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 ‘외곽주의자’ 검사가 바라본 진실 너머의 풍경들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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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상의 중심도, 삶의 진실도 아니고 다만 늘 어느 정도는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검찰청의 한 귀퉁이에서 분주했던 이끼의 이야기야. 각자의 그늘에서 기꺼이 이끼로서 존재하고자 부단했던 수많은 이끼 씨들의 이야기.

프롤로그 中

이기주의가 아닌 개인주의가 선언되면서 현대적 개인들에게 마법처럼 다가왔던 캐치프라이즈가 있다. 바로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중심이 될 줄 알았던, 혹은 중심을 꿈꾸었던 사람들이 밥 벌어먹을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갖게 되는 순간 우리는 진짜 '주인공'이 된 줄 알고 혹은 될 줄 알고 호들갑을 떨었던 적이 얼마나 있는가. 하지만 인생의 주인공은 분명 나인데 누군가에게 난 조연이었을 뿐 (혹은 더 나아가 엑스트라가 되버리기도 한다) 이었다는 사실 역시 깨닫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제 여러가지 선택로가 생기는데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자각을 계속 지키면서 다른 사람의 삶에서까지 주인공이 될 것인지, 혹은 내 인생에서만 주인공인 것으로 하고 두 번째 나만의 캐치프라이즈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기꺼이 '나'라는 중심에서 벗어날 것인지 등 다양한 길이 다시 생겨난다.

정명원 검사는 기꺼이 '이끼'라는 외곽주의를 선언하면서 '나'라는 중심에서 벗어나 자신의 영역과 삶을 확장 시킨다. 나를 감싸고 있던 사각형을 깨드리고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마주한 외곽에서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들이 그를 맞이 한다.

바로 민원인. 그래, 당신과 나다.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약간의 상상력(p.25)

개인적으로 법조인이 껴들어간 드라마나 영화를 잘 찾아보는 편은 아니다. CJ갬성이라고 해야하나 어쨌든 간에 눈물콧물 짜게 만드는 영화들이 대부분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아는 판검사의 대표적인 대사나 제스쳐(?)는 오직 '이의있소!' 뿐이었다.

하지만 검사의 삶은 생각보다 굉장히 인간답다. 그리고 그들이 마주하는 민원인들의 삶은 더 구체적이고 핍진하다. 무슨 뜻이냐고? 생각보다 무진장 극적인 일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에세이는 다소 '어떻게 판결이 내려졌고, 뭐가 극적이었으며~'가 아닌 정말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한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왜냐하면 민원인들의 삶 역시 우리네 삶과 사실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화 <금발이 너무해1>에서의 문제도 결국 극적인 추리와 과학적 수사방식이 아닌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약간의 상상력으로 해결되지 않았는가! 검사들의 야무짐은 별개의 일이지만, 그들이 마주하는 민원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은 결국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함부로 속단하지 않기 위해 약간의 상상력을 키우는데 게을리 하지 않기'라는 필살기를 연마하는 것이었다.

입증할 수 있는 없는지에 따라 변모하는 것(p.102)

무엇일까? 바로 사건이다. 입증할 수 있는 지 없는지에 관해 그것은 진실이 되기도 하며 거짓이 되기도 한다. 그건 사건이 될 수도 있고, 피해자, 가해자가 될 수도 있으며 동시에 '소문'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여러가지 것들에게 검사들은 그 소용들이 한복판으로 자진해서 뛰어들게 된다. 그 발걸음에는 소리가 없다.

무엇이 진실인지도 모르는 그 소용돌이에 내 발자국이 큰 소리가 난다면 소용돌이는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그렇기에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침착하게 용의자 혹은 피해자, 가해자, 민원인들을 대한다. 어찌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다. '저거 미친놈 아니야?'(「피고인이 사라졌다」의 사라진 피고인, p.93), '아니 이렇게까지 해야한다고?'(「딱 보면 압니까」의 용의자 아주머니,p.104), '대박이다....'(「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의 고여사님, 정영감님,p110),'가지가지한다...'(「그남자의 속사정」의 야간주거침입절도미수죄의 그남자,p.125) 등등 신박한 민원인들에게 어떻게 저렇게까지 침착하고 똑부러지게 대응하실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 발자국을 남기는 사람들의 삶 마저 소리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검사 엄마로서, 혹은 후배로서 선배로서 어쩔 땐 꼰대로서 그당시 초임검사로서 각자의 소리가 왕왕있다. 그런 자신들의 소리를 모두 내려놓고 입증이라는 시간과 공간의 방으로 들어서는 것은 어떤 무게일까? 나는 그때를 간접적으로 상상함으로써 비로소 '정의'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외곽주의자를 통해 다시 한 번 바깥으로

"자리가 너무 좋아서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아."

「외곽주의자」, p.267


지방대를 나온, 집안적, 사회적 아무런 배경이 없는, 체력이 다소 떨어지는, 여성인 나는 .... 검찰에서도 내내 중심이라 할 수 없는 형사부, 공판부에서 일했고, 공판부 중에서도 주로 꺼려하는 국민참여재판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는 늘 원의 중심이 명백한 사회였다. 서울 혹은 대도시, SKY 대학, 판사, 서울의 5대 로펌, 특수부, 공안부...그런 것들이 의심없이 중심의 자리를 차지했고 무서운 구심력으로 그 시대의 구성원들을 끌어들였다. 왜 끌려가지는지 모르는 채 끌려가던 나날이 계속되었다. 홀린 듯 중심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왜 저것은 중심인가, 왜 우리에게 작동하는 힘은 구심력 밖에 없는가 의문은 일었다.


결국 세상이 설정한 표준 사이즈가 뭣이든 간에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굽 높이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곳이 중심이라는 일반론을 덮어두고, 그곳에 서 있는 구체적인 나를 그려보았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무엇에 보람을 느끼거나 느끼지 않는지,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지를 추상적으로 말고, 아주 구체적으로 하나씩 따져보았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마침내 나의 외곽은 스스로 형태를 갖추었다. 외곽주의라는 것은 하나의 이념이라기보다 어떤 취향에 가깝다. 중심을 거부하겠다는 높은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체질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 복잡한 곳, 핫한 곳, 관심이 집중되는 곳, 가장 높고 가장 비싼 곳이 좀 불편할 뿐이다. 그 불편함을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않겠다는 다소간의 고집이 외곽주의의 실체다.

「외곽주의자」, p. 267-273


대학원 2학기와 3학기 그 1년 동안 내가 입에 달고 산 말이 있다. "결혼하고 싶어"였다. 순수학문으로 대학원까지 진학한 나는 초반에는 경기권 대학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마침내 서울의 한복판에, 심지어 누구든지 이름만 들어도 아는 대학원에 보란듯이 합격했다. 나의 자존감은 하늘을 찔렀으나 그 '뽕'은 오래가지 않았다. 보수적인 학교 분위기와 학문 경향에 나는 금방 질려버렸고, 생각보다 나에게 버거운 학문의 길은 자존감을 바닥을 치게 하였다.

엉엉 울면서 수업이 끝나면 공원으로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우는 일이 허다해질 무렵, 나는 연애와 결혼에 집착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외로워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개그맨 장동민씨가 예전에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애는 건너뛰고 결혼하고 싶다고 말해 같이 있던 패널들에게 빈축을 샀다. 그때 문득 그 말이 떠오르면서 내가 왜이렇게까지 결혼에, 연애에 집착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사회에 속하고 싶던 것이었다.

대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닌 어정쩡한, 더구나 '순수학문'이라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일반대학원생에게 사회에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결국 '결혼'이라는 제도를 뒤집어쓰고 나타난 것이다. 석사를 수료하려면 아직 멀었지, 석사 논문은 더 멀었지... 하는 그 모든 아득한 마음들이 불안함을 못이겨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결혼'(!)밖에 없다는 황당한 결론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금은 직장도 얻었고 무사히 수료를 앞두고 있어 그때의 마음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지 않지만 참으로 웃지 않을 인생의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여성으로서, 대학원생으로서 '중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먼저 떠올렸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씁쓸한 에피소드였다.

그런 나에게 정명원 검사님은 '개인주의자'를 넘어서 '외곽주의자 선언'을 도모한다. 같이 한 번 이끼가 되어보자고, 외곽주의자가 되어서 중심을 욕하는 게 아니라 중심의 틀에서 벗어나보자고 말이다. 그러면 중심보다 덜 빡빡한, 혹은 너무나 넓은 광야가 펼쳐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디든지 텐트를 치고 누워있으면 된다. 누가 뭐라고 하면 나는 장명원 검사님이 먼저 그랬다고 말하면 된다. 검사님이 먼저했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나. 어차피 합법일 것을.

책은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이 정말 재밌다. 역시 남 얘기가 가장 웃긴 법. '웃겨 증말'이 입에 달려버리는 책. 그래서 진정으로 외곽의 외곽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을 볼 수 있는 책. 그래서 나에게 굳이 중심이 아니어도 인생은 다이나믹하고 재밌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 -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 이다.

한겨레문학상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세상의 중심도, 삶의 진실도 아니고 다만 늘 어느 정도는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검찰청의 한 귀퉁이에서 분주했던 이끼의 이야기야. 각자의 그늘에서 기꺼이 이끼로서 존재하고자 부단했던 수많은 이끼 씨들의 이야기.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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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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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평론가들의 진짜 생각이 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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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정 -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키다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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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한국의 독서량이 처절하게 줄어들면서도 지적 허영심, 지적 호기심은 빠르게 증가하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엄청나게 만들어지는 지식과 교양서적. 그리고 간단한 전공 지식이 함유된 전문 지식서까지. 그리고 이런 책들은 또 절대로 어렵지 않고 짧으며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교양서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형태도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되는데, 보통 서양철학이나 인문 상식이다.

 

그러나 이번 정민 선생님의 습정은 나에게 좀 과감한 주제로 선택되었다고 생각됐다. 바로 사자성어다. 외래어와 외국어가 판치는 현대에 사자성어는 어쩌면 조금 낡은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정민 선생님의 특유의 깊고 세세한 내용으로 사자성어에 대해 짧은 담화를 하고 있다. 어원은 어떻게 되는지, 누가 썼는지, 무슨 뜻인지, 언제 사용되는지 등 선생님만의 문체로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이 길고 지루하다고 읽기 전에 생각할 수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한 사자성어 당 2~3페이지밖에 되지 않아 오히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스스로에게도 사자성어에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준다. 하루에 한 사자성어씩 마스터하면 어떨까? 어차피 한 페이지씩 뜯어 먹을 수 있는 책이다. 바쁜 요즘 자신을 돌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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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안과 성공을 위한 4가지 신성한 비밀
프리타지.크리슈나지 지음, 추미란 옮김 / 김영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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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때 성공의 법칙이라는 거대한 담론이 2000년대 초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그러나 너무 성공을 위해 자신을 남이 정한 레일 위에 올려놓고 달린 까닭일까, 10년 뒤 우리는 자신이라는 개인에 초점을 돌렸다. 내가 진정 제대로 사는 것일까?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일까? 그리고 이제 새로운 담론이 시작되었다. ‘에게도 집중하고 성공에도 집중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에 딱 알맞게 나온 책이 있으니, 바로 마음의 평안과 성공을 위한 4가지 신성한 비밀이다.

 

이 책은 인도에서 의식 변형 명상과 철학을 가르치는 오앤오 아카데미의 설립자이자 리더인 프리타지와 크리슈나지 부부의 아름다운 상태로 가기 위한 자기계발서다. 앞서 이 부부의 이력을 통해 이 책이 주로 이야기하고 전개하는 방식은 명상이다. 대게 내용은 주제와 함께 이론을 설명하고 아카데미 회원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물론 이름이나 에피소드는 조금 변형되어 나온다)나 부부의 이야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전개 방식에서 관련 에피소드를 들려준 후,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독자에게 주제와 관련된 질문을 하는 부분이 있다. 이 책에 굉장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나도 모르게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읽게 되어서 더 집중이 잘 되었다.

 

주제는 크게 아름다운 상태에서 계속 머무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상태는 괴로운 상태와 아름다운 상태로 나뉘며 명상과 자기 훈련을 통해 괴로운 상태에서 아름다운 상태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상태에서 계속해서 머무는지 알려준다. 이러한 부분에서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전혀 억지스럽지 않고 생생해 독자인 나에게 공감과 감동을 일으킨다. 특히 1장에서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하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서 유년 시절 받은 상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했다.


우리는 때때로 어린 시절에 느꼈던 분노나 상처를 어리석은 것으로 혹은 현재의 삶과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이제 더는 어린아이가 아니고 독립적이고 강하고 책임감 있는 성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착하는 자아 이미지 혹은 보기 좋은 허울을 잠시 벗어던지면 진정한 우리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고통스러웠던 과거가 우리 의식에 남긴 진정한 파장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감정적 경험을 현재 괴로운 의식 상태에서 그대로 되풀이해왔다는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진실을 용기 있게 있을 때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58)

 

이런 식으로 적절한 에피소드와 함께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내용이 전개된다. 굉장히 신뢰가 가고 나의 문제를 돌이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인들은 크고 작은 문제들을 안고 살아간다. 이러한 문제들에서 나타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찾는다. 스마트폰, 드라마, 영화, 예능 혹은 누군가와의 만남, 술 등이 그렇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들은 나 자신이 바뀌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을 문제들도 상당히 많다. 이 책에서도 설마하는 내용이 분명히 존재한다. 갑자기 내적 평안을 찾았더니 안 풀렸던 문제가 해결되고 성공하는 식의 스토리 말이다. 그러나 그런 단편적인 스토리에 휘둘려 이 책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의 일은 이 책을 좀 더 맛있게 하는 양념에 불과하다. 진정한 가치는 명상과 호흡을 통해 돌아보는 내면 여행이다. 많은 독자가 그 내면 여행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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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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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

이원경 옮김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Sorry to disrupt the peace’이라는 뜻은 중의적인 의미를 띈다. 정말로 미안해서 쓰거나 혹은 약 올릴 때, 비아냥댈 때 쓰이거나. 주인공 헬렌 모런은 이 문장이 인간화되어 나타난 듯하다. 헬렌의 의도는 비아냥이 아니라 정말 이해해 보려고, 혹은 자신의 외로움을 나타내기 위해 어떤 행동이나 말을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그녀를 별난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해 버린다. 그런 그녀가 자살한 남동생의 소식을 듣고 그 전말을 파헤치고자 한다.

미국 밀워키에서 살았던 한국인 입양아 헬렌 모런은 성인이 되고 그곳을 떠나 뉴욕으로 간다. 그곳에서 문제아들을 가르치고 보살피는 상담사로 일하게 되는데, 맡은 일에 열심히 해, ‘믿음직 언니라는 별명이 있다. 그곳에서 자신에 대한 갑작스러운 감사가 진행되려고 할 때, 제프 숙부로부터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는다. 자신과 같은 한국 출신의 입양아 남동생이 자살했다는 것이다. 헬렌은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당황과 충격을 받고, 이내 오랜 시간 떠나있던 밀워키로 다시 가, 동생의 죽음의 원인을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밀워키로 돌아가고 양부모님과 만났으나 그들은 그녀를 환대하기는커녕 당혹스러워하며 껄끄러워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헬렌은 오랜 시간 그녀가 잊고 살았던 과거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헬렌의 입양아 남동생은 끝까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지막에 가서 남동생이 일기처럼 쓴 기록이 있는데, 거기서도 ‘X, 모런이라고 언급될 뿐, 책에서는 입양아 남동생’, ‘녀석등으로 3인칭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익명은 그가 어쩌면 너무 소수여서 혹은 다수를 지칭하는 기호적 의미 보다, ‘내가 될 수도 있어서라고 생각하는 편이 책에서 전달하는 내용에 더 가까울 수 있다. 그는 학교에서도 가정에서 폭력에 시달렸으며 이 폭력은 주먹질보다 이따금 더 폭력적인 상처 나지 않는폭력이다.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풀리지 않는 삶의 허무함에서 자신이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끝내 고민하다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에 반해, 헬렌은 끊임없이 남에게 인정을 받고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결핍의 상태에 놓여져 있다. 그녀 역시 보이지 않는 차별과 폭력 속에서 계속 자신의 존재와 애정에 대해 방황한다. 좋아하는 가수를 열렬히 쫓아가 보기도 하고, 또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궁극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애정이 이따금 그녀를 파멸로 몰기도 했고 혹은 누군가 그녀를 시기해서 아슬아슬하게 파멸까지 밀어 넣었다. 남동생과 함께 입양아기에 겪는 존재에 대한 질문이 두 남매에게 짙게 남아있었고, 안정적인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이 밑바탕에 있었으나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 둘은 크게 달랐던 것이다.

패티 유미 작가 역시 한국인 입양아고, 동생이 실제로 자살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디언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상황과 일치시키지 말아 달라고 했다. 이게 정말 옳다. 그녀는 입양아로서 갖는 어떤 차별이나 고난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다. 입양아였기에 그녀가 가졌던 끝없는 결핍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소설로 썼던 것이다. 부수적인 요인이었던 양부모의 폭력이나 가톨릭적 행위는 어쩌면 주인공 남매를 더 극단으로 몰아붙이기 위한 요소였을지 모른다.

작품 속 헬렌은 장례식을 포함한 3일 동안 자신의 행보를 독자들에게 기이하게 보여준다. 갑자기 과거로 갔다가 독백을 하고, 때론 현재의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한다. 대화 인용구가 없어서 더 헷갈렸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알쏭달쏭한 플롯이 오히려 헬렌에게 뭐가 채워지지 않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분명 들리는 거리에서 말하고 대답하는데 아무도 대꾸하지 않거나 혹은 조용히 하라고 호통을 친다. 그리고 그녀의 진지한 이야기를 듣는데 아무도 제대로 된 경청의 자세를 보여주지 않는다. 오랜 시간 그녀는 그것을 가족들로부터 경험했고 이후 그 결핍은 내가 믿음직 언니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무의식적 행동까지 이어진다. 이 소설은 두 남매의 처절한 애정 결핍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녀의 남동생은 너무 극단적이지만 그것을 해소했다. 앞으로 헬렌이 어떻게 될까. 나는 그런 헬렌과 같은 사람들에게 믿음직 언니가 될 수 있을까? 나 역시,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계속 발버둥 치는데. 나는 헬렌에 가까운가 그 동생에 가까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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