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을 읽는 다는 건 사람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과 같습니다. 오늘도 그저 지나쳤을 뿐인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사실에 숨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맙소사, 대중이 아닌 개인은 또 얼마나 거대한지.

 소설이란 일상에 틈입한 낯섦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행위입니다. 좋은 소설은 그 낯선 것을 납득하게 하는 핍진성을 기반으로 둡니다. 사람이 눈사람으로 변하는 <작별>이 다가가기 어렵지 않은 이유도 그와 같을 겁니다.

 <작별>은 제목 그대로 '작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제목이 이미 이야기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서 어쩌면 뻔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감히 걱정했습니다. 결코 행복한 결말이 아닐 거라 암시하는 도입부는 오히려 어떻게 전개될까,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정말이지 영리한 시작입니다. 겨울의 낭만으로 은유되는 눈사람이 그녀에게 작용하자 모든 게 위태로워집니다. 인간일 때 필수적이었던 온기가 눈사람이 되자 독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녹는 것은 둘째치고 단단한 것에 부딪힐 경우 부서지고 말 겁니다. 그녀를 둘러싼 현실은 낭만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엄혹한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이상합니다. 그녀는 오히려 차분한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 어째서? 그때부터 그녀에게 한 걸음 더 가까워집니다.

 작별은 필연적으로 돌아봄을 동반합니다. 그녀와 입을 맞춘 현수 씨는 아이스크림 같다고 말할 만큼 발랄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관계는 위태롭습니다. 그에게 저녁 식사를 주는 행위에서도 그녀는 그의 자존심을 건들지 않을 액수를 계산해야 합니다. 미래를 묻지 않아야 지속될 수 있는 살얼음 같은 관계.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그녀가 겪은 시간들에는 분명히 사계절이 존재했을 텐데도, 도무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연락이 끊긴 남동생, 오래 통화하고 싶지 않은 편찮은 부모님, 폭력을 가했던,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오빠. 그들이 그녀와 함께한 시간에는 빛이 머물지 않습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움츠러들며 단단해질 뿐. 그런 시간을 걸어가며 그녀가 더 이상 자신의 몸에 속해 있지 않다고, 그 주변의 어떤 사물이라고 상상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그녀가 현수 씨와 사랑을 하든, 회사에서 해고되든 세상은 흔들림 없이 굴러갑니다. 그녀가 세상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미미합니다.

 그녀에게 일어난 가장 큰 비극은 눈사람이 된 게 아니라 어쩌면 아들 윤의 말일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집에 오래 있으니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데, 사실 엄마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잖아. 아무래도 나는 혼자 있어야 강해지는 성격인 것 같아.채 여물지 못한 자식으로부터 그러한 말을 들은 어머니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었고, 숨길 수밖에 없었을까요.

 물에 잠긴 것처럼 무거운 시간이 그녀에게 흘렀지만, 그러한 사연은 언제나 생략됩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 똑같아요. 특별한 일 없어요. 23p

 엄마, 어떻게 지내세요? / 우리야 늘 그렇지, 괜찮다. 너는 어떠냐? 43p

 다른 방식으로 재현되는 비슷한 문답이 자꾸만 겹칩니다. ‘이라는 단어에, 일상이라는 것에 얼마나 많은 겨울이 고여 있을까요.

 

 좋은 소설은 장르를 막론하고 다양한 장면과 문장을 불러옵니다. 겨울이 배경인 다른 이야기들과 영화가 두서없이 머리를 스칩니다. 그녀의 말,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46p), 그 말에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게 사랑이잖아(자비에 돌란, <마미>)라고 답해주고 싶습니다. 이미 살얼음판을 걷는 일상에서 언제나 끝을 상정하는 그녀이지만, 그럼에도. 무책임한 말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세상에서 점점 고립되어가는 그녀의 삶의 어떤 장면이 또 마음에 남습니다. 그녀는 현수 씨의 그릇에 국수를 넘겨주며 같은 상황에서 사랑을 느꼈다는 한 여자의 사연을 떠올립니다. 얼굴을 모르는 그들은 그 장면을 통해 묘하게 겹칩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겠죠. 

 

 한 여자의 일생을 읽었을 뿐인데 그녀를 둘러싼 세상도 둘러보게 됩니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사회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회는 수많은 개인이 모인 곳, 우리들이 모인 곳이니까요.

 

 마침 소설을 접한 계절이 겨울이네요. 춥습니다. 고독하기도 하고요. 같은 계절에서 작별한 그녀가 한동안 왼쪽 가슴에 고여 있을 것만 같습니다.

 

p.s. 작품집에 수록된 다른 소설들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만큼 좋은 글들이 실렸습니다. 끝까지 함께하시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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