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그런데 그 모처럼의 희망과 신념이 또 다른 속박에로의 안내등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전 지금 이 섬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라고 있는 원장님의 동상이 아무리 값지고 귀한 것이라 하더라도 원장님 스스로 그것을 완성시킬 순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려는 것뿐입니다. 그냥 섬을 떠나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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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okdongP 2026-04-29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70년에 쓰여진 이 소설은 1962년 516 쿠테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 논리를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내가 메모한 대목은 섬간척 사업이 허무하게 다른 개발단체에 인수당해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 상황에서 조백현 대령이 급하게 공사를 마무리 하기 위해서 작업강도를 높이는 즈음, 이상욱 과장은 섬사람들의 성취가 조백현 대령 개인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고 강변하는 장면이다.

magokdongP 2026-04-29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망과 희망의 배반이 반복되며 이 소설은 진행된다. 희망은 정신적인 이상이고, 배반은 그 이상을 부정하는 온갖 추하고, 이기적이고, 육체적인 한계이다. 누군가는 희망(이상)이 더욱 추구되어야 하는 것이고, 희망의 배신은 희망을 얻기 위해 거쳐가야 하는 장애물 내지 영광의 상처처럼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희망이 한 권위적 개인이나 소수집단 나머지 다수를 계몽시켜야만 얻어지는 것이라면, 희망이 여기하는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라면, 희망은 그 소수의 독재를 합리화 하는 이데올로기로 전락할 수 있을뿐더러, 배반당할 위험을 키울 것이다.
 

두 명의 의사가 아니라, 한 명의 의사와 한 명의 농부로 하나의 공동체가 구성되는 것이며, 일반적으로 서로 동등한 사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으로 공동체가 구성되는 것이니까.

즉 평등은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기 위해 꼭 지켜져야만 하는 사회규약이다. 평등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는 다름을 차이로 인식하는 경향이 클 것이다. 평등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는 힘이 지배하는 야난적 사회로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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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과 손해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 이익은 상대방의 손해만큼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의 이윤을 착취하고 주장한 것이 기억난다. 일론 머스크가 수조원의 자산을 얻는 것은 정당한가? 그것이 과연 그 자신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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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완전한 탁월성. 탁월성은 개인의 행위이고, 정의는 타인과 관계할 때의 탁월한 행위. 정의는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를 탁월하게 하는 것. 때문에 정의가 가장 고결하다. 그 이유는 사회에 관계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여 사회가 되니, 탁월성들이 모여 정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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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발적인 행위는 후회한다면 용서해야 한다. 그러나 보편적 질서, 응당 당연한 것을 어기거나 그것에 무지한 사람은 악덕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는 나중에 몰랐다고 할 순 있어도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인 것으로 얘기되지 않는다.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따지고 봐야 하는 것이다.

강제와 무지라는 두 조건에서 비자발적 행위가 이뤄진다. 강제의 경우에는 온전히 외부로부터의 강제이자 그 행위의 동기에 자신의 목적이 없어야 한다. 그 행위의 결과와 그로부터의 댓가를 고려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지의 경우에는 후회를 하는지 안 하는지가 중요하다.

이 대목에순 죄와 벌을 정하는 법률가의 고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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