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다랑쉬오름에 오르고 난 뒤 읽으니 직접 눈으로 봤던 풍경이 떠오르며 더 와닿는 글이다.

한철이 끝나버린 목장은 바야흐로 초겨을 특유의 눈부신 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스러져가는 생명이 마지막으로 발산하는 아름다움, 눈부신 금빛의 들판과 오름들, 서리 깔린듯 하얀 억새꽃 무리들, 구름이 그림자를 던지며 지나갈 때마다 마치 마지막 숨을 몰아쉬듯 밝았다 어두웠다 하고 있었다. 노인은 바로 아래 소 두 마리가 외롭게 풀을 뜯고 있는 분화구 한가운데로 눈길을 돌렸다. 하늬바람이 덜 미치고 샘 물통 근처라 초록빛이 조금 남아 있었다.

잊어버릴 뻔했다. 일없이 오름에 오르는 답사객은 봄꽃의 아름다움, 가을 억새의 감상을 말하며 낭만 한 자락을 꺼내들지만 오름의 주인은 조랑말과 테우리들이었다. 요배가 다랑쉬오름을 그리면서 고운 빛깔이 아니라 무거운 빛깔을 사용한 까닭은 제주인의 삶 속에 있는 오름의 무게감이 그렇게 묵직했기 때문이었나보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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