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여자대학과 남녀공학의 차이가 여자대학이 남성적이고 군사화된 운동권 질서에서 자유로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성활동가를 불러서 화염병 시위를 했던 예에서도 드러나듯이 폭력투쟁에 대한 선호도에서도 남녀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또한 남녀공학인 몇 개 중요 대학은 학생운동 위계의 상부에 위치하여 이론을 만들고 투쟁을 주도해 나갔다. 여자대학의 하연희는 이에 대해서 "어차피 대학의 순위가 딱 있잖아요. 어쩔 수 없죠. 얘기를 들어보니까 서울대에서 뭘 정리를하면 그 다음날 이대에서 딱 정리되고 이런 식이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글쎄 별로 문제의식은 없었어요." 김애영의 경험은 남녀공학 대학에서 여자대학으로의 복합적 전달 구조를 잘 설명해 준다. 남성화의 의미를 확인시키는 활동가 재생산부터 이론의 공급과 투쟁 지도까지 이 위계질서는 강고하게 유지되었다.-1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