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란 무엇일까. 각자가 처한 위치에 따라 지나치게 신성시되기도, 천시되기도 하는 노동. 한국의 정치 상황에선 이데올로기와 결부되어 극한의 대립을 낳은 역사가 있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장류진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은 노동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젊은 소시민들의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불행과 고통에 짓눌린 채 숨막혀하는 사람들이 아닌, 불합리한 구조 안에서 어떻게든 자구책을 마련해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내 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가깝다. 어떤 이는 자신이 운신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합리성을 찾기도 하고, 어떤 이는 남들이 현실을 직시하라며 꾸짖는 소리에도 꿈을 꾸듯 살아가기도 한다. 그 중간 어느 지점에서 마음을 놓지 못하고 서성이는 사람도 있다.- 회사 생활에서 빚어지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나 대인관계의 사소한 부딪힘 같은 것들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작가가 직간접적으로 체험한 듯한 일들에는 깨알같은 디테일이 묻어 나온다. 대표의 주재 하에 한없이 길어지는 스크럼 회의 장면이라든지 수평적 의사소통을 하겠다며 실명과 직함 대신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다든지. 나 역시 실제로 겪어본 일들이어서 그런지 웃프게 느껴졌다.-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책의 끄트머리에 실린 <탐페레 공항>이었다. 홀로 떠난 여행지에서 낯선 외국인의 환대를 받고, 서로 이메일을 교환했던 기억이 몇 번 있다. 그러나 돌아와서는 한번도 메일을 보내지 못했다. 국제구호단체를 통해 방글라데시의 아동을 10년 넘게 후원하면서 자동이체만 걸어두었지 아이의 엽서에 한번도 마음 따뜻한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 한켠에 묻어둔 약속들이 마음에 빚이 되었던 때가 있었다. 주인공이 노인의 오래된 편지를 펼쳐 들고 눈물을 쏟는 순간, 나도 같이 울컥할 뻔했다.- 회사 생활을 병행하며 틈틈이 쓴 소설이라니 놀랍다. 바로 옆을 돌아보면 있을 것 같은 생생한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 허를 찔린 듯한 대목이 많았다. 동시대의 작가들이 시대정신을 드러내며 짐짓 무겁고 어두운 격류를 그릴 때, 장류진의 세계에서는 거센 물줄기에 휩쓸리지 않으려 징검다리를 사뿐사뿐 건너는 주인공들이 있다. 글에는 촌스러움이나 과함, 군더더기가 없다. 책에 실린 해설 제목처럼 ‘센스의 혁명‘이다.- 단편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창비신인문학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절대로 전업작가가 될 생각은 없다던 장류진 작가는 첫 소설집이 나온 뒤 회사에 사표를 냈다고 한다. 그의 장편을 더 빨리 만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