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과 현실의 괴리

변덕 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현실 세계의 연애가 참혹할 때 그것에 대한 환상을 써도 되는가 하는 고민에 깊이 빠진 상태였다. 세상이 드물게 나쁜 사람들과 평이하게 좋은 사람들로 차 있다고 믿던 시절엔 마음껏 사랑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달콤하고 달콤해서 독할 정도인 소설을. 아라는 사랑을 믿었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완벽히 이해하는 관계를. 모두가 무심히 지나친 특별함을 서로 알아봐주는 순간을. 연애소설을 사랑했고 연애소설을 읽고 쓰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러나 3일에 한 명씩 여자들이 살해당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다음에, 성매매 산업의 거대하고 처참한 실태를 알아버린 다음에, 화장실에 뚫려 있던 구멍들이 뭐였는지 깨달은 다음에, 디지털 성범죄 추적 기사들을 내내 따라 읽은 다음에 아라 안에서 무언가가 죽었다. 죽어버렸다. 대단한 기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성인으로서 제대로 기능하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시민이기만 해도 로맨스는 가능하다고 믿었는데 스스로가 얼마나 순진했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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