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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지음, 황금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스릴러/추리물은 참 오랜만에 읽는다. 사실 어렸을 때는 셜록홈즈나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등, 살인 사건이 등장하고 이를 해결하는 책을 참 많이 봤다. 그런데 최근에는 참 못읽겠더라. 특히 현대소설이라면 더더욱.
고전은 머나먼 이야기라지만, 현대문학은 결국 동시대의 이야기다. 나는 그 글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고, 그 글에서 일어난 각종 범죄와 모욕, 서러움과 답답함이 현실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음을 직시하고 나니 점점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참 무서운 세상이다.
『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는 언니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 주인공인 노라가 언니의 흔적을 밟아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단순 수사극은 아니다. 수사극이라기 보다는 뭐랄까, 언니인 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겪는 노라의 심리적인 상태와 두 자매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갈등과 과거에 더욱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책은 총 3부로 등장한다.
1부 헌터스
2부 말로
3부 여우들
1부에서는 레이첼의 죽음과, 경찰을 믿지 못해 그 죽음을 직접 파헤치려고 하는 노라의 모습이 등장하고,
2부에서는 범인이 밝혀지나 싶더니, 더욱 더 큰 비밀이 밝혀질 것을 암시하며.
3부에서는 사이가 좋은 줄만 알았던 자매의 과거와 노라가 몰랐던 레이첼의 비밀이 드러나며 충격을 준다.
물론 3부에서는 범인이 밝혀진다. 하지만 다른 용의자들을 시간을 끌어 의심을 세웠던 것 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범인은 결국 처음부터 언급되어지지만 결국 경찰들은 무시했던 그 분이다. 궁금하다면 책을 읽어 보도록!
노라는 자기 자신이 레이첼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생각과 일상을 공유하고, 모르는 부분이 없을 정도로 우애가 돈독한 자매임에 틀림 없으니까. 그래서 레이첼을 죽음을 두고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레이첼은 누군가에게 칼에 찔려 살해당할 정도로 원한을 살 만한 사람도 아니었으며, 최근까지 진지하게 만나던 남자친구도 없어 사랑싸움의 결과물로 살해당했을 리도 없었다.
어떤 증거도 얻지 못하고 있을 때, 노라는 15년전의 사건이 생각난다. 15년전, 혼자 파티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레이첼은 누군지도 모르는 남성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그 당시, 경찰은 믿어주지 않았고 지금 레이첼이 살해당한 지금도 어쩐지 수사하는 데 있어서 미적지근하다.
15년 전, 레이첼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폭행을 당했을 때 결국 잘못한 것을 레이첼이 되었다. 레이첼이 술을 마신 상태였으며 저녁에 혼자 돌아다닌 죄. 더 나아가 폭행사건은 레이첼의 사기이거나 몸을 팔려고 했다가 실패해서 꾸며낸 것이라고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사람들은 멋대로 사건을 자기 멋대로 재구성한다.
피해자가 어떤 모습을 해야 '진실된 피해자'로 여겨 주려나. 모든 사건을 자신이 옆에서 듣고 본 것처럼 멋대로 해석하는게 참 재수없다.
사건이 전개될 수록 노라와 레이첼, 자매의 사이도 뭔가 애매하다. 레이첼의 생활을 파헤쳐보니 노라는 레이첼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에게는 입양했다던 애완견이 사실은 경비견이었고, 무엇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경비견을 집에 둔지도 모르겠다. 언니가 콘월로 이사갈 계획이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심지어 노라의 남자친구와 바람피웠던 그 여자가 언니인 레이첼이였음을, 그마저도 경찰이 알려 주어 알게 되었다.
그리고 15년 전, 파티장에서 자매가 대차게 싸웠고 노라가 술병을 던져 언니의 얼굴에 상처를 냈다는 것이 뒷부분에 등장하며 입을 떡 하고 벌렸다. 마냥 우애 돈독한 자매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가! 마지막에 가서 레이첼과 사이가 그리 좋은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찰이 노라를 살해 용의자로 의심하게 되는데, 나도 밝혀지는 진실에 정말 노라가 범인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레이첼을 스토킹 한걸로 추정되는 남자는 경찰에 끌려갔지만, 아무런 물증이 없어 풀려나고 만다. 정말 이 사람이 진범일까?
혹은 2년 전, 레이첼과 결혼 직전까지 같지만 헤어진 남자가 이제 와서야 불만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정말, 이미 제 남자친구와 바람을 피운 사실을 알고 참다 못한 노라가 언니를 죽였나?
뒤로 갈수록 사건의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모든 등장인물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경지에 오르는 글이었다. 하지만, 결국 단서는 처음부터 등장해 있었고 이야기는 모두 하나로 이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