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의 방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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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평] 소희의 방 - 이금이 장편소설

 

 

"소희의 방"은 이금이 장편소설 중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뒷이야기 정도가 되겠다.

 

 

얼마 전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읽고 가장 마음이 갔던 주인공도 소희였고 뒷이야기가 가장 궁금했던 아이도 소희였다. 나와 같은 마음인 독자가 많았던지 독자들의 요청으로 등장인물들의 청소년기를 다룬 책 "소희의 방"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늦게 알게 된 것이 행운처럼 느껴진 게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읽은 후 등장인물에 대한 내 감정을 고스란히 품에 안고 소희의 방을 읽을 수 있어서 더 소희의 청소년기에 푹 빠져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뒤로 소희 가슴속 내비게이션은 시도 때도 없이 엄마에게 가는 길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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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도 없이 할머니와 달밭마을에서 살다가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작은아빠 집에 들어가 살게 된 소희가 행복해지기를 바랐다. 그런 소희에게 낯설고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의 엄마가 소희를 데려가겠다며 찾아왔다. 드라마처럼.

 

 

 

아니, 우리 할머닌 지금 외국 고모네 집에 가 계셔.

 

 

외국 어디?

 

 

, 프랑스 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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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살게 된 소희가 진심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했다.

 

그곳은 물질적으로 부족함 없이 풍족했고 엄마 아빠 형제가 없던 소희에게 한꺼번에 가족이 생겼다. 학교에서는 새로운 친구도 만나게 되고 소희를 좋아하는 멋진 남자친구도 생겼다.

 

그러나 소희는 전에 없던 가면을 쓰게 된다.

 

엄마에게로 향한 가면. 친구에게로 향한 가면.

 

그 가면을 쓴 소희의 모습이 많이 안타까웠다.

 

아직 청소년기인 아이답지 않게 어디에서나 반듯한 모습으로 있어야 한다는 소희의 마음이 안타까웠다.

 

할머니와 어렵게 살던 달밤 마을에서보다도 괴로워 보였다.

 

 

용돈을 저금하러 우체국에 가면 잔고가 줄어들 때마다 산소가 줄어드는 듯 가슴이 답답해지던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이상한 건 지금은 잔고가 늘고 있는데도 산소가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116쪽 산소 통장

 

할머니와 달밭마을의 다른 어른들의 소희를 향한 관심과 사랑을 산소에 비유하다니 소희의 마음이 금세 와닿는 구절이었다. 소희에게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다가 아닌데... 엄마와 함께 있어도 따뜻한 말 한마디가 없고 애정 어린 관심이 없다. 소희 엄마는 이럴 거면 소희를 왜 데려온 거냐고 가슴 답답한 마음으로 읽어야 했다.

 

 

 

자책 끝에 소희는 문득 '혹시 나 때문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집에서도 소희는 종종 작은아빠 부부의 싸움거리가 되곤 했다. 이 집에서도 여전히 그런 존재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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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집에서의 여러 가지 상황이 아직도 소희를 괴롭히고 있는데 소희를 더욱 괴롭게 하는 일이 한밤중에 일어난다. 소희는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상황이 사실은 잘못 본 거라며 부정하게 된다.

 

무슨 일인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 물어볼 수도 없고 이건 잘못된 거라고 소리칠 수도 없는 소희의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소희 가슴속에 가시처럼 박혀 있던 말들이 튀어나와 엄마에게로 날아갔다. 가시들조차 지탱해 주는 힘이었는지 그 말이 떠나간 자리마다 휑한 구멍이 생겼고 그 사이로 찬 바림이 불었다. 통증이 느껴지는 듯 엄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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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숨기며 버티던 소희가 엄마와의 사이에서 감정을 터트리는 순간 시원한 마음마저 들었다. 여느 아이처럼 억울하다고 소리도 치고 짜증도 내는 소희의 모습이 보고 싶었던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는 그동안 자식이라는 족쇄에 갇혀 시나브로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소희는 그 장면을 목격했으면서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외면했다. 소희는 흑흑 흐느끼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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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는 엄마와 함께 지내기 시작하며 우리 사회 어딘가에서도 일어나고 있을 가정폭력과 마주하게 된다.

 

"그 사람은 그것만 빼면 좋은 사람이야."라는 말로 애써 외면하며 참고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을 대변하듯 속시원히 소리치는 라니의 말을 들으며 소희는 오열했다.

 

가정폭력을 외면하고 그 상황만 모면하면 시간은 그냥 흐르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가정폭력을 당하는 사람은 안으로 병들어가고 그걸 목격한 사람도 함께 병들어간다는 글이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소희는 성장했다.

 

무너지고, 가면 속에 감춰가며, 자신을 속이기도 하고 소리치고, 울고, 화를 내며 그렇게 성장했다. 그런 소희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고 길었던 마음의 방황과 정지됐던 약정의 시간을 채우는 것이 짧은 순간에 이루어질 리 없다. 그러나 천천히 오랫동안 서로 어루만지며 치유될 소희와 가족의 시간들을 생각하며 미소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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