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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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품위를 결정하는 게 외적 조건 같은 하드웨어가 아니라는건 확실하다.
그럼 답은 분명해진다. 결국 품위는 자기 존재에 대한 당당함,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 통제력, 타인에 대한 정직함과 배려 같은 소프트웨어에서 나오는 거다. 이것이 없다면 왕이라도 전혀 품위가 안 날 것이고, 이것이 있다면 일개 농부라도 품위가 넘칠 것이다.-197쪽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다름아닌 헛된 이름. 허명(虛名)이 나는 일이다. 평가절하도 물론 싫지만 지금의 나 이상으로 여겨지는 것이 제일 무섭다. 나의 실체와 남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 부질없는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 제일 두렵다. 실제로는 오이인데 사람들이 수박이라고 생각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길쭉한 오이는 남 앞에 설 때마다 크고 동그랗게 보이려고 무진장 애를 쓸것이고, 있지도않은 줄무늬까지 그려넣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빈틈없이 변장을 했으면서도 자기가 오이라는 것이 드러날까 봐 늘 마음 졸이며 살아야 한다. 기껏해야 백 년인 인생인데 그렇게 남이 정해놓은 허상에 자기를 맞추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말이다. 나는 아무리 수박 노릇이 근사하고 대접을 받는다 하더라도, 가짜 수박보다는 진짜 오이가 훨씬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수있다고 생각한다. 얼치기, 함량미달, 헛 이름이 난 수박보다 진국, 오리지널, 이름값 하는 오이가 훨씬 자유롭고 떳떳할 테니까. 그래야 제 맛을 내면서 자기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할 수 있을테니까. 조금씩 커가는 과정을 스스로 만끽할 수도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가짜배기 수박이고 싶은가, 진짜배기 오이이고 싶은가?-263쪽

엄마 아버지의 딸, 한국의 딸로만 머물기는 싫다. 한국은 나의 베이스캠프일 뿐이다.이왕 세상에 태어나고 세상으로 나섰으니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서 온 세상의 딸이 되고 싶다. 세계를 무대로, 세상 사람들을 모두 친구로, 형제자매로 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한계와 틀 안에서만 살 수가 없다. 안전하고 먹이도 주고 사람들이 가끔씩 쳐다보며 예쁘다고 하는 새장 속의 삶, 경계선이 분명한 지도 안에서만 살고 싶지 않다. 그 안에서 날개를 잃어버려 문이 열려도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새가 된다면.... 생각만 해도 무섭다. 나는 새장 밖으로, 지도 밖으로 나갈 것이다.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다닐 거다. 스스로 먹이를 구해야 하고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것은 자유를 얻기 위한 대가이자 수업료다.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를 위해서라면
-2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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