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kimji > 진실과 진심의 궤적을 만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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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란 무엇인가 - 최민식, 사진을 말한다
최민식 지음 / 현실문화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앞서 말하자면 나는 사진을 전공하지도, 미술관련의 공부를 한 사람도 아니다. 하다못해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도 못 된다. 그저 사진 보기를 좋아하는 일반인일 뿐. 일반인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다면 비전문인,이라는 표현도 괜찮겠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이란 무엇인가' 라는 거창한 제목 앞서서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손에 쥘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저 무거운 제목 앞에서 주춤거리지 않고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최민식'이라는 이름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진작가 최민식,을 말하기 위해 빼놓아서는 안 될 단어가 '리얼리즘 사진' 혹은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리얼리즘 사진은 사진을 위한 사진이 아닌 삶을 위한 사진'이며 그런 의미에서 '리얼리즘 사진은 삶의 진실을 가장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진미학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또한 '나의 사진은 내가 살았던 시대와 역사의 증언이다'라고 당당하게 밝힌다. '시대와 역사의 증언'이라는 의미는 작가가 50여 년 동안 펼쳐왔던 작품세계에 대한 총체적인 진술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이 찍어온 바로 '그 사진에 담긴 서민들은 모두가 생명력을 가진 존재이며, 내 작품의 단골 주인공이기도 하다. 서민들의 삶을 통해 나는 세상의 부조리를 비판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의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현실을 보는 눈을 뜰 수 있도록 했'다고 직접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사진이란 무엇인가>는 리얼리즘 사진작가 최민식이 썼으므로, 리얼리즘 사진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리얼리즘 사진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제목 그대로처럼 사진 일반에 관한 이론서로 받아들여서는 절대 안 된다(알라딘 분류에서처럼 '사진이론/비평/역사'에 포함되면서도 '사진이야기/사진가'의 항목에도 포함되는 내용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시 말해 리얼리즘 사진작가 최민식의 시선으로 바라본 리얼리즘 사진 철학에 관련된 이야기,라는 것. '사진의 표현기법이나 방법론이 아닌 위대한 사진작가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그들의 대표작 등을 중심으로 사진의 본질적 의미와 작가정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략 이 책의 방향이 잡힌다. 이 책에 수록되었을 사진들이 그려질 수도 있다. 또한 어쩌면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도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미 알아냈을 수도 있겠다. 바로 사진작가 최민식이 그간의 작품 세계를 통해 말해왔던 화두 - 바로 '인간'이라는 내용적 화두를 풀기 위해 '리얼리즘/다큐멘터리 사진'이라는 방법적 화두, 때문이다.
사진 속 인물들은 '일상의 현실 속에 살고 있는 평범한 개인에 지나지 않지만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인간상으로 부각시'키려 했으며, 그것으로 사진을 중심을 이루는 테마를 '인간애'로 설정했다는 고백을 통해, '끝내 인간이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굳건한 믿음'을 작가는 '사진으로 고백'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그것이 바로 최민식의 사진 세계이며, 사진 철학의 기록들이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사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라고 밝히는 리얼리즘 정신, 즉 다큐멘터리 사진의 존재 방식에 관련된 주제이다. '사진은 본질적으로 세계와 관계를 맺지 않거나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면 그 가치를 찾기 어렵게 된다. 사진은 사호적 실천과 사회적 이상의 표현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강한 어조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하여 사진은 '진실을 이끌어내기 위한 구체적이고 필수적인 장치'라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사진이라는 울림을 통해 파장을 내려면 무엇보다 작가의 사상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한다.
디카의 보급과 휴대전화의 기능 발달로 인해 사진이 일반인에게 더욱 친숙하고 일상적 매체가 된 지는 이미 오래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사진은 하나의 작품이나 예술품이라는 생각보다 생활의 기록을 위한 방법적 매개가 되어가고 있다. 사진이나 카메라가 보편화 되어 일상화 되어가는 건, 그래서 누구나 창작자가 되고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건 긍정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그런 일상의 변화와 함께 사진 자체에 관련된 관심이 높아가는 분위기도 우리는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사진 찍기에 관한 실용서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 실정이며, 얼마간은 그 실용서들이 사용자들의 구미에 맞는 효율성을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사진이란 무엇인가>에서 말하는 사진은 비단 그런 일반인들이 생활속에서 만나는 사진은 아니다. 작품 사진, 예술의 한 장르로써의 사진을 말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리얼리즘/다큐멘터리 사진에 국한되어 기술되어 있다. 그래서 혹 어떤 독자들은 반감을 삼을 수도 있겠다. 사진의 격을 조성하고, 수준을 언급하여 일반인의 사진과 예술 사진의 담을 확고히 굳히게 하는 일련의 고집 센 자기 영역 확보같은 이미지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 사진, 특히 리얼리즘/다큐멘터리 사진만이 고상하고 의미롭다며 고개 뻣뻣하게 들고 있는 이상한 기운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애를 운운하며, 또한 그 인간애를 표상하는 인간을, 그 인간이 살아가는 일상을 사진에 담는다고 하면서 어떻게 일반인이 손쉽게 찍는 사진에 대한 배려가 없는지. 대중과 서민을, 모든 인간을 포커스에 담는다는 작가가 어찌 그들의 찍는 사진에 대해서는 그렇게 야멸차게 거부의 의사를 밝히는지 말이다.
바로 그런 점이 이 책을 받아들이기에 앞서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사진은 오랜 옛날부터, 아니 어쩌면 카메라가 발명되는 순간부터 그런 양면성을 지닌 매체가 아니었을까. 일반인의 일상적 기록을 위한 매체와 예술의 한 장르로서의 확장된 영역. 불가피한 평행선의 의미로 공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 말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피력하는 논리에 대해서 너무 편파적이라고, 너무 외곬이라고 몰아세울 필요는 없을 듯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작가의 명성에 너무 쉽게 기대는 것도 지양해야 할 부분이겠지만 말이다.
그리하여 작가의 고집스러운 논리와 리얼리즘 사진과 그 외의 사진 분야에 관한 모진 양분법에 관한한 독자가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한 방향만 바라보며 걸었다는 것, 한 목표만 집중하였다는 것, 그렇게 한 우물만 팠다는 것은, 적어도 작가의 세계관에 충실한 작업 행로였다는 인정을 해야 할 당위성이 있으며, 독자는 그 결과물에 관한 옳고 그름/이해와 단절을 떠나 그 행위 자체에 관한 찬사를 보낼 의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다름 아닌, 작가가 지향해 온 그리고 여전히 지향하는 깊이에 관한 자신감,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양성을 간과했다든지, 혹은 자기 세계만 옳다고 고집 피우는 아집이라는 해석은 조금 미뤄두었으면 좋겠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사진 철학이 나만 잘났다,는 식의 고상함의 표현이 아니라, 이런 사진만이 훌륭한 사진 작업의 결과물이다 라는 오만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작가의 평생을 바쳐 이룩한 세계관과 그 작품 세계에 관한 기록. 그렇게 받아들여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하는 여유로움으로 읽게 된다면 더욱 수월히 최민식이라는 작가를, 그의 사진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한 건 작가가 표방하는 논리와 작가가 이뤄놓은 작품 세계의 영역은 한 분야에 대한 부분집합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사진이라는 예술 장르의 한 부분에 관련된 사고라는 것. 그러므로 리얼리즘 사진이나 다큐멘터리 사진, 최민식이 주창하는 사진 세계에 대해 전적으로 독자의 사고를 고착화할 필요는 없겠다. 한 분야의 대가의 철학을 접하는 행위. 사진이론서로 읽는 것이 아닌 사진에 관련된 약간 묵직한 수필을 읽는다라고 받아들이면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작가가 기술한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조목조목한 기술력이 아닌,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수록한 사진들에 있는지도 모른다.
목발을 목에 걸고 앉아 바구니를 들고 구걸하는 남자, 자신보다 다섯배는 족히 넘는 짐을 끌고 가는 행인, 치열이 다 보이도록 활짝 웃는 여인, 무표정한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으로 그의 인생을 가늠하게 하는 노인, 바다 앞에서 고개를 맞대고 소주를 마시는 청년들, 허름한 옷차림에도 웃음만큼은 건강한 자갈치 시장의 여인들, 바지를 무릎까지 내리고 오줌을 누는 꼬마의 희망찬 동그란 오줌발, 무수한 사람들, 무수한 이웃들, 무수한 너와 무수한 당신이, 그리고 무수한 내가 담긴 흑백 사진들.
흑백의 모든 사진 속 인물들은 시대와 사회를 말하고 있다. 제목이나 지역, 그 사진을 찍은 시간 기록이 없어도 독자는 쉽게 그 사진의 시간적 배경을 찾아낼 수 있다. 또한 그 시간적 배경은 동시에 무의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왜냐하면 삶은 어제도, 그제도, 오늘도, 어쩌면 내일도 동일한 모습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발전이나 변화의 이야기가 아니다. 삶은, 인간의 행적이기 때문이며 사진 속 주인공이 바로 그런 인간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진 속 주인공은 너이면서 또한 나이다. 나의 적이면서 나의 이웃이고, 타인이면서도 자아인 행태. 사진을 찍느라 사라진 작가이면서도 그 사진을 찍는 작가의 자화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다. 작가가 표현하고 있는 그 어떤 서술력도, 그 어떤 핵심적인 주장도, 그 어떤 아름다운 사상과 경구, 충고와 격려도, 저 흑백사진 한 장 앞에서는 무기력해진다. 사진 한 장에 담겨 있는 모든 논리와 모든 진술, 그리고 모든 세계관과 모든 진실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 어떤 기술적인 것도 아닌, 그 어떤 사상적인 것도 아닌, 본연의 진실 그 자체에 대한 흔적. 그 기록. 그 의미 말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울림을 얻는다. 글을 통해서가 아닌, 미안하게도 글을 돕기 위해 수록된 사진들을 통해서. 그러나 비단 그것이 바로 작가가 평생을 바쳐 이루고 싶던 진심이 아닐까. 모든 것을 사진으로 말하기 위하여 자신과 실투를 벌여야 했던 시간들, 그 시간이 말해주고 있는 사진의 진실 말이다.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에 기죽지 않고, 첫 장을 넘길 용기만 있다면 당신은 이미 이 책을 다 읽게 되어 있다. 글을 읽으면서 비딱해진 마음도, 정말일까? 라고 의심했던 의혹도, 혹은 반신반의했던 당신의 모든 생각들은 어느새 사진 속 인물들에 매료되는 사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얼마간의 무념의 상태로, 얼마간은 감동으로, 얼마간은 동의와 신뢰로, 얼마간은 추종과 찬사로, 얼마간은 눈물겨운 숙연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작가 최민식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온 몸으로, 그리하여 사진으로 말하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작가 최민식을 알기 위해서라도, 혹은 리얼리즘/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해 알기 위해서, 혹은 그 장르의 사진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한 효용성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민식의 사진을, 그가 영향받은 대가의 사진들을 만나는 장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혹은, 내 삶이 누추하여 더 이상 올곧이 바라볼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때, 그리하여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 감히 판단하여 지금의 내가 누군지 모르겠을 때, 그럴때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할 것이다.
흑백 사진 한 장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그 모든 깊이의 의미를 찾는 여행, 그것이 바로 이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읽는 궁극적인 이유가 될 것이며 진실과 진심의 궤적을 만나는 일을 경험하게 되는 독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