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를 생각한다 176p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은 <정보기대>에서 정보화가. ㅗ래한 각종 변화로 기존의 전통사회와 산업사회 기반이 격렬하게 해체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가족, 종교, 노동조합, 지역사회 등이 포함된다. 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기존에 인간이 현실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자아를 실현하던 버팀목이 해체되면 그들은 가장 원초적인 정체성에 기대기 마련이고, 이러한 원초적 정체성들의 부흥이 낳은 파편화된 ‘정체성 권력‘이 지구적으로 부상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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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자자의 시간 49p

그래야 다른 이들의 기대에 투기하면서 자신이 내세우는 이이셔티브의 가치 상승을 추구하는 프로젝트 담지자라는 조건을 몸에 걸칠 수 있다.

투기자와 피투자자로서의 주체성을 활용하려 할 때, 무엇을 권리로 요구할 수 있을까?
-투자자로서의 기존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
-피투자자로서 자기 계발에 필요한 비용의 지원. 혹은 국가의 복지가 당장의 투입-산출 공식을 따를 것이 아니라 모호하지만 미래에 유치할 투자를 기대하는 방식.
-피투자자이자 투자자로서 자본시장에 배제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개인/공동체/이익집단 등의 권리로 평등하게 보장할 것.
-자본이윤을 균등하게 보장하는 것과 함께 자본시장에 참여할 권리를 급진적이고 평등하게 요구할 수 있을까?
구체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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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자자의 시간 43p

상업적 거래자라는 자유주의적 조건은 자유로운 노동자와 고용주 모두에게 부여된 것이었다. 그러나 금융화된 세계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주체성 형식이란 없을 것이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이 판매자와 구매자, 공급자와 고객이라는 이중의 기능을 부여받는 반면, 투자자와 ‘피투자자‘의 기능 간에는 가약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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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자자의 시간 294p

이러한 용례에서 드러나듯 invest는 모종의 에너지 흐름을 어딘가에 던져 넣는in-best 행위를 지칭한다. 투자의 정치라는 말을 쓸 수 있다면, 그것은 자금은 물론 자금의 행방을 좌우하는 평판, 신용, 정동의 흐름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고 제어하는 정치일 것이다.

임금노동으로 만든 상품을 교환해서 이윤을 남기는 방식이 아니라, 상품 아닌 것을 투자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고 그것의 가치에 금융이 쏟아지는 사회. 경제적인 것과 비경제적인 것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것은 인간 노동에 의해 생산된 상품인 것과 자연물이라고 여겨졌던 비상품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의미. 그런 면에서 비경제적이라고 여겨졌던 에너지들이 경제적 에너지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의미. 투자의 정치라는 것은 민중이 자신의 인적자본을 가치있게, 적대하는 금융자본을 리스크가 높게 만드는 가치화/상품화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갈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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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를 생각한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자본주의와 수출경제를 지향한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은 사회혁명과 개발을 통해 근대적 노동력으로 대편된 인구를 산업 경제에 투입했고, 미국과 일본이 제공해준 산업 네트워크와 수출시장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한국은 사회혁명은 완수했지만 자본주의 경제권에 편입되지 않아 정체될 수밖에 없었던 북한, 중국, 베트남이나, 수출에 매진했지만 전통 지배층의 헤게모니가 온존하여 이중경제체제가 등장했던 코트디부아르, 이란, 태국과 같은 국가들과도 다른, 발전을 위한 최적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258p

한국의 근대화가 민중을 수탈했다는 비판, 농촌을 파괴하고 도시빈민을 양산했다는 비판과 다르게 이 책은 한국이 중산층이라는 대규모 근대적 주체를 형성하는 데에 성공했고, 이를 통해서 정치사회적 민주화와 경제적 재분배가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80년대 운동권들은 사회주의 혁명의 기틀을 닦은 것이 아니라, 근대화를 지도한 군부독재의 기득권이라는 사회적 암덩어리를 제거해서 한국를 가장 근대적인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중산층의 사회로 만든 것이겠다. 그런 그들이 중산층을 특권세습층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하나의 역설이 있는 것이고, 그들의 실패는 혁명을 완수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한국의 역사발전의 원동력인 자본주의와 중산층이 맺는 관계에서 나타나는 정치사회문화적 함수를 왜곡시켰다는 데에 있을 수 있겠다. 근대적이고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가 아닌 특권과 정치적 부족주의를 형성한 것. 저자는 애초에 86세대의 신전통주의적 특질을 지적하면서 이들의 부족주의적 한계가 이들이 특권을 쌓은 뒤에 얻은 부패의 생채기가 아님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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