿이었으며 생각처럼 다가온 시간들도 있었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은 경우에서 내 믿음은 해지고 무너지고 깨어졌다. 믿는 마음, 마음마다 폐허 같았다.

그렇지만 이 마음의 폐허에서 나는 다시 새로운 믿음들을 쌓아올릴 것이다. 믿음은 밝고 분명한 것에서가 아니라 어둡고 흐릿한 것에서 탄생하는 거라 믿기 때문이다. 밤이 가고 다시 아침이 온다. 마음속에 새로운 믿음의 자리를 만들어내기에 이만큼 좋은 때도 없다. (P.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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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운명 - 사이버펑크에서 철학으로
이정우 지음 / 한길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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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영화들, 특히 그 중에서도 ‘사이버펑크‘로 분류될 다섯 편의 작품을 통해 철학적인 사유를 하는 책이다.
이쪽 장르를 좋아하기도 하고 요즘 관심 주제에 부합하기도 해서 읽게 되었다.

꽤 오래 전에 나온 책으로, 책에서 다룬 다섯 편의 영화들은 모두 20세기에 나온 것들이다.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바이센테니얼 맨>, <매트릭스>,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 등 기술의 발달에 따른 인간의 운명을 예견한 작품들이다. 가장 최근작인 <매트릭스>만 해도 벌써 세상에 나온 지 20년이 지났는데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레플리컨트(제작된 인간)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인간을 인간 ‘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지 탐구하기도 하고, <공각기동대>에서는 기억이 외화되는 전뇌화의 시대에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 더 나아가 영혼과 육체의 경계에 대해 논하기도 한다.

과거에 이미 감상한 영화들임에도, 저자의 해석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었다. 예전에 이 영화들을 보았을 때는 그저 고도로 발달된 미래 세계에 대한 상상을 목도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엔 결국 이 작품들이 이야기하는 건 ‘인간‘에 대한 것이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와도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였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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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지 스토리 - 빈민가에서 제국을 꿈꾸다
잭 오말리 그린버그 지음, 김봉현.김영대 옮김 / 시드페이퍼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공무원이나 학자는 셈에 능하기보다는 청렴결백해야 하며, 예술가는 오로지 예술적 성취에만 열중해야 한다는 오래된 편견이 있다. 물론 자신의 인생을 예술 그 자체에 바치다시피 한 열정적인 예술가들은 위대하고 멋져 보이지만, 현대의 예술가들, 특히 대중예술을 지향하는 이들이 인기와 돈에 대해 초연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제이지 스토리>는 유명한 힙합 뮤지션 제이지를 다룬 책이다. 전기적인 성격도 띄고 있고 음악적 커리어에 대해서도 일부 다루고는 있지만 <포브스> 기자인 저자가 무엇보다 주목한 것은 제이지의 사업가적 면모이다. 그의 비즈니스는 단순히 음악 산업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를 그저 래퍼나 연예인으로만 알던 사람들은 놀랄 만큼) 다방면에 걸쳐 있다. 라커펠라 레코드라는 힙합 레이블에서 시작해서 데프 잼(레코드사)의 사장이 되고, 라커웨어라는 패션 브랜드를 만들고, 프랑스 주류 회사와 함께 고가의 샴페인 브랜드를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또한 NBA 뉴저지 네츠의 구단주가 되어 그가 자란 브루클린으로 팀을 옮겨온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을 운영하여 불우한 아이들과 난민을 구제하는 자선가이기도 하다. 탁월한 마케터이며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인 TIDAL을 만들었다. 슈퍼스타 비욘세의 남편이며, 버락 오바마가 연설에서 그의 노래 가사를 인용할 정도로 사회적 영향력이 있다. 자산 규모는 무려 5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2011년 기준).

저자는 제이지가 길거리에서 마약을 팔아야 했을 정도로 가난한 빈민에서 어떻게 미국에서 손꼽히는 사업가가 되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는지 하나 하나 추적하듯 취재하여 분석한다. 제이지 본인에게 직접 물어봤으면 훨씬 집필이 수월했겠지만... 책이 큰 금전적 이익이 안 될 것이라고 판단한 제이지 측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그만큼 실리를 중시하며 계산이 철저한 인물이다. 때문에 저자는 작은 퍼즐들로 큰 그림을 완성하듯 자료 수집과 주변 인물 탐색, 인터뷰 등을 통해 이 책을 만들었다.

학교에서 경영학을 배운 것도 아닌 그가 어떻게 CEO로서 직관적이고 냉철하게 사업적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어쩌면 마치 정글의 맹수처럼 거리에서 마약을 팔며 동물적으로 체득한 감각인 듯 싶기도 하다. 하지만 스스로를 브랜드화하고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솜씨는 경영이나 마케팅의 문외한이 보기에도 놀라울 정도다.

힙합을 즐겨 듣고 제이지의 음악을 좋아하는 터라 관심이 있어 더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 제이지가 ‘비욘세 남편’으로 더 유명한 한국에서는... 이 책이 몇 부나 팔렸을 지 사뭇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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