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하고 우아한 표지만큼이나 매력적인 제목의 책으로 기존의 책이 개정되어 출판되었다. 남녀노소 입맛을 사로잡는다는 마법의 레시피라면 사람들의 이목이 멈추듯이 행복의 비밀이 들어 있는 책이라면 당연히 마다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현대 사회는 물질적인 삶에 있어서는 더 없는 풍요를 누리고 있어 외적인 면에서는 행복해 보인다. 어느정도인가 하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방송에서 나온 쓰레기통 뒤지는 미국인 교수. 화면에서 세이에란 캘리포니아대의 한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쓰레기통에서 먹을만한 재료를 구하는 중이었다.
쓰레기통 뒤져먹는 교수님
http://schoool_kino.blog.me/10075487916
우리가 장면을 막연히 상상하면 음식물 수거함을 떠올리며 끔찍하다고 생각할테지만 방송에서 보여지는 음식들은 너무나 멀쩡한 것이었다. 개봉하지 않은 통조림과 빵과 호박까지 쓰레기통만 뒤져도 평소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30년 전부터 이런 생활을 한 교수는 프리건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버려진 쓰레기로 연명하며 자원낭비를 막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우린 풍부한 의식주로 행복의 외형적 조건은 평균적으로 상승했다.
당장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인 시대에 굶주림은 불행이었으나, 상술한대로 지금은 경제적인 번영에 의해 그런 문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허나 불행의 원인이 제거된 소극적인 행복이 진정한 행복인지는 의문이다. 티브이 화면을 보면 물건을 팔기 위해 마시거나 입으면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광고가 나온다. 조건이 걸려 있고 그것을 획득하는 것을 전제로 행복해진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도대체 무언가를 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니 그렇다면 높은 행복을 유발하는 행동이나 물건을 찾는다면 우리는 높은 행복도를 유지할 수 있지않을까. 그래서 사회과학적인 수치를 도표화 하여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경제수준이나 문화수준을 통해 행복지수를 파악하기도 하고 뇌과학이나 생리학을 통해서 인간이 과학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메커니즘을 밝히기도 한다. 또한 철학이나 종교로 행복의 본질에 접근하기도 하는데 바로 이 책은 마지막 경우다.
기존에 행복을 대하는 태도는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가에 맞추져 있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행복 지수 자체를 높이는 것이 기분 좋은 것이며 인생을 즐기고 그런 느낌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라 정의를 내린다. 다시 말하면 섹스하고 친구와 한잔 걸치며 안정적 직장에 종사하는 것이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계로 측정한 행복지수가 행복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에 대한 물음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이 실체를 알 수 없는 추상적인 단어에 엄청난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할 궁극적인 이유가 여기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 계발서 1년 매출액이 10억 달러이고 항우울제 시장은 170억 달러다. 행복은 체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인데 공산품 처럼 이미 만들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은 사실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하며 행복 자체를 밝혀야 한다고 저자가 언급하는 것.
또한 행복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공간을 달리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느끼는 행복을 무신론자가 공유하기 어렵고 고대인들의 행복이 현대인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될 수는 없다. 종국적으로 행복이란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귀결된다. 그저 개인이 속한 영역의 색상이 그들이 구성원에게 덧씌워질 뿐. 특히 생각의 집결체인 철학과 집단을 움직이는 신앙이 이러한 개인의 색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되는 경우가 많다.
신비주의자와 달리 이성에 의지를 중시하는 스토아 학파가 다르고 불교도가 욕망을 억제하여 선에 다다르고자 한다면 공리주의자들은 최대한도의 쾌락이 곧 행복이라 말하는 것이 그러하다. 여기에 더해서 행복 추구 자체가 불가하다 보는 견해도 있는데 흰두교가 삶에 대한 책임과 의미를 강조했다면 기독교는 신의 은총이 결여 된 인간은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관련한 책을 소개하자면 하단의 링크는
아이들의 행복에 관해서 뇌과학으로 풀어낸 책이다.
내 아이의 평생행복을 결정하는 아이의 뇌 - 김붕년
아래는 대공황 시기에 학자가 행복에 관하여 서술한 책으로 행복론의 고전인 책이다. 행복에 관한 다양한 관점에 대해서 느끼고 싶다면 추천한다.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 W. 베란 울프
행복의 오해에 관해 이야기 하는 책.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럽개의 챕터루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조금 건조한 편집이며 특별한 이미지나 별도의 정보란이 없다. 내용이 아주 어렵지는 않지만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는 책이므로 산만하지 않은 이런 깔끔한 편집은 플러스라 생각한다.
서문 1부 쾌락의 추구 1. 쾌락의 최대화 (공리주의자) 2. 쾌락은 선이다 (에피쿠로스 학파)
2부 욕망의 정복 3. 그대가 해야 할 일을 바삐 수행하라 (힌두교) 4. 깨달은 자 (불교)
3부 이성의 초월 5. 천국에 존재하는 행복 (기독교) 6. 행복의 연금술 (이슬람)
4부 고통의 인내 7. 모든 것은 정신 속에 있다 (스토아 학파) 8. 신의 숨겨진 얼굴 (유대교)
결론 |
이렇게 다양한 행복이란 개념 속에도 더이상 가지치기가 불가능한 네가지의 통일성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쾌락 욕망 고통 이성이다. 이것마저 사라지면 행복은 존립할 수 없는 기본 4대 요소다. 따라서 목차도 4개로 개별 요소를 다룬다. 행복이란 단일 개념에 역사적 사실이나 여기에 등장하는 철학과 신학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이러한 만남을 통해 각기 다른 행복이란 존재의 실체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집필 의도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가 등장하며 이는 어떠한 종교적인 설파에의 의도가 아니라 종교적 방식을 통해 개인에의 각 개인의 각성으로 행복의 의미를 탐색하도록 이끈다. 등장하는 철학 중에는 에피쿠로스 학파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일전에 서평한 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에 등장했었던 중심이 되는 철학으로 행복이라는 것은 평정하고 자율적인 심신의 안정 상태, 즉 '아타락시아'라 하며, 이를 쾌락이라 칭한다.
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 - 대니얼 클라인
http://blog.naver.com/lawnrule/120186754965
책을 읽으면서 특정 조건에 의존적이지 않은 비물질적이고 좀 더 행복의 근원에 다가간 핵심적인 무언가를 손으로 더듬고 나온 기분이었다. 종교파트도 물론 흥미로웠지만 현대 사회에 가장 융화되기 쉬운 철학은 아무래도 스토아와 에피쿠로스를 섞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성과 절제된 쾌락을 통해서 스토아는 이상을 제공하여 미래를 보도록 하고 에피쿠로스는 개인들이 현실에 발붙여 살게하는 힘이 되는 사상이 될테니까.
읽는데 어려움은 없는 책이었지만 다 읽고도 다시 읽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책이었다. 철학이나 종교를 깊이 모르더라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이니 목차를 보고 겁낼 필요는 없다. 문체가 아주 부드럽진 않지만 시종일관 어려운 개념이나 흐름을 상냥하게 전개하므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실제로 펼쳐보면 요란하게 각주가 없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알랭드 보통이 추천사에 아주 친절하게 소개한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충만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대학 교양 수준의 책이라 생각하지만 고등학생이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철학과 종교개념이 절로 풍부해지니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음미 해야할 책으로 여유 있을 때 읽을 것을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시인과 좋아하는 시로 마치려 한다.
행복
- 나태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노래가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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