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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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 듣곤 했던 뮤지컬 넘버 중에 <살다 보면>이라는 노래가 있어. <서편제>라는 작품에서 나온 노래인데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라는 가사가 있지.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정신이 조금 멍해져. 그리고 늘 살다 보면 사라진다라고 마음대로 오해해서 듣지. 아마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 억지로 살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인가 봐. 느리게 지치는 삶인데 문득 뒤돌아보니까 켜켜이 쌓인 피로가 한 번에 눈에 들어와 아득해지는 기분이랄까.

 

  책 좀 그만 읽어.

  네가 나한테 했던 말이야. 독서는 모두가 장려하는 행위인데, 생각해보니까 책을 읽으면 늘 머리가 아팠어. 보편적인 인물들의 일상에 생긴 균열을 관찰하면서 삶은 원래 고되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나에게도 그런 당연한 불행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두려워해야 하는지 몰랐으니까. 비단 내 것만이 아닌 두려움에도 나는 잘 구겨졌어.

  고된 일이었을 텐데 너는 내 얘기를 늘 들어주었지. 책 좀 그만 읽어, 라고 네가 말해줬기 때문에 나는 계속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습관처럼 또 책을 읽었어. 벌써 네가 타박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너에게 한 번도 실망스러운 책을 소개한 적은 없다? 아무튼 <거지 소녀>라는 책인데, 한 사람의 인생에 관한 소설이야. 이렇게 한 사람의 전부를 던져오는 소설을 마주할 때마다 곤혹스러워. 이 소설은 무엇이야, 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거든. 굳이 말하자면 이건 로즈의 삶이야. 너도 나도 겪는 그런 미지근한 삶이 아니지만,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는 이야기지. 정말로 하나의 삶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 삶이 어떤 삶이었는지 말해보려 해.

 

  이 소설은 로즈의 새벽, 한낮, 황혼의 세월이 세밀하게 쓰여 있어. 로즈가 고향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이기도 해. 로즈가 유년기를 보낸 웨스트핸래티는 과거의 시간대를 품은 가상의 공간이야. 다른 나라의 과거가 배경인데 로즈가 겪는 삶은 친숙하게 다가와. 유년기에 셀 수 없을 만큼 겪었을 부모와의 갈등-극으로 치달을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 어머니와의 다툼, 무심한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체벌, 자존심에 화해를 하고 싶지 않아 이불로 몸을 둘둘 말지만 허무하게 저물어버리는 분노-, 앨리스 먼로는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어. 감정의 보고서처럼 정확하고 세밀한 묘사들이야. 좋은 묘사가 적절한 곳에 배치되면, 독자는 그 시절을 다시 살게 되지.

  먼로는 또한 학교가 실제로 어떤 장소인지 숨김없이 보여줘. 흔히 아이들이라 여겨지는 이들이 벌이는 악행은 과장이라고 믿고 싶을 만큼 참혹해. 장애가 있는 동급생을 일상처럼 성폭행하고, 그녀가 죽자 없었던 일처럼 마무리되는 건 섬뜩하지. 로즈에게도 개인적으로 충격적일 여러 사건이 벌어져. 동경했던 동성 선배인 코라의 무심함이나 악의적인 소문을 피하기 위한 날선 말을 뱉는 아이들. 치욕이야말로 가장 얻기 쉽다는 걸 아이들은 알고 있거든. 그래서 학교생활은 생존에 가깝지

  그런데 나는 로즈의 유년기를 요약하는 문장은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이라고 생각해.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31p에 이미 언급되어 있어. 새어머니인 플로가 로즈와 다툴 때마다 내뱉는 그 말은 로즈의 고등학교 선생인 미스 해티의 입에서 반복돼. 긴 시를 굳이 쓰면서 외울 필요가 없는 로즈의 총명함에 대고 해티는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라는 질문을 던지고 말아. 로즈는 아무도 없을 때 그런 말을 한 해티가 가학적인 선생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말은 굉장히 무서운 말이야. 자신이 누구보다 초라하게 느껴지거든. 굳이 타인이 아니더라도 평생을 그 물음을 삼키며 살아갈 텐데. 나는 분명 로즈가 저 말에 무의식적으로 계속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해.

 

  이 소설의 표제작을 <거지 소녀>로 한건 실로 적절해. 로즈 인생의 가장 큰 변곡점들에 관한 글이거든.

 

  로즈가 고향을 벗어나서 겪는 혼란스러운 첫사랑 이야기.

 

  로즈의 남편이 될 패트릭은 정말이지 로즈와 어울리지 않아. 서로 원하는 모습만을 상대에게 부여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바꾸려 애쓰지. 서로 맞춰가는 게 사랑이라곤 하지만 둘이 교집합을 이룰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아.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를 필요로 하는 건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지 둘은 헷갈리거든. 분명한 건 그 둘이 믿는 건 서로가 아니라 상대를 필요로 하는 자신이야.

  그럼에도 그들이 이어진 건 로즈가 회상하듯 다가올지도 모를 행복의 가능성 때문이야. ‘결국 잘 될 거야, 지금의 불행은 사라질 거라고라는 생각은 그동안 쌓아왔던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 결국 고일대로 고인 시간은 곪아버리고 말지.

  로즈는 계속 행복의 가능성, 사랑을 찾아다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의 마츠코처럼 말이야. 패트릭과 정반대의 사람인 클리퍼드와 불같은 사랑을 하던 로즈는 그로부터 그저 장난질일 뿐이에요라는 말을 들은 뒤에도 굶주린 사람처럼 사랑을 원해. , 사이먼 같은 남자를 만나지만 클리퍼드 때와 그렇듯 똑같은 결말을 반복해. 온몸을 던지는 로즈를 그들은 두려운 듯 피하지. 로즈는 뜻대로 되지 않는 삶에 지칠 대로 지쳐 성급하게 당신은 내 인생의 남자예요!’라는 말을 던지고 말아. 로즈의 행동은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으로 보여. 하지만 그녀는 늘 홀로 남지. 나는 그녀가 이대로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했어. 하지만 로즈는 지친 몸을 이끌고 어딘가로 향해. 다시 살아보려고 말이야.

 

  좋은 작품은 긍정적으로 공명하는 다른 작품이 있어. 로즈의 서사는 마츠코의 타다이마(다녀왔어) 서사와 비슷해. 마지막 소설인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에서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와. 아주 머무르는 건 아니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 장으로는 더없는 장소야. 거기서 그녀는 동생 부부와 만나 추억을 나누고, 잊고 있던 친구 랠프를 만나. 그와의 관계에 대한 문장이 인상적이야.

 그들은 서로의 목덜미와 어깨, 머리와 발을 알았지만 전신을 드러낸 존재로는 서로를 마주할 수 없었다.’

 이렇게 관계에 대한 적확한 묘사가 또 있을까? 죽은 랠프에 관한 기사를 보는 로즈는 슬픔에 젖지 않아. 그녀는 랠프를 여태 사랑했던 남자들보다도 더 가까이에서 느꼈다는 것, 자신의 자리 바로 옆 칸에 존재한다고 느낄 뿐이야. 편안하게.

  그 문장을 끝으로 책을 덮었을 때 나는 비로소 로즈가 집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어. 로즈와 정착이라는 단어는 늘 어긋났어. 남자들은 그녀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그녀는 아픔이 서린 땅에 정착할 수 없었지. 하지만 계속 살아갔고, 많은 것들-찰나의 행복, 수많은 상처-이 흐릿해진 후에야 그녀는 비로소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거야.

 

  이 소설을 바탕으로 삶에 대해 거칠게 요약하자면, 삶이란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라는 날선 질문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 그래도 행복의 가능성이 있다는 믿음에 또 시달리고, 결국 지금의 나를 좋든 싫든 받아들이는 걸 거야. 삶에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어. 지금 이 순간을 또렷이 지각하고 살아가는 자신만이 분명할 뿐이지.

  삶은 끝까지 알 수 없는 무엇인가 봐. 이제 끝이야, 하고 생각하면 다시 다음이 이어져.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지. 그 사실이 버거워서 책을 읽어. 내 것이 될 수 없는 이야기일지라도, 읽다 보면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가니까.

  좋은 이야기는 책을 덮은 후에 다시 시작하지. 나는 분명 이 책을 다시 펼칠 거야. 살다 보면 사라지는 것들이 있고, 사라지는 것들에 의해 다시 살아갈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기 위해서.

  네가 이 책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겼으면 좋겠다. 다음에 또 좋은 책을 발견하면 달려갈 테니, 못 이기는 척 들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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