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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클로이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6월
평점 :
책을 덮고 나니 드라마 혹은 영화를 한편 끝까지 본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오랜만에 푹 빠져들어 읽었고, 완결과 에필로그마저 취향에 너무나 부합하는 내용이었기에 책에 대한 만족도가 차다 못해 넘쳐 흐른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프랑스 작가 '마르크 레비'의 신작 소설이라고 하는데, 아직 독서 이력이 그다지 폭넓지 않은 나에게는 초면인 작가였다. 그래서 작가의 성향을 전혀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어 볼 의지가 충만하다! 특히 영화로도 제작된 『저스트 라이크 헤븐』은 꼭 읽어보고 싶다. 그만큼 너무나도 따스하고 재미있고 감성적이고, 어쨌든 왜 세계적으로 많이 읽히는 지 알 것 같다.
책의 시작은 클로이의 일기로 시작한다.
일기의 내용은 클로이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날에 대해서 적혀있는데, 그래서 이 책이 앞으로 클로이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과거를 보여주고 범인을 잡던가 치유를 받는 과정에 대한 내용을 다룬 책이라고 짐작했었다. 정말 첫 장만 읽고 나서 이 책이 연애소설이라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책 중간중간에 클로이의 일기가 등장하고, 그 속에 클로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등장하지만 정확히 어떤일이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책을 끝까지 읽어 본 독자만이 알 수 있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클로이는 결승선을 앞두고 폭탄 테러에 휩쓸려 두 다리를 잃고 말았다. 폭탄 테러에 당한 2013년 4월 15일 14시 50분. 클로이는 자신의 두 다리, 신체 중 40센티미터를 잃은 그 날은 14시 50분이라고 명명한다.
클로이는 아직 수동식 엘리베이터가 운영되는 맨해튼 5번가에 이웃주민들과 오손도손 살아간다. 두 다리는 잃었지만 삶에 대한 의지는 잃지 않았다. 심리상담사로 일을 하면서 동시에 오디오북 성우로서 배역을 따내기 위해 오디션에도 열심히 참가한다.
뭄바이에서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으로 성공을 한 산지는 사업 확장을 위해 뉴욕에 오게 된다. 사랑을 위해 가족을 버리고 인도에서 미국으로 떠났던 고모 릴리와 고모부인 디팍의 집에서 머물게 되면서 산지가 클로이를 만나게 되는 접전이 생기게 된다. 디팍의 직업이 맨해튼 5번가의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운영하는 기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지와 클로이는 처음부터 운명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을 지도 모른다. 디팍과 교대로 엘리베이터를 운전하던 리베라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며 고모의 부탁으로 그 자리를 산지가 대신하기 전, 산지와 클로이는 워싱턴스퀘어 파크에서 만났다. 벤치에 앉아 멍하니 산책로 중앙에서 한 남자가 트럼펫을 불고 있는 것을 보던 산지에게 클로이는 "살다 보면 어떤 만남의 순간을 뇌리에 각인시켜주는 곡이 있거든요." 하고 말을 걸었다. 클로이는 이내 농담이라고 했지만, 그들의 인연은 그 첫 만남 때 트럼펫이 각인시켜준 것일 지도!
프랑스 작가가, 미국을 배경으로, 인도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글을 썼다. 특히 미국인 연자와 인도인 남자라는 설정이 그리 흔한 것은 아니기에 특이하다고 생각도 들었다.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책에서 언급되는 것을 보면 그리 좋은 시선을 받고 있지는 않는구나 추측한다. 마르크 레비는 잡지 《엘르》와 인터뷰 하면서 이에 대해 다르다는 것은 두려움을 주는 동시에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진심으로 그 다름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낡은 수동식 엘리베이터를 운전하는 디팍과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산지도 어떻게 보면 정반대로 그려지고 있는 인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인도에서 크로켓 선수로 이름을 날리다가 랄리와 결혼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으로 이주해 수동식 엘리베이터 운전사가 된 디팍과, 인종 차별과 상속재산을 노리는 삼촌들의 시기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일과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산지는 닮았다. 사랑 앞에서 결국 모든 것은 평등하다.
마지막에 다다를 때, 클로이는 산지에게 이별을 고하는 편지만을 남겨두고 피렌체로 여행을 떠난다. 디팍은 엘리베이터 운전사로서 거주민들의 이야기는 절대로 밖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는 철칙을 39년만에 깼다. 모든 것은 산지와 그의 사랑을 위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멀리 떠나 새로운 인생을 살자고 부추겼던 과거의 자신을 위해서.
산지와 클로이의 사랑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책의 에필로그 부분에서 아주 짧지만 강렬하게 등장한다. 과연 이 둘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는지, 이별하고 제 삶을 찾아 떠났는지는 직접 책을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