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사람을 감격케 하는, 마치 할아버지나 우리의 대선배와 같은 충실한 형상을 지녔다. 온갖 풍진의 세월을 다 겪은 이 노인은 진정한 침묵의 의미를 알고 있고, 어떤 기쁨이나 근심과 괴로움도 그를 움직이지 못한다. 모든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다.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고, 사계절의 전환을 바라보며 우리의 출생과 죽음을 지켜본다.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이나 아귀다툼은 그에게 있어 그저 동질의 것에 불과하다. -70쪽
노예선은 거의 모두 승선 한도를 초과했다. 어두운 선창 안에서 낙인찍힌 몸뚱이를 둘씩 한데 묶어놓았고, 겨우 앉아 있을 만한 공간에 쪼그리고 앉은 채로 넘기기 힘든 음식으로 연명하며 최소한의 물과 공기마저 부족한 상황이었다. 천연두와 이질, 눈병은 노예선에서 흔히 창궐하던 전염병이었고, 그 전염병들은 대서양의 흉악한 파도처럼 속수무책인 노예들을 엄습했다. 눈병은 특히 가공할 만한 전염병이어서 한 배에 실린 노예 전원을 실명으로 몰아넣은 적도 있었다. 태양빛이 내리 쪼이는 갑판에 선 이들 노예들은 먼저는 자유를 빼앗기고, 이제는 빛마저 잃어버린 후, 급기야 목숨까지 빼앗기게 된다. 영문도 모른채 손으로 더듬어 선창에서 끌려나온 이들은 갑판에 일렬로 선 채 노예상에 의해 하나씩 바다로 떨어뜨려진 것이다. -117쪽
워싱턴의 하워드 대학교에서 내가 밀러 교수에게 던졌던 두 번째 질문은 '영혼의 식사soul food'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흑인들만 먹는 음식인데, 그 말에서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 음식에 깊숙히 빠져들었다. 인디언들이 만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처럼 아프리카의 흑인들 역시 영혼에 대해 뜨겁게 토론했고, 심지어는 영혼의 색깔까지 분별하여 자신들의 영혼 또한 검은색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는 고난과 슬픔이 가져다준 신념이었다. -122쪽
오늘, 노예선, 이 보기만해도 두렵고 영원한 이별의 유령은 더 이상 우리 아프리카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수갑과 족쇄를 찬 형제들의 고통에 찬 슬픈 울음은 더 이상 뜨거운 해안의 정적으 깨지 않을 것이나, 고난의 시대의 울음과 신음은 우리 가슴에 남아 영원히 울릴 것이다.-124쪽
나는 광주항쟁 과정에서 희생당한 열사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핏자국이 선명한 얼굴, 이미 생명이 소실된 얼굴로 희미하게 실눈을 뜨고 있었다. 그것은 동공이 열리고 시선이 사라진 이후의 눈이었다. 그들의 눈은 타오르는 불길이 갑자기 식어버린 그 순간을 방불케 했다. 고요함 뒷면으로 불가사의한 우울함이 있으며, 멍함 뒤편으로 이루 말 할 수 없는 굳은 의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141쪽
정말로 인터넷 출판 시대가 오면 전통적인 출판이 안고 있던 인쇄비용의 증가나 창고비용의 부단한 증가 등 제반 문제점들이 자동적으로 해소될 것이고, 가상출판으로 인해 원가가 거의 들지 않은 상황이 되면 독자들은 아주 싼 가격에 많은 책을 살 수 있으니, 작가 입장에서는 수입이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가상출판은 이미 많지 않은 천연자원을 더 이상 훼손하지 않을 테니 제지와 인쇄로 인한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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