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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과 폭발
이유소 지음 / 한끼 / 2025년 7월
평점 :

‘구멍은 도망도 출구도 될 수 있다.'
🕳 학창 시절 이후 연락이 끊겼던 친구 고유상에게서 “구멍을 보여주고 싶다”는 연락을 받은 유소. 무심코 찾아간 그의 집엔 아무것도 없고, 바닥 한가운데에 검은 구멍만이 자리하고 있다. 고유상은 주저 없이 그 속으로 뛰어들고, 혼란스러운 유소는 결국 구멍을 상자에 담아 집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구멍 속으로 몸을 던지며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만나는 수혜, 선으로 된 소년, 사막의 여자, ‘릴’ 같은 존재들은 모두 유소의 또 다른 내면을 비추는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 읽는 내내 ‘이건 꿈일까, 현실일까’ 경계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작가는 구멍이라는 아주 단순한 장치를 통해 삶과 죽음, 도피와 희망, 그리고 자아와 타자를 끊임없이 흔들어 놓는다. 마치 내 안에도 하나쯤은 숨어 있는 검은 구멍을 들여다보는 느낌. 그래서 더 무섭고, 동시에 위로가 됐다.
🕳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주인공이 결국 스스로 구멍 속에 뛰어들기로 “선택”한다는 점. 누군가 떠밀어서가 아니라, 자기 의지로 낯선 세계와 마주한다는 게 중요한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우리는 종종 도망치듯 현실을 벗어나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나를 마주하기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 책장을 덮고 나서도 오래 남았던 건 “구멍은 숨구멍일 수도, 무덤일 수도 있다”는 생각. 무겁게만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은 누구나 자기만의 구멍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어떤 날엔 거기로 숨어들고 싶고, 또 어떤 날엔 거기서 다시 기어 나와야만 하는. 이 책은 그 양가적 마음을 잘 포착해 놓았다.
🕳 전체적으로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몽환적이라 읽는 동안 몰입도가 굉장히 높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키는 기묘한 모험담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병상에 누워있던 작가의 고백처럼 절실하게 다가왔다. 나 역시 “내 구멍은 어디에 있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 시간이었다.
요즘 뭔가 공허하고 허한 분들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책. 책 페이지수는 짧지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매력 있는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