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 다빈치 art 11
구로이 센지 지음, 김은주 옮김 / 다빈치 / 2003년 4월
품절


성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는 한, 성에 대한 번민으로 괴로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인간이라면, 이 점에서 어린 아이와 어른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아니, 오히려 성숙이나 세련을 통해 성의 세계를 헤엄쳐 건너는 일을 아직 알지 못하는 아이일수록 직선적이고 날카로운 성의 감각으로 괴로워하고, 노골적으로 성적 번민에 시달리는 존재일 것이다. 어른은 그것을 얼버무리고, 사회적 약속에 따라 그것을 은폐한 채 적당히 스스로를 위로할 방법을 알고 있는 것뿐 아닐까. 어른이란 내면에 있는 아이를 목 졸라 죽여 묻은 땅 위에 피어난 살아 있는 수꽃은 아닐까.
적어도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척하는 어른의 시점으로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삶의 밑바닥에 흐르는 성의 어두운 빛을 은폐하려는 것이 실레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짓거리로 여겨졌다. 그것은 스물두 살인 그의 삶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공격이었다.-163~164쪽

나는 삶을 사랑한다. 모든 생명의 깊이에 침잠하는 것을 사랑한다. 그러나 나를 원수 다루듯 사슬로 묶어 나 자신의 것이 아닌 삶으로, 즉 하찮은 가치밖에는 지니지 않고 그저 실리적일 뿐인, 예술이 결여돼 있고 신이 부재하는 삶으로 나를 몰아넣고자 하는 강제를 혐오한다-151쪽

예술은 항상 동일한 한 가지로서, 즉 예술로서 존재한다. 그런 까닭에 그 어떠한 ‘새로운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예술가’는 존재한다. 새로운 예술가의 습작은 언제나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습작은 살아 있는 그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 중에는 개성이 결여된 사람도 있고, 개성이 풍부한 사람도 있다. 운명적으로 사명을 짊어진 자들이란 바로 후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새로운 예술가는 많지 않다. 지극히 소수다. 새로운 예술가는 무조건 그 자신이어야 한다. 그는 창조자가 아니면 안 된다. 그는 매개되는 것 없이, 즉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을 이용하지 않고 전적으로 혼자서 자신의 내부에 자기가 발판으로 하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그는 새로운 예술가인 것이다-5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